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변기에 무릎이 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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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변기에 무릎이 끼었어요"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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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12)>야식과 화장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밤샘근무를 서다보면 배가 무척 고프다. 시건개방 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야식을 한보따리 사서 귀서했다. 봉투 사이로 맛있는 냄새가 솔솔 새어나오자 대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함께 담소를 나누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 무렵 또 다시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구조출동 은평구 OO동 OO술집 화장실 변기에 무릎이 낀 사고”

수많은 출동을 다니며 구조 활동을 펼쳤지만 세상에, 변기에 무릎이 빠졌다는 신고는 난생 처음이었다. 참으로 의아했지만 요구조자가 심각한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출동차를 타고 냅다 현장으로 달려갔다.

▲ 취한 20대 여성 요구조자의 무릎이 화장실 변기와 수도꼭지 사이에 끼어있다 ⓒ 은평소방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현장은 난감 그 자체였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한 여성이 술집 화장실 변기 뒤편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구조자는 무척 취한 것으로 보였다.

간신히 상황 파악을 해 보니, 술을 많이 마신 요구조자가 변기 옆에 쪼그려 앉아 토를 하다가 그만 변기 뒤쪽과 수도꼭지 사이에 왼쪽 무릎이 껴서 빠지지 않는 상태였다.

위급하지는 않았지만 요구조자가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어 발이 저리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게다가 변기는 토사물로 인해 막혀서 악취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여성의 몸과 얼굴은 가래침과 음식물 찌꺼기로 뒤범벅돼 있었다.

일단, 요구조자를 들어서 빼 보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수도꼭지가 오금에 꽉 껴서 도무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들은 차선책으로 시멘트로 고정돼 있는 변기 아랫부분을 망치와 정을 이용해서 파괴한 뒤, 변기를 살짝 들어 옆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망치질을 연신 해대는 대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변기가 바닥에서 분리되는 것 같아 힘을 줘서 살짝 들어봤다. 꽉 끼어있었던 요구조자의 무릎이 그제야 빠졌다.

▲ 화장실 바닥에서 변기를 살짝 떼어 구조활동을 펼쳤다 ⓒ 은평소방서

우리들은 땀방울을 훔쳐내며 긴 안도의 한숨과 거친 숨을 동시에 내뱉었다. 바로 옆에서 요구조자는 창피해서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서인지 전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절룩거리는 요구조자에게 다가가 다리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는 부리나케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대원들은 마냥 웃어넘길 수 있는 출동이었으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요구조자 또래의 딸 둘을 키우고 있는 내게는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구조 활동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대원들이 출동 전에 먹다 남긴 떡볶이, 튀김, 어묵 등 야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방금 화장실에서의 광경이 떠올랐다. 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소만 남기며 그 자리를 빠져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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