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전지판 밑에서도 벼·대파가 자라네”…농가와 태양광의 지속가능한 공생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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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전지판 밑에서도 벼·대파가 자라네”…농가와 태양광의 지속가능한 공생 [르포]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3.09.1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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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위로 태양광전지판…그늘 우려 있지만 ‘차광률’ 조절하면 성장 ‘거뜬’
제도 없어 실증단지 77곳인데 적용 농가 1곳…“영농태양광법 통과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시사오늘 권현정 기자
지난 13일 영남대 소재 영농형 태양광 실증 농지 내 한화큐셀 협소형 양면 태양광전지가 적용된 2구역에 벼가 자라고 있다. ⓒ시사오늘 권현정 기자

한 쪽은 푸른 대파 밭, 다른 쪽은 노란 논이다. 파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논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노랗게 익어가는 벼 위로 고르게 물을 뿌렸다.

지난 13일 방문한 대구광역시 영남대학교에는 약 590평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 실증 농지가 조성돼 있었다. 김욱경 농감(농가의 지도감독관)은 더 잘 자란 대파를 묻는 기자에게 “안 예쁜 대파가 없다”며 파란 대파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허수아비 대신 밭과 논을 지키고 선 태양전지판은 낯설었다. 3~5m 높이에 지붕처럼 비스듬히 도열한 태양전지판들을 두고 오수영 영남대학교 교수는 곧 익숙해질 풍경이라고 자신했다. “도입을 안 할 이유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배추 맛 차이 있지만, 품질 아닌 쓸모 차이…수확량 감소 정도도 낮아”


이날 영남대 부지에선 한화큐셀 주최 ‘영농형태양광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을 함께 수행 중인 영남대, 한화큐셀, 한국동서발전 관계자 등이 자리했다.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2018년 농촌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한 이래 영남대 실증사업을 포함해 영농형 태양광 보급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한화큐셀, 영남대 등은 지난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진행하는 ‘작물별 생산성을 고려한 영농형 태양광 표준모델 개발 및 실증’에 국책 연구기관으로 선정, 해당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해당 실증사업 현장에서 만난 농작물들은 농사 ‘잘알못’(잘 알지 못하는)인 기자가 보기에도 잘 크고 있었다. 태양광이 설치된 구역과 설치되지 않은 구역 사이 농작물 차이도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태양광전지판을 논이나 밭 위에 설치하면 작물이 설 자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딴 판이었다.

김 농감은 “배추로 보면, 태양광 설치된 곳과 설치 안 된 곳에 맛 차이가 있긴 있다. 태양광 아래가 좀 더 길쭉하게 자란다. 그래서 이쪽(설치 안 된 쪽)은 김치용이고, 저쪽은 샐러드용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품질 보다는 용처에 차이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수확량의 차이도 크지 않다고 부연했다.

영남대에 따르면, 지난 2년(2021년 가을~2022년 봄) 영남대학교 실증단지 4개 구역 조사 결과 수확량은 일반 농지(100%) 대비 평균 80% 수준으로 집계됐다. ‘광포화점’이 낮은 식물 관련 일부 실증(2022년 봄 대파, 2021년 가을 보리 등)에서는 태양광 농지의 수확량이 일반 농지의 수확량을 넘어서기도 했다.

실증사업을 담당하는 정재학 영남대 교수팀은 영농형 태양광은 농작물에 필요한 만큼의 태양광을 할당하고, 버려지는 태양광을 태양광전지에 적립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식물마다 적정 광합성량인 ‘광포화점’이 있고 이를 넘어설 경우 빛을 뱉는데, 이를 계산해 차광률을 지켜주면 식물이 자라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차광률은 그림자의 농도 등을 활용해 조절할 수 있다.

정재학 교수는 “보통 일반 태양광 모듈은 1m~1.5m 위에 설치된다. 그러면, 그림자가 굉장히 진하다. 그런데, 4m 정도만 올려도 그림자 부위는 넓더라도 그림자가 진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에서 서리로 많은 농가가 냉해를 입은 해가 있었다. 그때 영농형 태양광을 활용한 포도만 냉해가 안 왔다. 발전을 할 때 발생한 열이 온기를 머금게 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단 것이다.

영남대학교 영농형태양광 실증단지 전체 전경. ⓒ한화큐셀
영남대학교 영농형태양광 실증단지 전체 전경. ⓒ한화큐셀

이날 현장에서는 적절한 차광률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실증단지는 활용한 전지에 따라 4개 구간으로 나눠져 운영됐는데, 각각 △단면형 일반(300평, 50kW) △협소형 양면(50평, 10kW) △양면형 수직(150평, 20kW) △양면형 일반(90평, 20kW) 전지가 설치됐다.

2번 구간에 설치된 협소형 양면 전지는 한화큐셀이 생산한 영농형 전용 전지로, 4번 구간에 설치된 양면형 일반 대비 작아진 게 특징이다. 일반형 패널과 비교해 면적은 52%, 가로폭은 67% 수준으로 줄었다.

김 농감은 가장 농사하기 좋은 시스템을 묻는 질문에 협소형 양면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그냥 물을 뿌리는 것과 비를 뿌리는 건 다르다. 비에는 미네랄이 있어서 작물에 더 좋다. 전지가 작으면 땅이 비를 더 고르게 맞는다”고 부연했다.

LED를 활용해 부족한 빛을 보완하거나 아예 수직형으로 세워서 그림자를 얕게 만들어, 태양광 전지의 효율 보다 빛을 더 쬐는 데 주목한 사례도 확인 가능했다. 빗물을 모아 고루 뿌리는 빗물순환 기술도 적용됐다.

 

법안 통과 ‘큰 산’ 남아…안정성 우려는 설비·운영·철거 ‘지침’으로 해소


지난 1년간 해당 실증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은 총 130MWh(메가와트시)다. 현재 가격 기준, 판매한다면 연간 약 3000만 원의 매전수익이 남는 셈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도 한국동서발전(이하 동서발전) 측은 현재 벼 농사 기준 영농형 태양광을 병행했을 때, 단순 농사 수입 대비 최대 6배의 농가 소득 증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농업계는 농가 수익 증대가 농지는 있지만 농민은 없어서 생기는 ‘식량안보’ 문제 해결 해소의 주요 정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일반 농가에서 영농형 태양광은 찬밥 신세다. 현재 전국에서 실증이 진행되는 부지는 총 77곳이지만, 실제 농가에 설치된 사례는 보성 소재 농가 단 한 곳이다. 영농형 태양광을 지탱할 제도가 없어서다.

현행 농지법에는 영농형 태양광 관련 정의나 제도가 없다. 때문에, 현재 영농형 태양광 실증사업은 최장 8년간만 사업을 허용하는 ‘농지 전용허가’나 ‘타용도 일시허가’ 등의 정책을 빌려 쓰고 있다. 태양광 설비의 수명이 30여 년인 점을 고려하면, 설비가 닳기 전에 철거해야 하는 맹점이 존재한다. 또, 간척지 농지에는 태양광 시설 설치를 허용하면서, 농지를 아예 태양광 시설로 전환하는 사례도 빈발한다.

이에 김승남 의원 등이 △타용도 일시허가 기간을 20년으로 늘리고 △영농형 태양광을 시범단지를 토지이용 행위 제한 구역인 농업진흥구역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농지법 개정안을 내놨다. 다만 법안은 계류 중이다.

ⓒ시사오늘 권현정 기자
정재학 영남대 교수가 일본의 영농형 태양광 허가 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은 전체 농지 중 75% 이상이 포함된 ‘제1구역’ 농지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현정 기자

정재학 교수팀 등은 우선 내년 3월 시행되는 농림부 제정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농촌공간재구조화법)내 ‘재생에너지 지구’를 동인으로 농민들을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농촌공간재구조화법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지구는 ‘탄소중립 정책 대응을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시 시설을 집단화할 필요가 있는 지구’로, 특화지구로 선정돼 관련된 시행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정 교수는 “시범사업의 시한이 내후년이다. 현재는 실증단지기 때문에 농민에 피해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8년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농촌공간재구조화법을 통해 영농형 태양광이 본격적인 발걸음을 뗄 것”이라고 평가했다.

태양광 설비의 ‘안전성’ 우려는 구체적인 지침 배포를 통해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수 국가는 영농형 태양광을 제도화해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정부가 태양광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농지 일시사용 허가 제도를 만드는 등 영농형 태양광을 정책적으로 키우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시설물 설치를 위한 소진 농토는 10% 미만으로 할 것 △철거 시 농토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콘크리트, 시멘트가 아닌 스크류를 활용해 설치할 것 △중금속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10년 당 1회 씩 실태 조사 등의 내용이 담긴다.

향후 농가에 보급할 작물별 지침 등 작성도 추진 중이다. 정 교수는 “대추, 쌀 등은 영농형 태양광 아래에서 경작하는 방법이 조금 바뀌어야 한다. 숙기(익는 시기)가 느려지고, 필요한 비료도 달라진다. 생산 방법을 담은 지침이 현재 있고, 앞으로 대상 작물을 늘려가며 지침을 제작, 농민들에게 보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비용 부담, 운영 부담 감소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동서발전 측은 사업이 확산되면 참여를 희망하는 농민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사전 사업추진 편의성 제공을 위해 해당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사업성 분석, 투자비, 운영비, 설계, 유지관리 부문을 다룰 방침이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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