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Wars③]"친박연대 대승이 감옥에 가는 이유가 됐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진박Wars③]"친박연대 대승이 감옥에 가는 이유가 됐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1.27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박연대의 등장과 세종시 수정안 격돌…´세종시 전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 권력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거대 여당의 패권, 한국 정치의 주도권을 두고 새누리당의 내전은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스타워즈(StarWars)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탄생부터, 최근 일어나는 ‘진박’논란까지,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에피소드 Ⅲ : 세종시의 복수

소위 ‘공천학살’로 이름 붙은 친이계의 습격에 의해 크게 상처입은 친박계는 한나라당을 떠난다. 그리고 총선을 위해 ‘친박연대’라는 전무후무한 이름의 정당을 만든다.

친박연대의 기원은 사실 2007년 9월,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대선을 위해 창당한 참주인연합이다. 그러나 정 후보가 대선 막판에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며 사실상 주인이 사라졌고, 선거가 끝난 뒤 방치상태였다. 친이계가 제안했던 공천 일정 연기 카드를 받아든 탓에 총선을 앞두고 창당할 시간이 부족했던 친박계의 좌장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과 함께 나선 친박계를 이끌고 이 주인 없는 정당에 대거 입당, 이름을 ‘친박연대’로 바꾸며 약 보름 만에 당을 꾸려낸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정당명으로 쓰일 수 있느냐’는 문제를 선거관리위원회 측에 제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선관위 측은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친박연대는 18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다. 153석으로 무난히 과반을 차지한 한나라당과 81석을 차지한 통합민주당, 18석을 차지한 자유선진당에 이어 친박연대는 14석을 얻었다. 특히 정당지지율 13%를 얻으며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비례대표를 무려 8번까지 입성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서청원 전 대표는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돌아왔고, 친박계를 대표하는 여성정치인 중 한 사람인 김을동 의원(현 최고위원)과 서 전 대표의 최측근인 노철래 의원도 이 때 처음 배지를 단다.(이후 이 두 사람은 각각 19대 총선 서울송파병과 경기광주시에서 재선한다) 이 돌풍의 배경에 간접적인 지원을 보낸 박근혜 전 대표가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 2008년 5월 18일 침통한 표정으로 구속수감되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와 그를 둘러싼 지지자들 ⓒ뉴시스

그런데 친박연대의 환호가 채 잦아들기도 전인 2008년 말 갑작스런 ‘공천헌금수수’사태가 터진다. 친박연대가 18대 총선 후보 공천 과정에서 거액의 헌금을 받았다는 혐의가 골자다. 대표를 맡고 있던 서청원 의원과 김노식 의원 등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구속 수감되며 친박연대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 났다.

당시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는 5월 18일 구속수감 직전 마지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다음과 같이 울분을 토로했다.

"오늘 마지막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감옥으로 간다. 총선에서 모든 국민과 언론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승리를 거뒀고, 이게 결국 오늘 감옥에 가는 이유가 됐다. 어느 정당도 창당과정에는 자금이 없고, 비례대표 분들로부터 회의 결정에 의해 차입을 했는데 다른 정당도 다 하는 차입은 처벌하지 않고 친박연대만 처벌하는 건 기획된 편파수사다. 사법부에 속았다. 박 전 대표를 도왔다는 이유로 죄를 씌운다면 감옥에 가겠다. 나는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정치자금을 수수하지 않았음에도 감옥에 가는 것은 내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서 전 대표의 구속으로 친박계는 한순간에 구심점을 잃었다. 그러나 정당의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는 친박연대의 ‘박’ 박근혜 전 대표가 여전히 한나라당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친박계의 복수가 시작됐다. 그 매개체는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던 2005년 3월 통과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안(세종시 법안)', 일명 '세종시 기획안' 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한다. 행정기관을 포함한 기업,학교,연구기관의 이전이 원안이었으나, 여기서 행정기관을 제외한 것이 수정안의 주요 사항이다.

표면적으로 한나라당의 당론은 세종시 원안고수지만, 친이계의 핵심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미 2009년 여름부터 세종시 수정안을 띄우기 위한 본격 군불때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야당보다 먼저 나서서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다.

박근혜 전 대표는 세종시의 원안 고수를 강력히 지지하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는다.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종시 문제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수없이 토의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 사안 아닌가. 세종시는 원안을 지키고 그 원안에다가 필요하다면 플러스 알파(+α)가 되어야 하지, 백지화는 말이 안된다.”(2009년 9월~10월 세종시 원안추진 관련 박 전 대표의 발언들)

▲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2010년 6월) ⓒ뉴시스

2010년 2월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처음 이뤄진 세종시 관련 당내 공식 토론은 친이계와 친박계의 치열한 설전(舌戰)장이었다. 박 전 대표는 불참했지만 수정안을 관철하려는 친이계와 원안을 고수하는 친박계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각자의 논리를 내세웠다.

“세종시 원안이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의 대안이라고 하는데 행정부처 이전은 그 방법이 아니다”(친이계 차명진 의원)

“행정부처 세종시 이전이 어떻게 비효율이냐. 수도권은 기득권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약속이 번복되면 국가의 신뢰지수가 떨어진다” (친박계 유재중 의원)

“세종시에 기업과 대학, 병원을 유치할 인센티브가 없어 바꾸려고 한다. 공공기관이 가야 명품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잘못됐는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으로는 잘될 수 없다”(친이계 김영우 의원)

“세종시 원안에 자족기능이 다 들어있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러는가. 차기 유력한 사람(박근혜 전 대표)을 때려서 좋을 것이 무엇이냐”(친박계 한선교 의원)

“박근혜 전 대표는 미래권력이다. 그러나 현재 권력은 아니다. (세종시)수정안에 대한 반대를 제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친이계 이춘석 의원)

거듭된 격론, 친이계의 올인과 친박계의 결사저지가 수 차례 충돌한 끝에 MB와 친이계가 밀어붙였던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2010년 6월 29일 본회의에서 부결처리됐다. 이날 찬반토론 후 진행된 표결의 결과는 재석 275명,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이었다. 친박계는 일정 부분 그간의 복수를 해냈으며 향후 행보에 탄력을 받았다.

반대로 친이계는 이로 인해 충청권의 민심을 잃고, 핵심 인사였던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퇴하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약 한달 뒤인 2010년 7월 29일 정 전 총리는 “백년대계를 위해 마련한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한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의 차원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사퇴의 변을 남기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 정운찬 전 국무총리 ⓒ뉴시스

다만 이와 별개로 원외 친박계의 복귀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었다. 원내 친박계의 선전(善戰)을 토대로, 미래희망연대로 이름을 바꾼 친박연대와 한나라당의 합당이 진행됐다.

세종시 공방이 가열되어 가던 2010년 3월 24일, 수감 중이던 서청원 전 대표가 옥중서신을 보내온다. 서신에서 서 전 대표는 "희망연대의 창당정신은 살아서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며 "합당문제는 한나라당에 맡기자"고 당부했다.

옥중서신이 촉발제가 되어 2010년 4월2일, 친박연대는 합당 반대파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열린 전당대회에서 30분만에 만장일치로 합당을 의결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처음에는 복당(復黨)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이명박 대통령 및 박근혜 전 대표와 연이어 회동을 가진 후 허가 쪽으로 돌아섰다. 한나라당도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합당을 공식 발표했다.(정식 합당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이로서 분당사태까지 갔던 친이‧친박계의 전투는 다시 내전(內戰)의 모양새로 돌아오고, 새누리당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들어내며 잠시 진정됐다.<계속>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