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사람들’…‘인구위기’ 해결, 공동체 함께 나서야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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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람들’…‘인구위기’ 해결, 공동체 함께 나서야 [주간필담]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12.23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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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아수 20만명 시대…20대 여성, 10명 중 3명만 결혼에 긍정적
“국가가 담당해야 할 책임 개인에게 넘긴 결과…시스템 고쳐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전국이 강추위를 보인 지난 12월 22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눈썰매장 옆에 마련된 스노우 야드에서 아이들이 미니 눈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전국이 강추위를 보인 지난 12월 22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눈썰매장 옆에 마련된 스노우 야드에서 아이들이 미니 눈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이 시기가 전시만큼 위험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1년에 20만 명 이상이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지잖아요.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일종의 저강도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 이건 사람들이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죽는 거나 사라지는 거나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국민의힘 인재영입 인사로 발탁된 하정훈 대한소아청소년 개원의사회 부회장의 말(12월 9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입니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출생아수는 10년 사이 40만 명 대에서 20만 명대로 급감했습니다. 결혼도 전처럼 필수가 아닌 분위기입니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20대 비율은 2008년 남성 71.9%, 여성 52.9%에서 2022년 남성 41.9%, 여성 27.5%로 감소했습니다. 신혼부부 수는 5년 사이 132만 쌍에서 103만 쌍으로 줄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섯은 지난 2일 “이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국가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할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복수”라고 표현했습니다. 과거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대가라는 건데요. 

“기업이나 국가, 사회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부분을 개인에게, 여성에게, 가게에게 넘겼다. 생존하고 생활하고 싶은 사람들은 ‘애를 낳지 말자는 판단’을 하게 되는 데 이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 시스템을 고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건 가만 놔둔다.”(12월 6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불안한 고용·주거·양육 환경, 능력주의 중심의 과도한 경쟁 사회, 증가한 여성의 경제 활동 비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돌봄 서비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다음 대 삶은 나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는 상황입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한 개인이 아닌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공동체 곳곳은 지역·세대·이념·성별·계층적 균열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갈등을 봉합하고 공동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는 되레 편을 나눠 갈등에 올라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 간 신뢰도 약해졌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조사·발표한 ‘2023 레가툼 번영지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적 자본 지수는 세계에서 107위로 종합순위 29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육과 보건은 3위, 경제의 질(9위) 등은 비교적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는 162위, 대인관계·가족관계 103위, 사회적 관용(Social tolerance)는 53위에 그쳤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시장·자유·경쟁·성장을 중시하고 결국 적자생존 논리에 따른 무한 경쟁을 초래합니다. 과거 왕의 절대권력,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의 식민지 침략, 전쟁, 자본가의 야만적인 노동자 착취와 같은 물리적 형태의 폭력은 줄었지만,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착취(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라는 새로운 착취 앞에 놓이게 됐습니다. ‘자수성가 기업가 성공 신화’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아껴서 공부하는 상위권 학생’ 등을 성공 서사로 내세운 미디어에 둘러싸이다 보면 사회 탓, 미비한 제도 탓보다 ‘노력 부족’ ‘자존감 부족’ ‘간절함 부족’ 등 내 탓으로 돌리기 쉬워집니다. 개인은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적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합니다. 

올해 유행한 줄임말 중 하나인 ‘누칼협’에서 현세대의 문제인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누가 그러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인 누칼협은 처음에 한 게임에서 아이템을 잃은 유저들의 불만에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됐는데요.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무원 처우에 대한 한탄조의 글이 올라올 때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식으로 사용됐습니다. 고통과 불만 모두 본인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개인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기자는 최근 ‘인구 위기’를 주제로 한 독서모임에서 다수 모임원에게 “결혼·출산에 아예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충분한 자금, 주거환경 등은 갖추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모임원은 다음 같이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아야 국가가 유지되고, 국가가 유지돼야 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다. 하지만 이 생각이 ‘국가 유지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잘 키우지 못하면 ‘그러게 누가 아이 낳으래?’라며 개인에게 타박을 줄 것 같은 사회 분위기에선 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결혼하고 육아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수도권에 있고, 수도권 주택 가격은 턱없이 높다. 부모 도움 없이 대출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데, 시장 상황도 불안정하다.”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다’ ‘출산해도 경제적·정서적으로도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순 없을 겁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제도를 마련하고 정책을 추진해 개인에게 몰린 부담을 기업, 정부, 공동체가 함께 나눠 갖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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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2023-12-23 11:40:09
기레기들도 정신 못차리네.. 이와중에 지들 책임 하나 없고 정치권으로 또 떠넘김. 정치가 일을 만들기도전에 10년전부터 온갖 갈등과 프레임 만들며 사회에 피해준건 사적으로 기사 쓰며 과대표 했던 여기레기들이었다. 수백만의 사람이 기레기 욕 해도 기레기들은 피해자인 척 정치권으로 떠넘기네. 진심 사이코패스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