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황교안 신임 당대표 탄생으로 마무리됐다. 황 대표는 당원 선거인단과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5만8713표를 기록, 득표율 50.0%로 임기 2년의 한국당 당대표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번 전대의 최대 수혜자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꼽는다. 선거 과정에서 극우 보수와 거리를 두는 행보로 ‘개혁 보수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를 큰 격차(吳 50.2% 黃 37.7%)로 따돌리며 ‘확장성’을 과시하는 데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서 ‘개혁 보수’ 입지 공고화
이번 전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 전 시장에게는 ‘개인의 이익만 앞세운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다. 당 지도부 반대를 무릅쓰고 무상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걸면서 ‘보수 궤멸’의 단초를 제공하고, 제20대 총선을 앞두고는 평소 호형호제(呼兄呼弟)할 정도로 인연이 깊은 박진 전 의원과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서울 종로 출마를 강행해 낙선하는 등 ‘자기 정치’에 매몰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했다가, 이번 전대를 앞두고 한국당에 복당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로 친박(親朴)은 물론 비박(非朴)에게까지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연말 <시사오늘>과 만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은 ‘영리하게 처신한다’는 이미지는 있지만 ‘당을 위해 행동한다’는 이미지는 전혀 없다”며 “지금 상태로는 절대 대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2·27 전대를 거치는 동안, 오 전 시장의 이미지는 180도 바뀌었다. ‘태극기부대의 아이돌’ 김진태 의원은 물론 황교안 대표마저도 당의 우경화(右傾化) 바람에 편승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으로, 오 전 시장은 야유와 욕설을 온몸으로 맞아가면서도 ‘개혁 보수’를 부르짖었다.
또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법적·정치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5·18 망언’에 대해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국회 합의로 이뤄낸 역사적 사실”이라며 “특정 지역의 당세가 약하다고 짓밟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처신”이라고 선을 그었다. 눈앞의 한 표를 위해 당심(黨心)을 좇기보다는, 일반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발언으로 ‘개혁 보수의 아이콘’ 입지를 다진 것이다.
실제로 2월 27일 전대장에서 만난 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오 전 시장이 완전히 개혁 보수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됐다”며 “오 전 시장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야유 속에서 개혁 보수를 외치는 모습이 무슨 민주화 투사 같지 않느냐. 저런 그림은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가 없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로 ‘확장성 있는 후보’ 이미지 구축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오 전 시장이 만들어낸 ‘개혁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는 그에게 ‘여론조사 1위’라는 열매를 안겨줬다. 이번 전대에서 오 전 시장은 일반여론조사에서 과반인 50.2%를 획득하며 37.7%에 그친 황 대표를 12.5%포인트 차로 앞섰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계속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외침에 국민이 반응한 셈이다.
일반여론조사에서 얻은 50.2%의 득표율은 오 전 시장에게 적잖은 의미가 있다. 오 전 시장이 황 대표보다도 ‘중도 확장’에 적합한 후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결국 ‘외연 확장’이 제1과제라고 보면, 황 대표보다 12.5%포인트나 높은 여론조사 득표율은 오 전 시장에게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오 전 시장이 ‘한국당 내 대권 후보 0순위’로 뛰어올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만약 2020년 총선에서 한국당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대선에서는 중도 확장이 가능한 후보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경우 당대표 선거에서 ‘확장성 있는 후보’ 이미지를 구축한 오 전 시장에게 시선이 쏠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4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관계자도 “솔직히 우리도 오 전 시장이 이정도로 (여론조사에서) 이길 줄은 몰랐다”면서 “확실히 오 전 시장이 중도보수 쪽에 어필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일단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오 전 시장은 성공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만 여전히 오 전 시장이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이 없다. 앞선 관계자는 “한편으로는 당내에서 세력이 없고 반감이 크다는 사실도 입증된 것이니, 아직은 유력 대권 후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일단 (내년 총선에서) 추미애 전 대표에게 이기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지면 대선은 날아가는 것이니 오 전 시장이 대권 후보가 되느냐 마느냐는 내년 총선이 끝나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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