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3 화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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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국정농단, 대통령-최순실-재벌 '삼각 게이트'”
김두관 국회의원
"경남도민들에게 상처 드렸다...내게도 큰 빚으로 남아"
"통일은 블루오션...남북경제협력 통해 한국경제 도약"
"균형발전·지방분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난 '찰떡궁합'"
"집단 지성으로 국가경영 해야...'대통령직선 내각제'로"
2016년 11월 28일 (월) 송오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송오미 기자 김병묵 기자)

“그냥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다. 공평하지 못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출마했다.”

군수에 취임하자마자 권위주의의 상징인 군수 관사를 헐고 주민들을 위한 주차장과 주민쉼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음악회, 시 낭송회 등 각종 문화행사와 기념식도 열었다. 화려한 관사를 포기하고 어미니를 모시고 살던 집에서 군청까지 출퇴근 했다. 공무원과 지방지 주재기자들의 밀실담합 장소였던 주재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으로 만들었다. 지역언론개혁이었다. 무소속으로 두 번째 군수를 했을 때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추천으로 ‘MBC 성공시대’에 출연했다. 방송이 나간 뒤 군청과 집으로 응원전화가 오백 통 이상 빗발쳤다.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를 달리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극복하고 이장, 군수, 도지사, 장관, 국회의원까지 승승장구해온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을 지난 17일 의원회관 543호에서 <시사오늘>이 만났다.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떨어지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걸로 안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돼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붙었다가 떨어졌을 때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나갔을 때 한 말이다. 물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난 본선에 못 나갔으니까 해당이 안 된다."(웃음)

   
▲ 김두관 의원은 "경남도지사 사태 때 도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드리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 당시의 상처와 비판은 지금도 아물 수도 없고 지금도 내게 크게 남아있다"고 밝혔다. ⓒ 시사오늘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때 도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드리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 당시의 상처와 비판은 지금도 아물 수도 없고 지금도 내게 크게 남아있다. 두 번째 군수 임기 때 후배 국회의원들이 내게 중앙 정치로 오라고 많이 권유했다. 사실 2010년 경남도지사에 당선됐을 때, 임기가 끝나는 2014년 6월 30일까지 도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도민들한테 인정받고 떠나려고 했다. 도지사 두 번은 안 하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여의도로 와서 당 최고위원을 하면서 당 혁신 운동을 하고, 2017년 대선에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도지사에 취임하고 일 년쯤 지나니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지사직을 끝까지 하기 힘들 것이다. 야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계속 그런 말을 듣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됐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경남도지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준비가 안 된 걸 알면서도 마음이 움직였다.”

-도지사직을 갖고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할 수도 있지 않았나.

“주변에서는 도지사직을 가지고 대선에 나가라는 말을 내게 많이 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지사직을 가지고 대선에 나왔는데 당신은 미련하게 왜 그러느냐’고도 했었다. 그런데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으면 반드시 도망 오게 돼 있다. 그래서 배수진을 친 거다. 또 지사직을 사퇴해야 대선 후보 도전에 대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대선준비를 하는 것은 도민들에게 두 번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두 개를 같이 병행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준비 부족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밀려버렸지만.”

북한의 자원·토지·노동과 남한의 자본·기술 결합하면 굉장한 시너지 낼 것

-경기도 김포를 지역구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지역감정, 양극화, 이념분쟁 등은 사실 남북분단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회가 한 단계 도약을 하려면 분단을 꼭 극복해야 한다. 우선, 남북 간 경제 협력을 통해 교류를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의 동북삼성,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톡, 카자흐스탄 등 북방경제를 잘 풀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미래가 없다고 본다. 남북경제협력을 통한 통일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기위해 김포를 선택했다. 김포는 남북 간 협력을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개풍군과 접하고, 분단역사의 장소인 애기봉도 있다.”

   
▲ 김두관 의원은 "남북경제협력을 통한 통일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기위해 김포를 선택했다. 김포는 남북 간 협력을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개풍군과 접하고, 분단역사의 장소인 애기봉도 있다"고 강조했다. ⓒ 시사오늘

-역대 대선후보들도 남북통일을 국가적 과제로 여겼다. 대선을 염두에 둔 선택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남북통일은 대한민국 전체 발전을 위해 꼭 성취해야 할 과제다. 남북 간 경제협력을 통해 완전한 경제협력체가 되면 그게 통일의 단계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정치군사적 통합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당장 북한이 가지고 있는 지하자원, 노동, 토지 그리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이 TSR(Trans Siberian Railway·시베리아철도)을 통해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시장을 공략하면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나. 특히 북한에 존재하는 희토류 등 희귀 자원만 하더라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 중국에서 북한 지하자원을 거의 다 가져가고 있지 않나. 북한은 굉장한 블루오션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매우 침체기인데, 한국이 일인당 국민소득 4~5만 달러를 달성하려면 남북경제협력이 꼭 필요하다.”

-최근에 ‘모병제’ 관련 세미나도 연 것으로 안다.

“북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안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의 부족한 전문성과 비대칭 전력으로는 북핵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인구절벽으로 인해 지금의 군대 구조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모병제로 전환해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고 최신식 무기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병력을 전문화, 정예화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군인들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줘서 가고 싶은 군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자살·총기사고 등의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 모병제에 대해서 동의를 하면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비대칭 전력 강화나 병력 전문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환계획을 마련하는 것 자체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부터 철저하게 시뮬레이션 해가면서 준비해야 안보 공백 없이 튼튼한 국방력을 갖출 수 있다.”

가난 겪으면서 사회변혁운동 결심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딱 정치를 해야 되겠다는 결심보다는 사회변혁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사회변혁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체적으로 농촌에서 다들 어렵게 살았지만,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졸업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생계를 꾸리는 상황이라 고등학교 진학이 거의 불가능했다.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 꼭 공부를 해보고 싶더라. 결국 내가 고집을 부려서 입학하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국민대 어문계열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등록금이 없어서 못 갔다. 2년 정도 농사를 짓다가 경상전문대학에 들어갔다. 이후에 동아대학교에 편입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불평등한 사회를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고 싶었다. 대학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려면 농민운동, 사회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1979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80년도에 광주민주항쟁을 목도하면서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확고한 결심이 생겼다. 또 군대시절에 만난 운동선 출신 고참 선배가 있었는데, 매일 같이 토론하고 사회과학 책을 받아서 읽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 김 의원은 "딱 정치를 해야 되겠다는 결심보다는 사회변혁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사회변혁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어떤 활동들을 했나.

“군 제대하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했다. 백기완 선생님, 故문익환 목사님이 상징적인 지도부였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원장), 이부영·김근태·이회창 전 의원 등 이런 분들이 중간 간부를 맡았다. 민통련에서 사회운동가를 양성하는 민족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신동아 외판원을 하면서 민족학교 1기에 입학을 했다. 그 당시가 86년이었는데, ‘직선제 개헌투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청주 집회를 주도하다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석 달 정도 청주 교도소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때 민통련 선배들이 격려차 면회를 많이 왔다. 내게 ‘서울에 남아 있어야 앞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데 좋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서울에는 사회운동을 할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나는 고향에 가서 대한민국을 위해 애쓰겠다고 결정했다. 고향에서 농민회와 책사랑나눔터를 만들고 마을 이장과 군수를 했다. 지역지 ‘남해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언론인 출신이라는 게 눈에 띈다.

“남해신문을 만들어서 남해군 행정과 타협하지 않고 농어민들의 정치입장을 확고하게 대변하려고 노력했다. 공무원들이 농어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조금을 횡령한 것도 밝혀냈다. 그래서 농어민들이 남해신문에 보내는 신뢰가 아주 높았다. 또 읍 외곽에는 우편으로 보냈지만, 읍내에는 직접 배달을 했다. 지난 주 기사에 대한 군민들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었다. 정말 살아있는 신문이었다. 이런 과정이 군수가 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재밌는 일도 있었다. 군수가 되고나서 남해신문 영향력이 지역에서 너무 커지니까 박희태 전 의원 쪽에서 신문사 주식을 사면서 신문사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소속 37세 최연소로 남해군 군수가 됐다. 비결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컸다. 마을 이장을 할 때도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책사랑나눔터라는 북카페를 할 때 교사, 학생, 주부 등 회원들이 많았다. 독서 토론반, 영화 감상반, 등산반 등 여러 모임이 있었다. 이런 조직들이 점점 늘어서 3~4000명이 되니까 군수 선거 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남해신문 독자들도 나를 많이 지지했다. 사실 남해 쪽은 민자당 안방이라 내가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40% 정도만 득표해서 책사랑나눔터 회원들과 신문 독자들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당선이 됐다. 첫 군수 선거 때인 1995년도에 최초로 ‘ARS 선거운동’을 도입한 것도 내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노무현 대선후보가 내게 전화 걸어와 ‘정치 같이 안 할거냐’며 화벌컥 내 

-이장, 군수에 이어 참여정부 시절에는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무특별보좌관을 맡았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노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였을 때 남해 농민회와 시민사회단체에서 특강을 들으려고 초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만났다. 결정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면서다. 사실 이전부터 지방자치를 위해 노력하는 나를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도 대통령 되기 전인 1993년도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을 만큼 지방 균형발전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기억이 있나.

“노 전 대통령이 2002년에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을 때, 부산·울산·경남에 시도지사 한명을 당선시킨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당선되기는커녕 후보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노 후보가 내게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고 경남도지사에 나가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었다. 노 후보가 나한테 사람을 두 번 보내고, 전화를 세 번 째할 때였다. 그때 ‘도대체 김 군수는 어떤 사람이랑 정치를 하려고 하길래 나랑 정치를 안 하려고 합니까?’ 이러면서 화를 벌컥 내더라. 사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랑 정치를 같이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경남 도지사를 나가면 득표가능성이 15%정도 밖에 안 돼서 무소속으로 나가려고 했다. 무소속으로 나가면 35%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무소속으로 나가 이 정도 표를 얻고 연말 대선에서 힘을 보태려고 했다. 또 남해 군민들한테 무소속으로 군수 두 번하고 무소속으로 도지사 나간다고 약속을 했었던 이유도 있었다. 결국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지고 노 전 대통령의 경남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선대본부장 맡기 전에 조직특보를 했었는데, 노 후보가 ‘김 군수, 내가 지금 정몽준 후보한테 밀려서 3등인데, 누가 날 위해 경남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주겠소. 김 특보가 경남본부장 맡아주시오’ 이렇게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내가 뒤늦게 경남 선대본부장을 맡게 됐다. 부산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맡았다. 기억에 남는 말이 또 하나 있는데, 대선 막바지 들어서 창원에 유세를 갔었다. 그 때 노 후보가 내게 ‘대선에서 승리하면 내각에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했다. 그 당시에는 립서비스라고 여겼다. 그런데 내게 장관직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장관에 임명된 것과 관련, “당시 강금실, 김두관, 이창동을 법무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문화관광부 장관에 발탁했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색깔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내게 장관직을 준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에 대한 열정과 사회 비주류도 열심히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당시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이 많았다.

“당시 강금실, 김두관, 이창동을 법무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문화관광부 장관에 발탁했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색깔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내게 장관직을 준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에 대한 열정과 사회 비주류도 열심히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의 12개 과제 중 핵심이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었다. 여기에 관련된 부처가 행정자치부였고, 그 역할을 내게 맡겨준 거였다. 노 전 대통령과 나하고는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에 대한 궁합이 너무 잘 맞았다. 행정자치부 장관 재임동안 참여정부 3대 특별법인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특별법’을 다 완성했다. 참여정부는 지방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정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방정부의 도우미로서 지방자치와 분권을 위한 개혁에 앞장섰다고 할 수 있다. 또 세종특별자치시가 탄생하게 된 것도 노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이것을 뒷받침한 게 행정자치부였다.”

대통령·여당, 최순실, 재벌 간 ‘삼각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로 세상이 시끄럽다. ‘최순실 게이트’는 왜 발생했다고 보나. 

“시스템과 박 대통령 자질의 문제라고 본다. 5년 동안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도의 문제도 있고, 박 대통령도 혼자서 의사결정을 거의 못한다고 하지 않나.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최태민 목사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완벽하게 박 대통령을 장악했다고 나온다. 아버지의 난잡한 생활을 보다가 최 목사를 보니까 훨씬 존경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언론 보니까 최 목사 죽고 나서 그 영적 능력을 최순실 씨가 승계했다고 하던데,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할 때 최순실 씨한테 컨펌 받고 그랬다고 하지 않나.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주권을 박근혜 대통령에 맡겼는데, 아무런 권한이 없는 최순실 씨에게 권력을 사유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완전히 헌정유린을 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박근혜·새누리당, 최순실, 재벌 간 ‘삼각 게이트’다. 그런데 지금 언론에서는 재벌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 김 의원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주권을 박근혜 대통령에 맡겼는데, 아무런 권한이 없는 최순실 씨에게 권력을 사유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헌정유린을 한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새누리당, 최순실, 재벌 간 ‘삼각 게이트’다. 그런데 지금 언론에서는 재벌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 시사오늘

-촛불집회도 참석했다고 들었다.

“백만 촛불민심은 박 대통령의 퇴진도 맞지만, 프랑스 혁명처럼 명예혁명을 하자는 것이다. 구체제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국민들 요구를 야당이 제대로 흡수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리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한다고 했다가 철회했는데, 나도 처음에는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비판을 했다. 그런데 또 다수가 반대하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철회하더라. 그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사실 지금 박 대통령은 신뢰를 상실해서 식물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퇴진을 선언하고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에게 전권을 줘야한다. 대통령과 총리는 의논해서 퇴임 날짜를 정하고 그 이후의 국정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내년 2월 25일이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인데, 이날 물러나면 4월 25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하면 된다. 4월 13일이 국회의원 보궐 선거인데, 이때 같이하면 된다. 지금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 지금 국정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헌정유린과 헌정중단이다.”

-책임총리로는 어떤 인물이 적합하다고 보나.

“국정경험이 좀 있고 여야를 잘 아우르는 협치를 잘 실현할 수 있는 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떤 분이 제일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종인 전 대표, 손학규 전 고문, 김황식 전 총리 같은 분들이 계신다. 안보 같은 경우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도 있고, 경제도 경제부총리와 기업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엄정하게 선거관리를 잘 해서 차기 정부를 잘 뽑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야가 다 동의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분이 총리를 맡으셨으면 좋겠다. 사실, 재벌이나 검찰에 대해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하는데 과도정부에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 확실한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지만, 지금 검찰에 우병우 사단이 많이 있어서 잘 될지 모르겠다. 잘 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신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이 개헌적기…‘대통령직선 내각책임제’로 가야

-시스템 문제도 지적했다. 지금 한국에 올바른 권력구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갈등지수가 높은 나라다. 훗날 남북 연방을 생각한다면, 내각제가 옳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들이 직선제 개헌 운동을 통해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기 때문에 ‘대통령 직선 내각책임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은 물리적 영토는 작지만, 경제 규모나 군사력 등 다른 분야에서는 굉장한 나라다. 대통령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이 모든 것을 다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정치집단 지성으로 국가경영을 해야 할 때다.”

송오미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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