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간이탈자〉, 감성 멜로와 판타지 스릴러와의 부정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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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간이탈자〉, 감성 멜로와 판타지 스릴러와의 부정교합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4.12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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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관객의 이해를 강요하는 감독의 새로운 도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시간이탈자>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영화가 있었다. 

1989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계를 장악하던 하이틴 로맨스물의 끝자락을 타고, 제목 그대로 '캔버스 위의 수채화를 그려내듯' 서정적이고 담담한 터치로 수많은 젊은 감성들에게 다가 왔었다. 

별다른 스토리도 없이 소피 마르소의 <라 붐> 을 카피하듯 당대의 청춘 스타들만을 포진시키며 한국 영화의 암흑기를 화려하게 조장했던 이전의 하이틴 영화와는 달리, <비오는 날의 수채화> 는 감각적 영상과 잔잔한 스토리, 그리고 영화보다도 히트한 주제가로, 곧 도래할 90년대 한국 트랜디 장르의 가능성을 열어준 신선한 수작이었다. 

이 감성의 청춘 멜로를 연출한 감독은 그로부터 10여년 후, 당시 신세대들의 유머와 감각을 조화시킨 <엽기적인 그녀> 를 만들어 한국 로맨스 코미디의 전무후무한 획을 그었고, 연이은 <클래식> 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로맨스 멜로물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의 필모그래피가 쌓여 가는 동안, 감각적 영상과 OST 로 출발한 그의 영화상의 코드에는 어느덧 타임캡슐과 반지, 그리고 비 등의 단어가 추가되어진다. 

바로 그 코드의 주인공인 곽재용 감독은 영상과 음악의 토대 위에 젊은 감성과 서정성을 부여하여, 남녀 간의 미묘한 연애 심리를 표현하는 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로맨스 장르의 아이콘이다. 

그러한 곽재용 감독이 감성 스릴러란 장르명을 달고 간만의 국내 복귀작으로 택한 <시간이탈자> 는 연출자의 모든 요소들을 녹여내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맞게 요즘의 새로운 감성을 얹어 가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983년의 과거와 2015년 현재라는 30여 년의 시간차를 넘나드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에 서스펜스가 가미된 스릴러 형식은 분명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하며, 감독으로서는 새로운 영역의 개척이자 도전임은 명징한 사실이다. 

<시간이탈자> 는 분명 요즘 유행하는 여느 타임 슬립 장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옛 추억을 향수할 수 있게 하면서, 종국엔 남녀 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감각적 영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국 감독의 기존 영화 작법의 전형적 공식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반지라는 소품을 통해 필연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연결되고 시간을 넘나들며 소통하는 방식은 <클래식> 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 부분이었다. 

더불어 고의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보는 관객이 쉽사리 납득할 만한 스토리의 개연성은 포기되어진다. 물론 급작스러운 장면의 전환만을 통한 작위적인 화법과 맥거핀의 향연은 감독이 획득하려는 감성 스릴러라는 장르명을 위해선 피해 갈 수 없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 초반부의 복선 암시는 날카로운 관객들에 의해 간파되어질 수 있으며, 이해가 불가할 수 있는 관객들의 존재를 의식한 듯 영화 종반부의 친절하고도(?) 세심한 설명은 마치 90년대 홍콩 무협물의 그것이다.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흘러 넘쳐야 하는 스릴러로서는 관객이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게끔 밀어 붙이는 힘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 아닐까 한다. 

감성 스릴러를 표방하면서, 결국 영화 후반 반전으로 인한 멜로 장르로의 전환도 감독 자신의 주특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진지함보다는 (송강호의 차세대 후계자임이 분명할 정도로) 왠지 바라만 봐도 엉뚱함과 코믹성이 특화된 조정석이 맡은 배역은 배우 개인으로선 (도박성이지만) 이미지 변신의 계기가 될 것이다. 

조연으로 나선 정진영의 존재감도 중견답게 자기 몫을 충분히 하고도 넘친다. 

그러나 영화 스토리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 같은 임예진 등의, 곽재용 감독이 지닌 특별출연 전문 페르소나들의 소모와 비중은 뭔가 답답하다.

여기에 임수정이라는 걸출한 여배우를 아끼는 관객들에겐 그녀의 역할은 진한 아쉬움을 줄지도 모른다. 

타임 슬립 장르는 치밀한 이야기 구조가 필요하다. 이것은 기세 좋게 밀고 들어가 관객들과의 두뇌 싸움에서 이기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동화와 납득을 위한 엄청난 지지 기반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탈자> 는 분명 SF 스릴러라기엔 과학적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면에 치중하기에는 스릴러라는 장르명이 아깝다. 그러면서 감독의 전가의 보도인 멜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전작들의 장르에서 벗어나 남다른 아이디어로 새로운 전환을 도모한 것은 좋았으나, 특유의 감성적 필치에 스릴러의 공식을 얹어가려는 감독의 시도와 야심은 판타지 장르로 막을 내리고 만다. 

얼마 전까지 모 케이블 TV 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였던 <시그널> 이란 드라마에 이미 노출된 이들에게 이 영화는 일말의 식상함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문제인 것은, 익히 그 드라마마저 접해 보지 못한 이들에겐 전반적인 이해조차 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비는 내린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에서의 그 풋풋한 담백의 감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말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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