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의 4400여만 감별사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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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의 4400여만 감별사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4.04.07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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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튀어나온 公約은 대부분 空約으로 본다”
“서울공항 이전시킨단다…어디로 보낼 건가?” 
“돈 마구 풀겠다는 ‘포퓰리즘’은 무조건 경계”
“숫자 적은 청년 유권자, 젊은 층 분발해야”
“청년들, 미래 위해 포퓰리즘은 무조건 배격도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5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열린문화센터에 마련된 내곡동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5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열린문화센터에 마련된 내곡동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대검 차장검사, 법제처장 출신의 송종의 씨(83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고임의 변호사 일을 마다하고 논산에 가서 밤, 딸기, 수박 등을 재배하고 있다. ‘밤나무 검사’로 불린다. 

육군 법무관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귀국한 1967년 수송기에서 조국의 헐벗은 산을 내려다보며 베트남의 울창한 밀림지대와 비교가 됐단다. 그때 속으로 다짐했던 ‘이 땅을 초록으로 덮겠다’는 맹세를 수십 년 지난 후 실천에 옮겼다. 

송종의 씨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 건, 요즘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박은정 검사와 이종근 변호사(전 검사장) 부부 경우와 비교돼서다. 

公約의 탈을 쓴 空約들

검사들은 요즘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검사 출신이 대통령 된 후에 요직을 모두 검사 출신이 차지했다며 비판받다가, 선거철이 되니 검사 출신 인사들의 일탈행위 내지 비리가 연일 언론 도마 위에 올라 자식들 얼굴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는 것이다. 검사 대신 좋은 일 하는 판사 한 명만 더 소개하자. 같은 법조계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66)도 퇴임한 후에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강 씨는 요즘 “물 들어오는데 노 젓지 않고 뭐 하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는 법조계 정보기술(IT) 분야 일인자였다. 개업하면 IT 분야 사건을 대거 수임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사무실을 열지 않았다. 퇴임 후 계속 전국을 돌며 인공지능(AI) 강연을 하고 있어 개업을 늦출 수밖에 없단다. 강 씨는 5월께 작은 사무실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법조인 미담을 소개하는 쪽으로 글이 흐른 것은 공익을 위한 후보들의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전혀 모르는 분야,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분야에 대해 오로지 당선만을 위해 마구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분위기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지나치다. 

대표적인 空約이나 무리수를 두는 공약이 서울공항 이전, 여야 할 것 없이 내거는 각 곳의 고도 제한 완화, 전 국민에 대한 ‘공(空)돈’ 배포 등이다.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가슴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성남지역 민주당 후보 3명이 ‘서울공항 이전 공동선언문’을 작성, 김동연 경기도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은 서울공항 이전을 위한 용역을 추진하고 올해 ICAO(국제민간항공기구)를 방문해 고도 제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고 김 지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보도는 김 지사가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해당 부지에 판교 테크노밸리를 확장해야 한다는 그들 의견에 공감의 뜻을 비쳤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경제 부총리까지 지내서 공항 이전, 특히 정부 귀빈 전용인 서울공항을 이전하는 문제가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을 김 지사가 서울공항 이전에 공감했다고? 

서울공항 이전 공약은 당분간 이행 가능성이 0%인 空約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무엇보다 이전한다면 어디로 옮길 것인가? 성남만 개발 필요성이 있고, 수도권 다른 지역은 개발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서울공항 이전은 총선 후 즉시 ‘사라져 버릴’ 대표적 空約이다.

여야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놓는 고도 제한 완화 공약도 마찬가지다. 그들 권한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놓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모든 국제공항 주변 고도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다. 오래된 그 고도 제한 규정을 개정해 달라고 각국 요청이 가는 건 사실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해 9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ICAO를 방문, ICAO 이사회 의장에게 김포공항 고도 제한 완화를 건의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공항 주변의 고도 제한 완화는 우리가 아닌 ICAO 권한 아래 있다는 얘기다.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이 꺼내 들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모든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씩 줘서 경기를 일으키자고 한다. 그 정도 공돈으로 경기가 일어날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공짜에 대한 국민들 기대가 자꾸 커질 게 걱정이다. 나랏빚이 1000조를 넘어섰다. 괜찮다고? 청년들이 두고두고 계속 갚아나가야 할 돈이다. 청년들의 똑똑한 분별이 긴요한 이유다. 

104세 철학자의 제대로 된 忠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국회 세종시 이전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공약이 됐다. 여야 모두 찬성하고 한발 더 나아가 천도(遷都)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총선 후 세종시까지 왕복을 번거로워할 의원들이 미적미적 미룰 수 있는 공약이긴 하다. 

결국은 모든 공약의 실현은 정치권과 정부의 실행의지에 달렸다는, 안타깝지만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후보 공약은 ‘믿을 게 못된다’는 오래되고 평범한 결론에 이르고 만다.  

2021년 3월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퇴임 후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정치 입문에 관해 의견을 구했다. 김 교수의 긍정적인 조언이 최종 ‘결재’ 역할을 해 윤 대통령은 정계에 투신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대통령실에서 김 교수와 함께 오찬을 했다. 김 교수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전 정부 실정을 바로잡는 데 애썼다면 총선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여러 분야에서 제대로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 멘토인 김 교수의 이번 충언도 많은 내용을 함축, 대통령과 정부가 총선 후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으로 읽힌다.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라는 그 조언은 정부가 힘들게 이뤄내야 할 총선 후 미션이 무엇임을 가리킨다.  

김 교수가 소득주도성장, 재정 포퓰리즘, 탈원전, 집값 폭등 및 보유세 폭탄 등을 문재인 전임 정부 정책의 문제점으로 꼽았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청년들이 특히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감별사(鑑別師)의 사전적 정의는 ‘병아리 암수를 가려내거나 골동품, 보석 따위의 가치를 가려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돼있다. 이 글에서는 물론 그 감별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선량을 감별해야 하는 유권자를 말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2006년 4월 11일 이전에 태어난 국민 4428만여 명이 10일(사전투표  포함)의 ‘감별사’다. 2024년 3월의 주민등록 인구 5129만 명의 86.3%다. 50대가 19.7%로 가장 많고 40대 17.8%, 60대 17.4% 순이다. 

과장 없이 이들의 감별 성과가 앞으로 4년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먼 미래까지 결정한다. 노동·연금·교육개혁 등 미래를 위한 개혁작업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각종 투자와 국가부채 절감 등도 모두 국회 손아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년들 비중이 꽤 낮은 편이다. 20대 13.8%, 30대 14.8%에 불과하다. 미래 세대인 청년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게 돼있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다. 자기들 미래 몫을 제대로 챙기기 위해, 아니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이번 선거에서 슬기롭게 ‘사전 작업’을 벌여야 할 때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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