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김이수 헌재소장´ 부결파동 - 대통령과 여야政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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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김이수 헌재소장´ 부결파동 - 대통령과 여야政略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7.09.1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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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편향 부실 인사…검증기준 시스팀 쇄신을
議政史 관통한 인준정쟁, 거듭된 국회파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 정부의 인사 스타일과 국회의 정쟁.정략이 '김이수 헌재소장' 부결파동으로 정국 전체에 혼란을 몰아오고 있다. 취임 이후 70~80%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율을 방패 삼아 4개월째 이어져온 문 정권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최근 국회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파동'은 여와 야, 청와대 모두에 문제가 있다. 소통과 협치의 정치 기본을 외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1차로, 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를 위한 '소통의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대통령 지지율만 바라보며 야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치 않았다. 집권세력의 이런 자세로는 효과적인 개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이번 정기국회에서 검찰·국정원 개혁, 방송개혁, 증세, 건강보험 확대 등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들 법안과 관련, 현재 정부여당은 민생과 적폐청산을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수야당은 정치 보복이며 국가 재정을 허약하게 할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강력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문 정부 출범이후 인사 표결이 부결된 것도 이번이 첫 사례다. 정권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청와대와 여당이, 고공행진 중인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일에 소홀, 정치적으로 밀어 붙이면 쉽게 통과될 수 있다고 과신한 결과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 부결파동 이전인 지난 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퇴근하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뉴시스

이번 사태로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220일 넘게 이어진, 사상 최장기 소장 공백 사태가 앞으로 더 지속되게 됐다.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3개월 여를 표류해 오다 결국 정세균 국회의장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 출석 의원 293명 가운데 찬성 145명, 반대 145명, 기권 1명, 무효 2명으로 부결 처리됐다.

이 부결에 여권의 반발은 참으로 거칠었다. 청와대는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당리당략적인 판단을 한 집단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특히 국민의당이 캐스팅 보트로 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  추미애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사)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개원식 및 학술토론회에서 축사를 한 후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등을 대놓고 외면했고, 국민의당을 땡깡부리는 집단이라는 등 막말까지 쏟아냈다. '협치(協治)의 선봉'에 서야 할 여당대표가 야당과 반목하는 모습을 생생이 노출시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렇지만, 야당은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여당은 오늘의 결과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 추 대표를 향해 “김정은 정권과는 무한대화, 야당과는 투쟁을 하겠다는 추 대표의 주적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한 번이라도 대화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서 “여당이 운동권 정당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김정은과 대화하려는 그 인내심의 100분의 1이라도 야당한테 쏟아주시길 당부 드린다”고 꼬집었다. 2017년 정기국회 시작부터 정가가 삐그덕 거리고 있는 것이다.

野, "김 후보자 전력 - 시대 영합"

김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정치적 진보 편향성과 군 동성애 옹호 논란이 결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보수야당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었다. 2015년 5월 헌재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인 교원노조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할 때도 김 후보자는 해당 조항이 해직 교사의 자주성과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여기에 더해 김 후보자가 지난해 7월,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와 관련, 김후보자에 대한 기독교계의 거센 반대 여론이 일자 이를 의식, 국민의당에서 막판에 반대표가 쏟아져 나왔다는 분석이다. 비공개투표라 정확한 판별은 불가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일부 의원이 이탈, 인준안 부결로 이어졌다며 여당이 국민의당을 향해 집중 비난 공세를 펼친 것이다.

야권의 반대이유를 심층적으로 보면, 김 후보자는 한때 이석기 전 의원의 통진당이 북한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남한내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자는 모의를 한 사실이 대법원에서 인정됐는데도,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명백하게 헌법상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추종한 정당인데도 면죄부를 주려 했던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판결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후보자는 당시 시민군을 태워준 버스 운전사에게 사형을, 공수부대 진압군의 폭력적 행태에 부대를 이탈한 방위병 166명에게는 모두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 따라서 독재정권 때는 그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고, 민주당 추천 헌재 재판관이 돼서는 또 그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린 김 후보자였기에,  대통령 탄핵까지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수장감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이미 일찍이 형성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야간 대립기조는 이렇게 조성되기 시작했다. 

사법부 장악흐름 - 문 대통령 '코드인사'

이른바 '코드정치' 등 청와대의 인사방식과 야권의 정략적 행태가 뒤엉켜, 혼돈의 '한국정치 부정적 정쟁타성'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이번 김이수 부결파동으로 여권의 '사법부 인사장악' 시도에도 제동이 걸렸다. ‘코드인사’, ‘보은인사’란 비판까지 나온 상황에서, 1차로 문 대통령의 이른바 '인사' 문제점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하며 사법부 개혁의 신호탄을 알린 바 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에는 법원 내 진보 성향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낸 김형연 당시 현직의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임명했다.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 등을 명분으로 특정 성향 판사와 변호사,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사법기관 핵심부에 포진시키려 했던 것이다. 부작용은 곧 나타났다. 헌법재판관 후보에 올랐다가 ‘정치 편향성’에다 의심쩍은 ‘주식 대박’ 의혹까지 겹쳐 사퇴한 민변 출신의 이유정 변호사가 단적인 사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사법부 분위기는 현직 판사가 ‘재판은 정치’라며 정파적 성향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정도로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거나 흠결 있는 후보가 이념 성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발탁됐다가 낙마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번 부결 사태도 그런 코드 인사의 귀결인 셈이다. 이번에도 야권의 반발은 ‘코드’만 맞는다면 중책을 맡기어 벌어진 인사 난맥과 사법권력 교체 기도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고위공직자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에 이어 6명째다. 인사 때마다 전문성 부족, 논문 중복게재, 음주운전,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투자 등 의혹이 쏟아졌지만, 문 정부는 오직 정면돌파만 하고 강행했다. 야당이 이념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반발했으나, 설득은 커녕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답했다. 야당에서 ‘지지율 독재’라고까지 하며 반발, 장관과 헌법재판관 등 5번의 낙마결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김이수 인준안 부결 역시 좌편향 코드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심판으로 받아 들여진다. 

이와 관련, 앞으로의 최대 관심사는 차기 대법관 임명문제에 쏠려 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진보성향의 재판관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차기 대법원장에 파격 임명했다.  때문에 김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은 국회 동의부터 큰 진통을 겪고 있다. 대법원장은 3000명에 달하는 전국 법관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자리이기에 '사법부 코드인사'의 핵심으로 더욱 주목을 끌어 왔기에, 지난 15일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부터 불발됐다.

당초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그의 임명을 반대했고, 국민의당도 “이념적 측면에서 편향된 분”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다행이 논란중이던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인사 난맥상을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고, 여당도 대야 공세가 다소 누그러지며 여야간 대타협의 기미가 엿보인 적도 있긴 있었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여행경비 관련 위증 등을 했다는 사유를 들어 여전히 보고서 채택을 반대하고 있으나, 현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사법부 공백을 내세워 청문 보고서 채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코드인사' 폐해

현시점에서 '김이수 파동'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른 바 '코드인사' 폐해의 시대사적 사료는 다시 엄중한 교훈을 남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3년 당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국회 부결이 있다.

당시 통합신당을 제외하고 다른 3당이 모두 당론투표가 아닌 자유투표를 택했는데도 찬성 87표, 반대 136표라는 압도적인 반대가 나온 것은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코드인사에 대한 사실상의 명백한 거부였다. 그렇지만, 노대통령측은 그때도 이같은 의미들을 냉철히 읽으려하지 않고 ‘거야(巨野)의 횡포’ 운운하며 감정적으로 반발했다. 먼저 야당 대표들을 만나 국정운영에 대한 국회 차원의 협조를 구해야 했지만, 도리어 대야 공세에 집중했다.  소통과 대화의 협치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다.

당시 노 전대통령의 '코드인사'는 사실 극심했다. 지난 2003년 충성 발언과 ‘돌출’ 언행으로 물의를 빚어 온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질이 그 대표적이다.  그는 취임 직후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는데 국무위원이 몸으로 막아야 할 게 아니냐”고 메모지를 꺼내 읽어 국무회의를 ‘정치판 회의’로 만들었다. 그의 노 전대통령을 향한 기행(奇行)은 지나칠 정도였다. 결국 공개적 부작용으로 그는 임명 보름도 안 돼 경질되고 말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코드인사의 문제점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나게 했다.

당시 정국 분위기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들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에만 열중하고, 국정은 뒷전으로 밀어놓아 공무원들의 기강해이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가기강 해이 흐름은 당시 KBS 사장, 국정원장 인사 파동을 비롯해 철도파업-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등과 관련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데서도 잘 나타났다.

노 정권 당시의 '윤성식 파동' 관련한 각종 언론들의 보도논평 내용은 그때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감사원장 부결 결과는 의원들의 자유스러운 판단에 따른 것이므로 존중되어야 하고, 겸손히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날 한겨레신문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심전심 공조를 통해 인준을 거부한 것은 정략적 고려와 감정적 선택이 뒤섞인 거대야당의 횡포'라고 해석했다. 경향신문의 경우는 '인준부결은 후보자의 확실한 결격 사유가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의도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해석하고, 다만 '노대통령과 정치권 전체가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정부와 국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을 충고했다.

국민들은 국회가 국민들의 다수 의견에 반하여 거듭 정략적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지만, 실제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라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감사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 부결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좀더 부각시켜 알려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리당략적 접근을 용인하는 듯한 일부언론의 양비론적 시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당시 노 대통령의 '코드정치'에 대한 비판강도는 실상 보다 훨씬 심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적 불신수위가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정치권 사법부 인선 파동

사실, 법관 인선을 둘러싼 정치권 파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4인의 공석이 10일째 이어진 일도 있었다. 이는 늑장 개원한 국회가 사법부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커녕, 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만 계속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대법원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법정 개원일을 훌쩍 넘겨 문을 연 국회가 사법부까지 후진적 '정치의 덫'으로 옭아매버린 형국이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13인) 가운데 3분의 2(9명) 이상의 합의체가 행사하게 돼 있기에, 사법부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는 결국, 국민이 양질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빼앗고, 3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중대 사태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경우도 있었다. 2012년 부적격 논란을 빚은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세금 탈루, 아들 병역 특혜 논란에 이어 저축은행 수사 축소 개입 의혹까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백화점식 의혹이 쏟아진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국회의 심의기능이 그렇게 중요함을 증거한 사례였다.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54회 국회 정기회 제5차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 후보자의 인준안이 부결되자 더불어민주당이 정회를 요청한 가운데 바른정당 주호영(왼쪽부터)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아래)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정세균 의장이 논의하고 있다.

한국정치 인준 파행 時代史

각종 인준을 둘러싼 국회 파행의 사례들도 오늘의 국회상에 큰 교훈을 던진다. 지난 1988년 당시 ‘김종필 총리’ 인준을 둘러싸고 국회에서는 여야간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각종 국가 현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여권은 국정공백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총리서리 체제를 가동시켰고, 야당은 총리서리 임명 즉각 취소를 요구하면서 총리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까지 나섰다. 임명동의안이 부결될까 불안을 느낀 여권이 물리적으로 투표 진행을 막은 것도 일단의 책임이 있었지만, 야당도 본회의에 집단 불참해 인준을 무산시켰다. 위헌시비는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을 더욱 격앙시켰다. 이 역시 여권 지도부의 정치력 부족 탓이었다.

또 2002년에는 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장상씨나 장대환씨가 총리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여야간 정쟁으로 잇따라 부결되고 말았던 것이다. 여권인 민주당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장대환씨 총리 인준에 반대한 데는 그 나름의 정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이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운영은 큰 상처를 입었고, 기존 정책도 밀어 붙이기보다는 정치권의 동의와 합의를 전제로 시행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지난 2009년 국회가 계속 표류한 것도 '정략과 정쟁'의 대표사례였다.  당시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책임자 처벌, 과잉수사 의혹 국정조사 및 검찰개혁위원회 설치 등 ‘5대 선결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부족해 미디어법의 ‘6월 표결처리 합의’ 무효선언까지 하고 이에 한나라당이 반발, 국회가 열릴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정략으로 일관해 유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사실 처음부터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양상이었다. 이런 정국기류 때문에, 그 때 박근혜정부는 출범한 지 1년 4개월밖에 안 됐었지만, 분위기는 꼭 정권 후반기처럼 어수선하기만 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오직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정략’만 횡행했다. 이로 인해 당시 비정규직법 외에도 미디어법, 공무원연금법,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법, 벤처기업 육성법, 할부거래에 관한 법, 여신전문금융업법, 교통사고 특례법, 이자제한법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각종 민생법안들은 모두 무기한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한국 국회'의 현대사는 이렇듯 협치완 거리가 멀었다. 여야는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오늘의 왜곡된 정치현실 책임을 따지자면 여야 모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야권 政略도 문제

이번 '김이수 파동'과 관련, 야당의 정략성도 비판치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표결 직전까지도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찬반 여부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인준문제와 연계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가히 정략적 발상에 빠져 있었다.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대통령 탄핵 등을 결정하는 최고 헌법재판기관을 장관과 청와대 행정관 인사 문제와 결부시킨 것이다. 이런 마구잡이식으로 엮어 낸다면, 앞으로도 헌재 소장 임명은 쉽지 않고, 국정도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랬음에도 야당은 부결 결과에만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한심한 작태를 연출했다. 야당이 아무리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논리도 명분도 없이 힘으로 국정을 발목 잡는 것은 비판받고 지양돼야 함이 마땅하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엉뚱하게도 다른 공직후보자 인사 문제 및 추경안 처리 등과 연계하는 바람에 임명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비정상적 절차를 통해 표결이 이뤄지게 만든 것이다.

한편, 일부 기독교계에서 김 후보자가 동성애 관련 헌재 결정 과정에서 옹호하는 소수의견을 냈다는 주장도 야당의 정략적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사실 관계부터가 정확치 않았다. 김 후보자는 당시 헌재의 소수 의견에서 군대 내 동성애를 옹호했던 게 아니라, 옛 군형법의 일부 조항이 너무나 불명확하고 포괄적이란 점을 지적했을 뿐이었다.  

대체로 야권의 논평은 상대 당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국회는 정부 인선안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이수 후보자의 경우 그야말로 당리당략에 따라 인사청문회가 이루어지고, 임명동의안 표결에서도 같은 기조가 유지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보다는 흠집 내기와 발목 잡기로 일관한 보수야당도 오늘날 정치파행의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1차책임은 與, '協治와 소통' 통합의 시대를

국정 운영의 모든 책임이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에 있음은 당연하다. 야당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청와대 책임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김 후보자 낙마는 사실상 출범 4개월을 갓 넘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의(民意)의 경고다. 앞으로 이 정권은 여소야대 국회와 3년을 함께 가야한다. 그만큼 협치(協治)와 소통이 필수요소다.

문재인정부가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정부 입법·법률안은 현재 100여개에 달한다. 초당적인 협조를 얻어야 할 외교안보 현안들도 쌓여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사안들이다. 의석이 120석뿐인 여당이 야권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100대 국정과제는 물론 외교안보와 민생경제 등 현안까지 국정혼란의 연속선상에 서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의 국정 운영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또 다른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1차적으로 부실한 검증과 편향 인사를 반복해 온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쇄신이 요구된다.

또한 대통령은 코드 인사의 한계를 벗어나 최고의 인재군, 능숙한 전문가군을 발굴, 내각과 청와대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반대 야당이나 비판 여론에는 설득력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힘은 정치권의 화해와 통합 노력, 모든 경제 주체의 능률과 혁신 추구에서 나온다. 코드 일치를 따지기에 앞서,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법부터 찾아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民意에 진실로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임 헌재소장과 결원 재판관 후보자 인선을 서두르고, 야당도 무책임한 공세를 중단하며 소통과 협치로 헌재 정상화를 앞당겨야 할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여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야권과 진정한 협치.소통의 길로 가야 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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