[축구로 풀어본 정치인①]'승부사' YS와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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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풀어본 정치인①]'승부사' YS와 퍼거슨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5.12.23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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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승부사 기질·인재 발굴 능력·시류에 밝은 공통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 故 김영삼 전 대통령 ⓒ 뉴시스

'승부사' YS와 퍼거슨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타고난 승부사며, 인재 발굴에 능했고, 시류에 밝았다.

YS의 승부사 기질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정치 역정을 걸어오면서도 대통령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고비마다 띄웠던 특유의 승부수가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 1983년, 신군부에 맞서 무려 23일 동안이나 단식 투쟁을 벌이며 민정당의 권익현 사무총장을 향해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말했던 것은 YS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는 사례다.

YS는 대통령에 오른 후에도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진다”는 대국민 특별담화를 전격 발표해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기도 했고, 단칼에 하나회를 척결하며 대담한 결단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구 조선총독부 철거 등도 YS 특유의 과감성이 돋보인 결정이었다.

퍼거슨의 결단력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거함을 20년 넘게 정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사적 기질이었다. 1995년, 퍼거슨은 리그 우승을 차지한 직후 팀의 핵심 선수들인 마크 휴즈, 폴 잉스, 안드레이 칸첼스키스 등을 모두 방출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퍼거슨이 선택한 선수들이 바로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어린 아이들만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퍼거슨을 비판했다. 심지어 팬들도 반대 시위를 펼쳤다. 그럼에도 그는 뚝심 있게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고, '퍼거슨의 아이들‘로 불리는 황금 멤버를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그는 유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팀을 재구성하며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성공의 길을 걸어온 것도 같다. YS는 1954년 만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세운 뒤 3·5·6·7·8·9·10·13·14대 의원으로 활동하며 최다선 기록도 세웠다. 1992년에는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정점을 찍었다.

퍼거슨의 기록도 화려하다.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13년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13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번의 FA컵 우승 등 총 38차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퍼거슨은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트레블(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 우승을 동시에 이루는 것)로 이끈 후 영국 축구의 위상을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에 서임되기도 했다. 

▲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오른쪽), 박지성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인재 발굴에 능한 것도 비슷하다. YS의 인재 욕심은 유명하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던 YS는 지역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했다. 필요한 사람을 등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재오 의원 등 YS가 발탁한 인사들은 모두 대한민국 정치계를 주름잡았고, 지금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퍼거슨의 인재 발굴 능력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은 물론,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시킨 것도 퍼거슨이다.

선수 발굴뿐만 아니다. 올레 군나 솔샤르, 마크 휴즈, 폴 잉스, 로이 킨, 브라이언 롭슨, 고든 스트라칸, 알렉스 맥리쉬, 스티브 브루스 등은 모두 퍼거슨과 함께 활동한 경력이 있는 프리미어리그 감독 출신들이다. 2008년에는 프리미어리그 20팀 감독 중 4명(마크 휴즈, 로이 킨, 폴 잉스, 스티브 브루스)이 그의 제자였을 정도다.

시류에 밝은 것도 공통점이다. 손님들에게 직접 커피를 타 대접할 정도로 탈권위적이었고,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스스로 웃음의 소재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YS는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한 정치인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계속됐던 개방화 추세를 포착하고 ‘세계화’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울 만큼 통찰력도 뛰어났다.

퍼거슨은 리누스 미헬스,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등 전술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혁명적인 감독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 축구 전술의 흐름에 적응하는 능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4-2-3-1 포메이션이 유행하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처음으로 4-2-3-1 포메이션을 도입했고, 주제 무리뉴 감독의 4-3-3 포메이션이 리그를 휩쓸자 4-3-3 포메이션을 시험하기도 했다. 전방 압박을 바탕으로 한 역습 전술이 트렌드로 부각될 때는 웨인 루니와 카를로스 테베즈,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박지성으로 공격진을 구성해 전 유럽에서 가장 위력적인 역습 팀을 만들기도 했다.

다만 마무리는 달랐다. YS는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각종 사건사고에 시달렸고,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최악의 마무리를 맞았다. 서거한 후 재평가가 이뤄지기 전까지 생전 YS는 가혹한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퍼거슨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이 3위였을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고, 2013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박수를 받으며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는 퍼거슨의 동상과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가 있으며, 경기장 주변 길에는 ‘알렉스 퍼거슨 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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