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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만든 유력 후보’ 안철수의 딜레마
〈기자수첩〉 보수·진보 마음 얻은 安, 끝까지 통합 유지할 수 있나
2017년 04월 18일 (화)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4·13 총선은 국민의당이 선전한 선거지만, 안철수 대표에게는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보수와 진보가 극명히 나뉘어 있고, 중도는 힘이 없는 우리나라 정치 환경에서 제3당이 됐다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안 대표는 아마도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하고,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보 세력 교체’가 이뤄지는 그림을 그렸겠지만, 민주당이 제1당이 되면서 안 대표가 대권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이제 안 대표는 모든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낀 지지율 10%대 중소 후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4·13 총선이 끝난 직후, 기자와 만난 정치권의 한 노정객은 국민의당 선전에 박한 평가를 내렸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의 최종 목표가 대통령이라면, ‘중도 진영의 제3당 후보’라는 타이틀은 득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었다.

이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진보 진영의 ‘원톱’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안 후보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게 밀려 ‘문재인 대항마’ 자리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4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안 후보가 얻은 지지율은 11.4%에 불과했다. 이재명 성남시장(11.6%)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보수 정당이 무너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 뉴시스

‘유력 후보 안철수’ 만든 보수

그랬던 안 후보를 일약 유력 대권 주자로 만든 것은 ‘최순실 게이트’였다. 최순실 게이트는 가뜩이나 ‘인물난’에 시달리던 보수 진영을 완전히 난파시켰다. ‘친박(親朴)’이 박근혜 전 대통령 후계자로 점찍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반 전 총장은 지지율 하락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라는 주홍글씨는 황 권한대행으로부터 대선 출마 자격을 빼앗아갔다. 여기에 민주당에서 ‘통합’을 외치며 문 후보와 각을 세웠던 안희정 충남지사마저 경선에서 패퇴하자,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은 일제히 안 후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리얼미터〉 기준 1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던 안 후보 지지율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탄 것은 4월 1주 이후. 안 지사의 경선 탈락이 확정된 시점이었다. 지금 안 후보에게 몰려든 30~40%의 지지율은 안 후보 개인의 지지율이라기보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보수 정당의 인물난이 낳은 반사효과에 가깝다는 의미다.

지난 15일, 1년 만에 기자와 다시 만난 노정객은 안 후보의 상승세를 이렇게 평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중도 후보가 이렇게까지 부상(浮上)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로 보수 정당이 후보를 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쪼그라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 후보가 대통령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운을 타고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보수 끌어들인 安의 딜레마

문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을 구성하는 요소가 매우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3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안 후보 지지자 중 91.5%가 국민의당 지지자, 56.5%가 바른정당 지지자, 28.5%가 자유한국당 지지자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에서 43.3%, 대구·경북(TK)에서 40.1%의 지지를 받았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이고, 호남이 ‘진보 정권의 산파’ 역할을 해온 지역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안 후보의 ‘본진’은 호남·진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바른정당과 한국당은 보수 정당이다. 또 보수 정당의 전통적인 ‘텃밭’은 영남, 그 중에서도 TK다. 안 후보 지지층에는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이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 안 후보는 보수와 진보가 뒤섞인 지지층 사이의 거리를 좁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 뉴시스

이런 이유로, 안 후보는 지금껏 어떤 대선 후보도 겪어보지 못한 딜레마에 봉착한 상황이다. 진보 지지자들과 보수 지지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딜레마다. 민영삼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영입 논란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안 후보 캠프에서는 보수 진영으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민 교수를 영입했으나, 진보 진영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옹호 발언을 했던 민 교수 영입을 탐탁찮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 문제 역시 뇌관(雷管)이다. 지난해 12월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 지역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 혹은 차기정부가 배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67.8%에 달했다.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는 69.2%까지 올라갔다. 반면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조기 배치 찬성 여론이 67.4%에 달했다. 호남·진보 지지층과 TK·보수 지지층 사이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다는 방증이다. 안 후보 지지층은 작은 실수 하나로도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매우 위태로운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안 후보 지지층의 결속력은 문 후보에 비해 허술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안 후보 지지층은 ‘반문 연대’와 궤를 같이 한다. 안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는 것보다, 문 후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응집력의 근원이다. 이러다 보니 적극투표층에서의 지지율 차이는 전체 지지율 차이보다 더 벌어진다.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발표한 결과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44.8%, 36.5%였지만, 적극 투표층에서는 문 후보가 전체 지지율보다 4.2%포인트 높은 49.0%, 안 후보가 0.9%포인트 낮아진 35.6%였다. ‘겉보기 등급’은 비슷하나, 문 후보와 안 후보 사이에는 지지율의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18일 〈시사오늘〉과 만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안 후보의 지지율 중 10%만 본인 지지율이다. 나머지 20~30%는 한국당 지지율이 건너온 것이다. 이러니까 안 후보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안 후보는 양쪽 지지율을 다 먹는다는 계산을 했겠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문 후보 쪽에서 이슈메이킹 몇 개만 해도 안 후보 지지자는 후두둑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안 후보는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니다.”

과연 안 후보는 ‘지지층 내부의 갈등’이라는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까. 이 ‘폭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은 물론 정치인으로서 안 후보가 걸어갈 길도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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