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없고 약도 없다”…‘아프면 안 되는’ 요즘 세상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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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없고 약도 없다”…‘아프면 안 되는’ 요즘 세상 [르포]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4.06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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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품절 1010건, 재고 5% 이하 항생제는 28품목
약사들 “의약품 대란 여전…처방 못 받는 환자 많아”
제약사 “약가 및 생산체계로 빠른 약 수급 어려워”
건약 측 “정부 정책, 약가 인상 외 뾰족한 방안 없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서울 강동구 한 약국에서 약사 B 씨가 약을 정리하고 있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항암 약제가 국내에 동이 나 한 달간 치료를 중단한 적도 있어요.”

경남 김해시에 거주하는 60대 A 씨는 지난해 대장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지난 2월엔 한 달간 치료를 중단했다. ‘의약품 품절 현상’ 때문이다. 그는 “의사도 없는데 약 까지 부족해 요즘엔 아픈 게 무섭다”고도 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가 지난 3일 공개한 ‘이주의 품절약 보고서’에 따르면, 1일 기준 도매추정재고가 바닥난 의약품은 1010건에 이른다. 도매재고 추정량 5% 이하인 항생제는 28품목이다.

건약 측은 “병원에서 소아 해열용 좌제, 장티푸스 백신, 임신부용 고지혈증치료제 등이 공급불안을 겪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전신감염 항생제는 대부분의 진료과목, 일차 진료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약제”라며 우려를 표했다.

기자는 의약품 품귀 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5일 서울 내 약국들을 찾았다. 강동구의 한 약국에 근무하는 B 씨는 “요즘 의약품 품절 현상이 여전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도 마라”며 “최근까지도 난리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감기가 유행할 땐 쌍화탕을 찾는 분들이 많았는데 계속 품절이라 드리지 못 하다가 오늘에서야 5박스 왔다”며 “하나가 수급되면 또 다른 하나가 품절되는 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 때문인지, 왜 이렇게 약이 부족한지 모르겠다”며 “약이 부족할 땐 다른 큰 약국에 연락해 차용증을 쓰고 빌려와야 한다”고 토로했다.

부족한 약은 품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또 다른 약국의 약사 C 씨는 “약이 없어 처방을 받지 못 하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다”면서 “얼마 전까진 어린이 물약이 계속 품절이었고, 지금은 ‘벨라제(부종 치료제)’가 품절 상태”라고 전했다.

이 같은 약 부족 현상의 원인은 ‘값싼 약가’와 국내 제약사들의 ‘공급 체계’다. 약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약가는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제약사들은 맞지 않는 수지타산을 감수하며 의약품을 생산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원가를 줄이기 위해 해외원료로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완제품 생산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무엇보다 약가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생산비용 때문에 원료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오는데, 최근엔 러우 전쟁 여파로 물류에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했다”면서 “국내외 정세에 따라 완제품을 만들고 수급하는 데 변동이 많아 제약사가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한, 국내 제약업계의 ‘다품종 소량생산’식 공급체계는 의약품 수급을 더 불안정하게 한다. 필요 수급을 제때 파악하기 어렵고, 품절 약에 대해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운 것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생산라인이 다품종 소량생산인데, 수급이라는 게 100% 예측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취급하는 약이 수십, 수백 종이 되는데 모든 약을 독립 라인을 만들어서 제조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생산계획이 몇주 치는 다 잡혀있고, 라인 세팅부터 정비와 클리닝 등을 거치고 원료 수급까지 해야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의약품 품절 현상이 나아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각에선 1년 치를 한꺼번에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제약사들 입장에선 팔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 역시 장기화되는 의약품 대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팔을 걷었다. 올해부터 ‘민관협력 디지털 플랫폼(DPGcollab)’에서 품절 의약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외 약가 인상이나 국내 원료를 사용하는 의약품에 약가 우대를 적용하는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약사들은 정부에 더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건약 측은 “정부가 품절약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민관협의체도 진행하고 있지만, 약가 인상 외에 뾰족한 방안을 만들지 못 하고 있다”며 “제약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공약은 찾을 수 없었으며, 늘 그렇듯 제약산업 지원금을 늘리는 형식의 공약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담당업무 : 의약, 편의점, 홈쇼핑, 패션, 뷰티 등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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