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풍(潘風)이 미풍(微風)된 이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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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풍(潘風)이 미풍(微風)된 이유, ‘셋’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1.2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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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구설수에 행보는 기성정치 답습…메시지도 없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가 좀처럼 20%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승종

반풍(潘風)이 미풍(微風)에 그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21.8%를 얻는 데 그쳤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8.1%보다 6.3%포인트 낮고, 지난주 본인의 지지율 22.2%에 비해서도 0.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귀국 후 일주일이 반 전 총장 지지도의 최고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이 갖는 기대감이 극대화되는 시점인 데다, ‘검증 공세’가 시작되면 지지도 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귀국 직후 지지도가 대권 도전 성패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이후 폭락한 반 전 총장의 지지도는 좀처럼 20% 전후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교체론’ 내세우는 기성 정치인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의 지지도가 정체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우선 ‘정치교체론’을 내세운 그가 기성 정치인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 전 총장은 곧바로 공항철도를 통해 서울역으로 이동, ‘시민과의 만남’을 가졌다. 다음날에는 청년창업가·워킹맘·대학생 등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식사를 돕고 손발을 주물렀다.

문제는 이와 같은 움직임이 기성 정치인과 전혀 차별성을 갖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정치권에서는 기자들과 지지자들을 대동하고 전형적인 정치 이벤트를 벌이는 반 총장의 모습에 대해 ‘진부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8일 〈시사오늘〉과 만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하철 타고 김치찌개 먹는 게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이 반 총장에게 바란 모습이 그런 것은 아닐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지난 일주일 동안 반 총장의 움직임을 보면 ‘정치 초보’라는 딱지를 떼려고 너무 기성 정치를 열심히 공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역시 “다니실 때 옛날 정치인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지 마시라”며 “그것이 구정치”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정치교체’를 외치면서도 기성 정치인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반 전 총장의 모습이 前 유엔사무총장에게 바라는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구설수 끊이지 않는 ‘정치 초보’

이슈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마추어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은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번번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위안부 합의 문제를 묻는 기자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합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비록 그렇지는 못했더라도 기틀이 잡혀간 것에 대해 제가 (발언)한 것”이라며 “앞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답변 안 하겠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 전 총장은 “여러분 바로 파리에 가서 전철 끊을 때 금방 할 수 있나”라며 “이걸 왜 못하느냐고 비난하면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동행한 참모진에게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발언)만 물어보니 내가 마치 역사에 잘못을 한 것 같이…나쁜 놈들이에요”라고 토로하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날 광주 조선대학교 특강에서는 “정 다른 일이 없으면 진짜 봉사로라도 세계 어려운 데도 다녀보고…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민주당으로부터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반 전 총장은 청년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배부른 소리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거센 비판을 받았다. 부적절한 발언으로 연일 도마에 오르면서 ‘준비되지 않은 정치 초보’ 이미지만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메시지 없는 대권 후보

반 전 총장의 가장 큰 약점은 국가 운영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청대망론’, ‘제3지대론’ 등 정치공학적 계산 속 원소로 등장할 뿐, 정작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초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다. 보수층은 물론, 진보 유권자와 중도층까지 아우르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친박계와 선을 그었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외한 군소 대권주자들과 연쇄 회동을 가지며 ‘친박·친문을 배제한 제3지대 연합’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이 ‘정치 교체’라는 모호한 메시지만 내보였을 뿐, ‘진보적 보수주의자’로서의 국가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일각에서는 ‘정치 교체’를 들고 나온 그의 모습이 ‘새정치’라는 구호만 던져놓고 ‘무엇이 새정치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답하지 못했던 4년 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떠오르게 한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만 정치교체지 지금까지 보여준 건 이벤트 정치, 언론 플레이, 이명박식 현장정치와 동원정치 아니었나 싶다”며 “유엔사무총장으로서 경험과 실력을 부각하는 게 나을 듯한데 아직 뚜렷한 전략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최대 장점인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을 강조하지 못하고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에만 매달리는 메시지 부재가 ‘문재인 대항마’로서 반 전 총장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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