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호남 홀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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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호남 홀대론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4.18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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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재인, 호남의 지역차별 정서 '틈' 메꿔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총선 직전, 르포 취재를 위해 찾은 광주 민심은 혼란스러웠다.

'반(反)문정서'에 대해 묻자 시민들의 대답은 엇갈렸다. '조작된 프레임'이라는 의견에 '호남 홀대는 사실'이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더민주 지역 캠프들의 반응도 상이했다. 한쪽에서는 문재인의 방문이 '총선의 최대 반전카드가 될 수 있다'고 평한 반면, '선거 망칠까봐 부담스럽다'는 관계자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 전 대표가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남 방문을 강행했다. 예상 밖의 환대가 이어졌다. 선거판을 뒤집기에 늦었다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더민주가 전통 텃밭인 광주지역에서 의석을 하나도 챙기지 못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호남의 반문정서는 실재했던 셈이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12년 대선 직전 전북을 찾았을 당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뉴시스

그러나 호남지역의 정치적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재인에 대한 지역심리는 '반감'이라기보다 '서운함'에 가깝다.

호남은 군사독재 시절부터 차별과 소외에 시달렸다. 특히, 전두환 정권의 5·18 학살은 '지역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특정 연령, 특정 학교에 제한되지 않고 일반시민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5·18 국립묘지에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운 대학생뿐만 아니라, 거리를 걷다가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가 사망한 시민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는 '한 집 건너 제사를 치른다'고 한다. 그만큼 도시 자체가 동일한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하나로 묶어 말하기 어렵다. 호남의 경우, 이념을 떠나 학살의 '기억'이 있다. 바꿔 말하면, 피해자의 '방어적' 지역주의다.  

호남은 차별받는 입장을 대변해 독재정권과 맞서 싸울 정치세력을 찾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호남출신이라는 꼬리표에도 뛰어난 능력으로 전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 또 하나는 영남출신으로 기득권을 설득할 수 있는 동시에 호남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 전자는 DJ였고 후자는 노무현이었다.

DJ정부는 그 공과를 떠나 호남의 자랑이었다. 정권교체로 오랜 기간 이어졌던 정치적 한(恨)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당시 호남에서는 DJ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시민들의 행보에도 신중함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군부독재 시절 수차례 목숨을 위협받았던 DJ와 호남지역은 그야말로 '이심전심'의 관계였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정계에 입문해서는 '지역주의 청산'을 대표 슬로건으로 걸었다. 호남인은 아니었지만 호남정신과 궤를 같이 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호남은 노무현을 믿었고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가 호남정신에는 공감했지만, 지역차별에 대한 정서적 이해가 달랐던 탓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지역주의 철폐를 호남에 대한 배려가 아닌, 지역 전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 목표는 같지만, 오랜 지역소외에 이력이 난 호남의 입장에서는 '내 편 챙기기' 없는 참여정부에 내심 서운함이 쌓였다. 당시에는 '호남 푸대접론'으로 불렸다.

문재인이 최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가 정치적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남을 사랑했어도 호남 사람처럼 호남의 정서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애증은 문재인에게 그대로 반영됐다.

호남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90%가 넘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호남 홀대론'이 바로 이같은 틈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이 계파갈등으로 분열되면서 호남지역에는 문재인의 자사전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당시 인사 차별이 있었다는 루머가 퍼졌다.

전북 전주시을에 출마해 낙선한 국민의당 장세환 후보는 지난달 31일 방송토론회에서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의 한 구절을 지적한 바 있다. 장 후보는 호남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그렸다고 비판했고, 박지원 의원도 이에 대해 "자서전에 대한 내용을 해명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 문재인 자서전 <운명>에서 논란이 된 부분. 판단은 독자들의 몫에 맡긴다. ⓒ 시사오늘

사실여부를 떠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지역차별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호남정서를 고려하면, 문재인의 대처는 늦은 감이 있었다. 호남민심을 겉으로만 보고 방문을 말리는 데 급급했던 더민주의 실수였다. 적극적인 해명을 바란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호남인들이었다.

문재인은 지난 8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야 "호남차별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라면서 "참여정부 고위직 인사 27%가 호남출신이었다. 참여정부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호남을 배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뒤늦은 해명에 반향은 미미했다.

더민주의 '성의 없는' 지역공천도 문재인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최근 문재인이 전남대를 방문했을 때 한 학생이 "더민주를 뽑고 싶어도 뽑을 사람이 없다. 좋은 사람을 가려서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문재인이 "지도부가 최선을 다해 공천한 후보들"이라고 답하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는 게 보였다. 주변에서 "그럼 우리 보고 정준호를 뽑으란 말이냐"는 말이 나왔다.

광주 북갑에 출마해 낙선한 정 후보는 당시 문재인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며 대선불출마 선언과 단식사죄를 요구해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이같은 안이한 인식이 결국 기존의 '호남 홀대론'의 프레임과 맞물렸고, 호남지역 과반수가 대안인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선까지 물 건너갔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호남지역은 여전히 차별받는 약자를 대변해 줄 대통령감을 찾고 있다. 지역출신이냐 아니냐를 떠나 호남이 DJ와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은 호남정신과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금수저 출신'의 '온실 속 화초'가 호남에서 대권가도에 오르기 힘든 이유도 이와 같다.  

문재인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 참패결과를 두고 "호남의 결정을 겸허히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재인에 대한 호남민심은 반감이 아닌 서운함이다. 그리고 서운한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해져 떼어내기 어렵다. 당사자의 적극적인 해명과 약속만이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다.

그 실타래 또한 문재인만이 풀 수 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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