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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총선 결과, 개헌하라는 국민의 뜻”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77)>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16년 04월 27일 (수)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오른팔, 민주화의 산증인, 한국 현대정치에서 가장 아까운 왕재(王才)….’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 붙는 수식어다.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은 이번 주 김 전 원내대표를 초청했다. 26일 강의실을 찾은 김 전 원내대표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특징들과 민심, 그리고 각 당의 현주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라며 말문을 연 김 전 원내대표는, “견해를 달리하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늙고 은퇴한 정치인이 하는 소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우선 이번 총선의 특징에 대해 평했다.

“총선이란 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선거도 박근혜 정부 3년에 대한 총체적 심판의 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최악의 청년실업, 소득불평등 심화 등 언뜻 생각해도 무능과 실정으로 ‘헬조선’이란 말이 피부에 와닿는 상황입니다. 민주주의와 역사인식도 30년전으로 후퇴했습니다. 남북관계는 어떻습니까? 외신에서 일컫기를 한반도에서 화약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사라진 지 오래고, 일촉 즉발의 안보 위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본격적 논쟁이나 토론이 없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이번 총선은 토론이 없는 선거였습니다. 남북관계라든가, 헌법 개정 문제, 성장과 분배,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깊은 토론없이 진행됐습니다. 각자의 정당이 내놓은 상품이라 할 수 있는 대형 정책이나 이슈가 전혀 없었던 선거입니다. 새누리당은 야당심판론, 더민주는 정부여당 심판론, 국민의당은 양당심판론을 서로 들고 나오며 정책대결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사오늘

역대 선거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17대 총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전체 판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나라당은 탄핵을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았죠. 그 때 소위 ‘탄돌이’라고 부르는 초선의원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해 열린우리당 과반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18대 총선 때는 한반도 대운하, 뉴타운 건설 등이 큰 화두였습니다. 뉴타운 열풍을 업고 한나라당이 서울을 석권하며 과반정당이 됐습니다. 당시 초선의원들을 ‘타운돌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19대 총선의 화두는 복지였습니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복지정책이 가장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선 모든 정당이 판도에 영향을 미칠만한 대형 이슈를 내놓지 못했고 기득권을 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선거 구도가 여대 야로 형성되지 못하고 일여다야로 짜여졌다는 겁니다. 게다가 여당 내에서는 친박과 비박이, 야권에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대결하는 양상이 되고,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잠재 주자들이 끼어들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방불케 했습니다.

여야가 모두 자신의 본거지를 내줬습니다. 새누리당은 대구와 부산에서 사실상 대패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호남을 내줬습니다. 지역주의 완화 측면에선 긍정적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여야 내부갈등 측면이 더 크다고 봅니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전횡과 더불어민주당의 안주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겁니다. 큰 바람도 불지 않고 논쟁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었을 때 경천동지할 태풍이 불었습니다. 태풍이라기보다는 지진입니다. 자신만만하던 새누리당이 제2당으로 급전직하했고 국민의당이 제3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며 국회지형을 바꿔놨습니다. 강도 높은 대지진입니다.

정당간에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절묘한 균형이 선거혁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국민들이 불통과 독선의 박근혜 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의 치졸한 진박 마케팅과 실정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새누리당 심판을 위해서 더불어민주당을 선택했지만, 전폭적인 지지는 보내지 못했습니다. 친노니 비노니 하면서 다투고, 오직 반대만이 유일한 정책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운영에 실망했습니다. 야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3석밖에 얻지 못하며 강력한 경고를 받고, 정당투표에서 신생정당인 국민의당에 밀린 것입니다.  여야가 당리당략에 빠져 싸움질만 하는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양당구도의 정치를 끝장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 3당을 탄생시켰습니다. 국민의당에 정계개편이라는 과제를 맡겼습니다. 이번에 국민의당이 획득한 38석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어 김 전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이 보낸 '메시지'에 대해 강연을 이어나갔다.

“한 사람이 한 표씩 의사를 표시했는데, 그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집합의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토론도 없고, 정책도 없고, 이슈도 없고 논쟁마저 사라진 정치판의 선거였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위대한 총선 메시지를 발표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우선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심판은 나오지 않았지만, 탄핵에 가까운, 선거혁명에 준하는 결과였다고 봅니다. 일여다야 구도로 기울어진 운동장마저 뒤바꿨습니다. 이 총선의 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론은 더 엄중하게 박근혜 정부를 문책할 겁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야권단일화를 국민의 지혜로 일궈낸 부분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잘했거나, 당선자만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탐탁찮아도 당선가능한 야권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국민들이 아수라장같은 선거판에서도 사태의 전개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지역구 투표는 당선 가능한 사람에게 몰아주더라도, 제3당은 있어야한다는 묵언의 항의가 있었습니다.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당이 자력으로 이 결과를이룩했거나 안 대표가 활약해서가 아닙니다. 국민들의 이심전심의 결과로, 요컨대 협치 내지는 연합정치를 하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이 메시지 안에는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 선거제도 등을 바꾸라는, 즉 개헌하라는 국민적 욕구도 함축돼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민이 보낸 메시지를 올바로 읽고,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정치권의 과제입니다. 이번 선거의 메시지 중 하나는 진보를 표방하는 정의당에게도 국회에서 활동영역을 제공했다는 점인데, 국민의 배려와 성찰이 여기까지 미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녹색당도 1석정도 돌아갔으면 어떻겠나싶기도 합니다. 환경보호는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우리에게도 지금 아주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국민이 보내준 메시지를 과연 어떻게 읽고 실천하느냐. 여기에 각 정당의 운명과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총선후 각 정당의 현주소에 대한 비판과 제언을 전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나 각 정당은 총선에 담긴 국민들의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선거 전 야당을 심판해달라고 장문의 훈계를 하던 청와대는, 선거 후 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아주 짤막한 멘트를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민의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새누리당 고문들이 오죽하면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라고 쓴소리를 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도 ‘마이웨이’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지방 교육 교부금을 특별회계법을 제정해서 누리예산에 쓰도록 묶어놓겠다고 합니다. 야당이 줄곧 반대해오던 이 이야기를 여소야대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할지 궁금합니다. 야당과 협의는 물론 여당과도 협의가 안 된 사안입니다. 청와대가 시쳇말로 천지분간을 못하고 있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사오늘

여기서 잠깐 엉뚱한 얘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새누리당이 막장공천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옥새파동이라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친박만아니라 비박도 잘못했다고 하는 항변입니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이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책임론을 덮어놓고 가자는 것입니다. 책임질 사람이 있는데 왜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김무성 대표를 위한 변명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덩칫값도 못하고 , 청와대에 끌려만 가고, 꼬리만 내리는 나약한 지도자로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위 ‘옥새파동’을 하면서는 좀 달라보였습니다. 유승민 의원을 돕는 모습이 정의의 편에 서는 것 같은 효과를 냈나 봅니다. 다만 유승민-이재만 빅 게임이 무산된 것은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 아쉬웠습니다. 본 게임이 이뤄졌다면, 제 판단에는 유승민 의원이 승리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친박계에 한방 먹이는 게 될 수 있었는데 무산됐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당은 이렇다고 치고. 더불어민주당은 어떻습니까? 얼떨결에 제1당이 됐기 때문에 희희낙락 하는 것을 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승리에 도취돼 있는 것 같습니다. 국회를 주도해야할 다수당으로서 구체적인 정책을 모색하고, 당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필요한데, 지금 그냥 쉬고 있습니다. 그런 모임을 했다가 친노·비노니 운동권이니 하는 고질병이 튀어나올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추대냐, 전당대회 연기냐, 그 정도의 논의 뿐입니다.

김종인 대표에 대한 향후 선택이 더불어민주당의 운명을 가를 선택이 될 듯 합니다. 김 대표가 탈당 러시를 막고 분당 분위기 속에서도 당을 추스르는 역할을 했습니다. 운동권정당의 이미지도 벗어나고, 중도층을 국민의당이 선점하는 것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거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당의 정체성과 도덕성 면에서 김 대표의 존재는 시한폭탄입니다. 과연 문재인 전 대표와 김 대표, 두 사람의 동거가 가능할까, 언제까지일까, 하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앞날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제1당으로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김 대표 문제를 좀 더 언급하겠습니다.개인적으로 김 대표는 당을 본인이 수술해서 고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총선에서 소방수 역할을 하고 떠나는 게 옳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우리국민의 보편적 인식은 과연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확신을 주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반칙이 없고 특혜가 없는 국가,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훌륭한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균형감각 없는 언행으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어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핵인데, ‘반미면 어떠냐’는 식이었습니다. 그 영향이 오늘의 야당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비서실장 문 전 대표에 대해서도 신뢰하긴 어렵지 않느냐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경향을 보이고, 툭하면 소위 ‘싸가지 없는’ 언행들을 많이 하니 ‘이들에게 우리나라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하는 불안감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이번 총선 전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야당에 대한 걱정과 의심을 덜기위해, 또 야당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빼기 위해 김 대표를 영입하고, 비상 전권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색깔 바꾸기라는 것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조용히 추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야당의 중심세력은 민주화 인사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 전 대표가 광주항쟁 무력진압의 전초기지, 국보위에 참여했던 김 대표에게 당권을 맡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팔아서, 권력과 양지만을 찾아다니며 비례만 네 차례 한 사람입니다. 불의가 득세하고 기회주의가 판을 쳤던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런데 정통야당이라는 더불어민주당과 김 대표의 궁합이 과연 맞는 걸까요. 김 대표의 공천관련 첫 작품이 유인태 의원 컷오프였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 여야 모두에서 신망이 두터운 분입니다. 민청학련사건의 주역이고, 제가 아는 한 특별한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이래도 좋은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공천이 두려워서 그랬겠지요. 개인적으로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몇 사람들에겐 제가 쓴소리를 한마디 했습니다. ‘배알도 없냐’고. 냉정하게 공천결격사유가 있는 건 김 대표 아닙니까. 비례대표도 포기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봅니다. 정통야당과는 맞지 않는 처사입니다.

국민의당은 양대정당을 견인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하면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정치권을 리드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선 안철수 공동대표가 얼마만큼의 내공과 경륜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당내 중진들 중심으로 섣부른 야권통합론이 나오는 등, 좀 해매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렵게 국민들이 제3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줬는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안 대표가 과연 천정배 공동대표나 박지원 의원 등의 소위 ‘호남 대주주’ 설득을 하는 리더십이 가능할지가 국민의당의 관건입니다. 이 당편을 들다, 저 당도 편들고 하며 중간지점을 찾는 것은 안됩니다. 국민과 미래정책에 대한 확고한 노선을 갖고 정책과 개발을 추진해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2월 13일 안 대표가 자신이 만든 거나 다름없던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뒤이은 탈당러시와 함께 제3당 창당 기운이 높아갈 때, 전 어쩌면 한국정치 지형이 바뀌고 형태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기대를 했습니다. ‘보수꼴통’아니면 ‘진보좌빨’의 극한대립 속에서, 건강한 제 3당이 탄생해 새로운 정치지평을 열고 희망을 만드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탈당을 막아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 대표가 잘 나갈 때 아직 안이한 사고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안 대표가 자신을 더 낮추고, ‘나는 모든 것을 비웠다. 나를 딛고 발판삼아 새 정치로 함께 가자’며 다양한 인사들을 삼고초려(三顧草廬)했으면 선거 판도가 더 달라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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