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정상과 비정상을 비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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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정상과 비정상을 비교하지 말라”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6.05.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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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점수 매기는 나라①>도덕성·합리성·합법성 없는 대통령은 평가대상 못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노병구 자유기고가) 

도덕성·합리성·합법성 없는 대통령은 평가대상 못 돼

역대 대통령들을 놓고 등수를 매겼다. 그 중에 1등은 박정희고 2등은 이승만이란다.

나는 일제시대에 지금의 서울 구로구 오류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오류리)에 있는 오류초등학교에 다녔다. 학년마다 한 학급씩 6학년까지 여섯 개 교실과, 교실과 똑같은 크기의 교무실이 일자로 연결된 작은 학교였다. 매해 가을에는 운동회가 열렸는데, 한조에 7~8명씩 옆으로 그려진 일자 출발선에 서서 총소리가 나면 동시에 출발해 도착 순서에 따라 1, 2, 3등을 가리고 공책이나 연필을 상으로 받았다.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시점에 출발해 누가 먼저 결승선을 밟는지를 겨뤘다. 1, 2, 3등은 그렇게 매기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장소·시간·과목·문제까지 똑같이 주어진 조건하에서 시험을 치러 점수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등수를 정한다. 본래 점수와 등수는 함께 달리든지, 맞붙어 대결을 하든지, 같은 조건에서 같은 행위를 해 누가 더 잘하는지 봐야 한다. 그래야 누가 봐도 공정한 채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식과 덕망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에게 지난 대통령들의 성적을 물어봤더니 역대 대통령들의 등수는 박정희가 1등, 이승만이 2등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5년 8월 많은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한 내용이다.

중진 언론인으로 알려진 조갑제는 한 술 더 떠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90점, 전두환과 노태우는 80점이라고 점수를 매겼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은 점수도 등수도 별로다. 그러면서 최고 득점자인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을 세우고, 또 공항 등 특별한 지역에 그들의 이름을 붙여 국민들이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하자고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무엇을 근거로 등수를 매기고 점수를 줬는지 알 수가 없다. 이승만은 건국이고 박정희는 경제라고 이유를 내걸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들은 시대도, 주어진 조건도, 하는 일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하는 일 중에도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나 업적 중에 특정한 것만 골라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다. 무엇을 어느 것하고 견줘 우월을 가리고 점수와 등수를 매긴단 말인가.

또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도덕적·합리적·합법적이어야 하고, 그것이 체질화된 인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평소 실천을 통해서 삶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는 시작도, 과정도, 물러나는 마무리도 흠결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정해진 법과 규칙에 따라 시작도 과정도 끝마무리도 엄격하게 지킨 후에야 그 결과를 갖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올림픽 등 권위 있는 세계적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사후에라도 위법한 사실이 드러나면 금메달을 몰수하고 출전권도 빼앗아버리듯,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도 이와 같아야 한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1등 박정희와 2등 이승만, 조갑제가 최고점을 준 네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물러난 이유와 과정이 모두 비정상적이다. 이승만은 도덕성·합리성·합법성을 두루 갖췄지만 마무리를 잘 못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시작도 과정도 마무리도 비정상이었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필수 덕목, 도덕성·합리성·합법성의 3대 요소를 모두 팽개친 그들은 평가대상에서 빼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놓고 견주거나 성적을 매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이승만과 박정희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고, 당시 국제정세를 잘 헤아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오늘에 이르게 했다. 그 과정에서도 민주주의의 씨앗을 잘 뿌린 훌륭한 건국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자만에 취해 ‘내가 없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오만과 독선으로 나라의 근본인 도덕성과 합리성, 헌법질서의 소중함을 버리고 오판했다. 그리고 선진민주주의에서는 해서는 안 될 3선 개헌을 무리하게 밀어붙였고, 3·15 부정선거까지 저질러 4·19 혁명으로 물러난 불행한 대통령이 됐다.

3선 개헌과 3·15 부정선거가 없었다면 4·19 혁명도 없었고 5·16 군사쿠데타도 없을 것이다. 이승만은 틀림없이 대한민국의 국부요 조지 워싱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그마한 욕심을 극복하지 못해 끝맺음을 잘하지 못했고, 본인에게도 나라와 국민에게도 불행을 자초한 아쉬움을 남겼다.

더욱이 3선 개헌과 부정선거가 잘못이라고, 기성정치 물러가고 기성세대 각성하라고, 부정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외치는 학생들을 향해서 마구 총을 쏴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국부의 호칭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자식에게 총을 쏘는 아버지는 이미 아버지가 아니다.

조지 워싱턴이 “내가 4년씩 두 번 8년을 했다. 대통령 한 번 더해서 그 기간 동안 큰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는 지금 물러남으로써 후배 대통령들과 국민들에게 4년씩 한 번 내지 두 번만 하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 이 나라의 민주 발전을 위해 훨씬 값진 일이다”라고 말하고 끝내 물러난 것처럼, 이승만이 법을 지키고 모범을 보였더라면 우리나라의 정치도 경제도 훨씬 선진화됐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의 독립운동과 민주건국을 기려 국부는 아니더라도 건국 대통령으로 동상을 세우자고 말하고 싶다. 물론 동상은 도덕성과 합리성, 합법성에 흠결 없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크게 공헌을 한 인사를 위해 세워야 마땅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힘깨나 쓴 대통령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이 전역에 널려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사회가 정상화되면 곧 목이 부러진다. 그래도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고, 건국에도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3선 개헌과 부정선거라는 과(過)는 있었지만, 이승만의 동상은 세웠으면 좋겠다. 건국대통령으로 말이다.

반면 박정희는 아무리 봐도 동상을 세울 만큼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도덕성·합리성·합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민주국가의 지도자로 인정할 만한 인격이나 인성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과오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출세에 대한 의지와 영웅심에 불타는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작은 공원 ‘팔러먼트 스퀘어’에는 넬슨 만델라, 아브라함 링컨, 윈스턴 처칠, 인도의 간디의 동상이 있다. 인류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몸 바친 그들의 동상을 영국 정치의 중심지에 세워놓고 공로를 기리는 것이다. 이처럼 동상은 그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박정희처럼 대통령 자리에서 권력을 세게 휘둘렀다고 세우는 것이 아니다. <계속>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은…

자유당 때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계의 산증인이다.

'진산계'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이래 '고흥문계'를 거쳐 '상도동계'로 활약했다. 민주산악회 연수원장과 마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김영삼과 박정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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