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군사정권, 민주당 정권이 만든 경제개발계획 빼앗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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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군사정권, 민주당 정권이 만든 경제개발계획 빼앗아”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6.06.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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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독재자④>“5·16 없었다면 국가 발전 앞당길 수 있었을 것”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노병구 자유기고가)

군사정권 경제발전, 민주당 정권 설계도 덕분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켰다. 민주화도 박정희가 했다. 그래서 박정희가 제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특히 조갑제 같은 사람은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켜 두 끼밖에 못 먹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비로소 한 끼를 더해 세 끼를 먹게 됐고, 조상 대대로 내려왔던 보릿고개도 넘었다고 말한다. 또 먹는 문제가 해결돼 민주화도 이룰 수 있었다고, 이 모든 것이 박정희가 한 일이라 치켜세운다. 정치도, 경제도,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 박정희가 한 것이라고 과장하고 허풍을 늘어놓는다.

정말 그런가?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이 요구된다. 특히 5000만 국민의 생사와 화복이 걸린 정치·경제 분야야말로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학식과 경험, 덕망을 고루 갖춘 전문인들이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박정희와 5·16 세력은 정치도 경제도 문외한이었다. 그들은 ‘구국의 일념’이라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나라를 어떻게 구하겠다는 청사진 없이 실제로는 벼락출세 욕심으로 총칼을 앞세워 반란죄에 해당하는 5·16 쿠데타를 일으킨 것뿐이다.

반란정권이건 범죄적 정권이건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박정희는 불법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또 불법으로 잡은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 “잘 살아보자”고 기를 쓰고 매달렸다. 그래서 그나마 성과를 낸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민주당 정권이 잘 만든 설계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제에 관한 한 아마추어인 박정희보다 프로인 민주당 정권과 경제협의회가 힘을 합쳐 그린 설계도대로 직접 경제발전을 시행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적 민주주의니 어떠니 하면서 국민을 괴롭히지도 않고, 단군 이래 처음 시작해 잘 적응해가던 민주주의 정치도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경제 발전은 박정희가 한 것보다 시기도 10년 이상 앞당기고 질적으로도 뛰어난 선진국 경제로 도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4·19 후 합법적으로 세워진 민주당 정권은 우리나라를 근대화하기 위해서 경제제일주의와 수출제일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태백산계획, 울산공업단지 조성 계획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자본동원 방안으로 대일청구권자금, 미국의 대한원조증액 요청, 독일 등 선진국의 차관도입, 외국기업의 투자유치 계획 등을 성안한 뒤 대강의 교섭안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5·16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애써 만든 경제개발에 관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박정희는 민주당 정권과 이병철 등 경제에 관한 한 실력 있는 경제인들의 조직체인 한국경제협의회가 합심해 만든 민주당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몽땅 빼앗아 앞에다가 新(신)자만 덧붙여 新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표방했다. 그러고는 마치 계획안을 자기들이 만든 것처럼 큰소리치면서 ‘나를 따르라’고 외쳤다.

군사정권은 우리나라처럼 뒤떨어진 국민의 의식 수준으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국민의 기본권과 언론자유를 누리면서 무슨 경제 발전을 하느냐고, 한국놈은 맞아야한다며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그럴 듯하게 독재정치의 구실을 붙였다. 그렇게 공포분위기를 한껏 조성해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박정희가 올린 경제적 성과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당·민주당·공화당 정권에서 모든 계획안 작성에 참여한 ‘경제인협회 상임부회장’ 출신 김립삼이 쓴 책 ‘초근목피에서 선진국으로의 증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직접 보고 접한 바에 따르면 민주당 정부는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정략에 관해서는 뚜렷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또 상당히 구체적인 실현 방안도 마련 중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장면 정부는 자유당 정권은 물론 5·16 군사정부보다 월등히 앞섰다고 생각한다.”

“나는 1961년 3월 24일에 있었던 민주당 정권의 첫 번째 정·재계 회의 결과가 실천에 옮겨지지 못한 것이 지금도 참 아쉽다. 나중에 박정희가 한 농어촌 고리채 정리안까지도 이 계획안에 들어있었다. 박정희가 5·16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민주당 정권이 하려고 했던 그대로만 됐으면 그 시작만으로도 경제발전을 최소 3~4년 정도는 충분히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조갑제를 비롯한 몇몇 중요 언론들, 또 박정희의 예찬자들은 박정희의 범죄성을 커버하기 위해 아예 민주당 정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거론도 꺼린다. 또 민주당 정권뿐 아니라 그들이 만든 경제 발전 프로그램을 지워버렸다. 파렴치의 끝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5·16, 대한민국 정치·경제 발전 더디게 해

또 조갑제 등 군사정권 예찬 세력들은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 세워진 나라 중 정치·문화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뒤처진 몇 개 나라를 열거하면서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발전한 나라가 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이 모든 것은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유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열을 올린다. 생판 거짓말이다. 1945년 이후 건국되고 민주정치를 정직하게 하면서도 우리나라보다 정치·경제적으로 훨씬 앞서가는 이스라엘·대만·싱가포르·홍콩 같은 나라들도 있다.

조갑제 등이 주장하는 대로 개인당 GNP를 가지고 말한다면, 이들 나라들은 무법·불법의 군사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유신처럼 혹독한 독재정치를 안 하고도 도덕성·합리성·합법성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정치도 경제도 꾸준히 발전시켰다. 지금 이스라엘은 국민 1인당 GNP가 6만 달러를 넘어서고, 대만은 4만5000달러, 싱가포르는 5만5000달러, 홍콩도 5만 달러를 넘어 우리나라보다 1.5배 내지 두 배가 넘는 부유한 나라가 됐다.

국가의 발전은 그 국민의 교육·문화수준과 지도자의 헌신이 좌우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문화 수준은 이스라엘·대만·싱가포르·홍콩 국민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보다 뒤떨어진 것은 도덕적·합리적·합법적인 인격을 갖춘 헌신적인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가적·민족적 비운이었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는 순조롭게 성장할 경제와 민주정치 발전에 엄청난 방해가 됐다. 박정희가 5·16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우리나라의 군대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본연의 길을 착실하게 걸었다면, 그리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겼더라면 정치인도 국민도 알찬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훨씬 빠르게 선진민주국가 대열에 들어섰을 것이다.

박정희는 강도가 하는 것처럼 총칼을 들이대 정권을 탈취하고 민주당 정권과 당시 경제협의회가 합심해 만든 경제개발의 구상, 그 구상을 구체화한 경제개별5개년계획안 등 프로그램도 몽땅 빼앗았다. 박정희가 총칼로 빼앗은 민주당정권은 단지 9개월 된 정권으로 쿠데타를 당할 만큼 악한 정권도, 부패한 정권도, 무능한 정권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권 담당자들의 면면이 애국적이고, 착하고, 어질고, 그래서 민주적이고 비교적 깨끗한 선비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우리 국군이 국토방위의 임무를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에만 매진하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말하고 기술할 때는 경제발전에 대해 민주당 정권이 만든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적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당하고 진실성이 살아 숨 쉬는 역사로 공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은…

자유당 때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계의 산증인이다.

'진산계'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이래 '고흥문계'를 거쳐 '상도동계'로 활약했다. 민주산악회 연수원장과 마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김영삼과 박정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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