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최선의 학교폭력 대처법은 진심어린 사과” [토정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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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준 “최선의 학교폭력 대처법은 진심어린 사과” [토정포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1.01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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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교육에 집중해야 학교폭력 예방”
“말조심만으로 학폭 반으로 줄일 수 있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이 10월 30일 토정포럼 연단에 섰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이 10월 30일 토정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낭만’으로 포장됐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가 됐다. ‘학교폭력’ 얘기다.

포커스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이동하자, 누군가의 ‘추억’은 누군가의 ‘잊지 못할 상처’였다는 진실이 드러났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폭력에 둔감했다는 사실도 반성하게 됐다.

반성의 끝은 새로운 방향의 설정이다. 더 이상 아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월 30일 마포에서 열린 <토정포럼> 연단에 선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은 다양한 제도적 방안을 제시했다.

 

“학교폭력에도 징후 있어”


정 소장은 학교폭력에도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 소장은 학교폭력에도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먼저 학교폭력의 개념과 현황을 짚은 정 소장은 “최근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실의 넓이는 66㎡(제곱미터) 정도고, 인원은 25명 정도 된다”면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 25명이 이렇게 좁은 데서 함께 부대끼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서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일정한 사회에는 항장 일정한 범죄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학교폭력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불이 나기 전에는 연기가 나는 것처럼, 학교폭력에도 징후가 있고, 이것을 보호자가 빨리 알아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자녀가 학교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몇 가지 징후와 사전 대응 방안을 알렸다.

우선 정 소장은 학교폭력 피해 징후로 “안경이 깨지거나 얼굴에 상처가 나거나 옷이 찢어지는 것처럼 직접적인 단서가 있고, 용돈을 과다 지출하는 것처럼 간접적인 단서가 있다”면서 “학교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나 학교 옮기면 안 될까?’, ‘나 오늘도 머리가 아파’, ‘별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내 휴대폰 만지지 마요’ 같은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는 충분히 피해자와 상담을 해서 당한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는 게 먼저”라며 “그 다음에는 자녀의 좌절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편으로는 “학교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할 때 꼭 녹음을 해야 한다”며 “학교가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팁을 남기기도 했다.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서 어떤 절차가 있는지, 또 어떻게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학교폭력 상황에 노출됐을 때는 “친구의 장난이나 비아냥에 상처받았을 때는 감정을 명백히 표현해야 한다”며 “가해학생이 피해자를 괴롭히면 ‘나 싫어’라는 말을 명백히 표현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참기 힘들면 모든 급우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싫어’라고 외쳐야 한다”며 “이런 경험이 나중에 가해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귀띔했다.

정 소장은 또 “가해자가 피해학생에게 요구하는 게 선을 넘어서면 반드시 부모나 교사와 상담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면서 “‘일단 생각해볼게’라고 답한 다음 부모와 교사와 상담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돈 문제는 아예 만들지 않아야 한다”면서 “일정한 용돈을 주고 매달 지출장을 작성하도록 해야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교사와 부모 역할이 중요”


정 소장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 소장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린 정 소장은 “가장 좋은 건 예방”이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에서 부모의 적절한 훈육이 이뤄지는 것이겠지만, 이게 여의치 않다면 국가적·사회적 예방 정책이나 캠페인이 필요하다”면서 10가지 예방 전략을 제안했다.

첫 번째로 정 소장은 ‘연예인 학교폭력 예방대사 위촉’을 제시했다. 그는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은 부모나 선생님 말보다 연예인 말을 가장 잘 듣는다. 거의 신처럼 떠받든다”며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연예인들이 ‘학교폭력 안돼요’라고 말한 걸 방송에 내보내면 그 학교는 그날 하루 학교폭력이 없어진다”는 경험담을 말했다.

두 번째로는 교사와 학부모에 대한 예방교육을 주장했다. 정 소장은 “학교폭력예방법 제15조를 보면 초중고생은 강제적으로 교육을 듣도록 돼있는데 가르칠 사람도 예산도 시간도 부족하니 대충 영상을 보여주고 만다”며 “이러면 제대로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예방교육을 위해 강연회를 활성화하거나 자격증제를 만드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학년과 저학년을 연결해서 고학년이 저학년의 생활을 도와주는 방안도 내보였다. 정 소장은 “상담을 해보면 피해자들은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봐도 그렇지 않나. 가해자만 패거리가 있고 피해자는 친구가 없다”면서 “도와줄 수 있는 친구나 선배를 연결해주는 것만으로도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카드게임 같은 간접경험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에서는 학교폭력 예방 카드게임을 즐기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며 “간접경험을 통해서 가해 위험성을 알려주는 게 좋다”고 했다.

환경 재설계와 최신기술을 이용한 예방책도 제안했다. 정 소장은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학교와 음습하고 CCTV도 하나 없는 학교가 있다면 학교폭력은 후자 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곳곳에 희망의 그림을 넣고 ‘폭력멈춤’, ‘욕설멈춤’ 등의 푯말을 설치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휴대폰 앱과 연동되는 원터치 117 직통 연결 같은 방법도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제가 강연에서 이런 주장을 하면, ‘시험에 안 나오는 것 가르친다고 불만이 쏟아진다’고 한다. 그때 제가 생각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내용을 시험에 나오게 하면 되지 않나”라며 “국어시간에 학교폭력 피해자를 방관하는 주인공 이야기 소설을 배우거나, 영어 독해 시간에 학교폭력에 관한 지문을 넣고 이것에 대한 시험을 보거나 에세이를 쓰게 하면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겠나.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에 이런 융합교육을 실시하면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 소장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자’ 이런 급훈 말고 ‘우리 학급은 다른 친구에게 폭력과 욕설을 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급훈을 마련했으면 한다”며 “이런 분위기가 학생들의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호천사 프로그램’ 마련도 주문했다. 그는 “경미한 사건은 학급 내에서 반장·부반장이 학급 재판을 열고 또래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도록 하는 수호천사 프로그램도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소장은 교사가 교육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가 행복한 교실에는 학교폭력이 일어날 공간이 없다. 교사가 행복하고 교사가 학급을 지배해야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어릴 때도 학교폭력이 없지 않았지만, 교사가 당사자들을 불러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요즘 교사들은 각종 민원과 행정잡무에 시달린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이 10~20건, 1년에는 1만~2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며 “행정은 행정공무원이 하게 하고 교사는 잡무에서 해방돼 교육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역할도 강조했다. 정 소장은 “초중고 학생 92%가 매일 1회 이상 욕설을 한다고 한다. 22%는 매일 10회 이상 욕설을 한다고 한다”며 “그걸 누구에게 배웠나. 부모에게 배웠다. 상담을 해보면 말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다 부모로부터 나왔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이어 “학교폭력 예방은 어른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언어폭력이 41.8%, 언어와 문자를 합치면 50%가 넘는다”며 “청소년들이 말조심만 해도 학교폭력 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소장은 ‘사과와 감사’를 외치며 강연을 끝맺었다. 정 소장은 “통계에도 나왔지만 학교폭력은 사소한 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가해학생 부모가 피해학생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면서 “범사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학창생활을 하면 좋겠다.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정 소장은 제4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사무관과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청소년범죄연구실에서 5년간 근무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학 로스쿨에서 학교폭력 관련 논문으로 법학석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교폭력 전문가다. 현재는 남양주시에서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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