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박근혜’ 이름 석 자가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석방돼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경우,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친박(親朴) 신당이 태동하지 않겠냐는 때 이른 전망까지 내놓는다.
실제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19일 BBS <이상휘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만약 석방된다면 저는 친박 신당설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며 “기존의 대한애국당에 자유한국당 내의 강경한 친박 세력이 나와 합쳐진, 더 확대된 친박 신당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친박 신당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흘러간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신당이 구심력(求心力)을 가질 리 만무한 까닭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정치의 특성상, 이미 권좌(權座)에서 물러난 정치인이 세력을 모으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민주화 투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강고한 조직과 세력을 보유한 정치인이었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을 함께 돌파해온 ‘상도동계’는 ‘피보다 진한 물’로 뭉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응집력 강한 조직이었다.
그런 상도동계조차도 YS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이전의 인력(引力)을 회복하지 못했다. 퇴임 후 YS는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나라당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민주화 동지들을 재규합하기 위한 ‘민주산악회’ 재건은 그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민주계 대부분이 가담을 회피하면서 YS의 민주산악회 재건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아래는 1999년 9월 14일자 <경향신문> ‘민심은 싸늘했다, 텃밭까지…YS 민산재건 연기하기까지’ 기사 일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3일 민주산악회 재건작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중략) YS가 기대했던 민주계 의원들의 반응도 예상 밖으로 냉담했다. ‘억지춘향’식으로 YS 앞에서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민산재건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든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중략) 이에 따라 YS는 여론도, 조직도 따라오지 않는 상태에서 이회창 총재와 전면전에 나서는 것을 피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략)』
YS뿐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일정한 영향력은 유지했을지언정, 정계 개편을 촉발할 만한 파괴력을 가진 적은 없었다. 친노(親盧)의 경우에도 노 전 대통령 사후(死後) 추모 바람을 업고 부활에 성공했을 뿐이지, 퇴임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삼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3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 노정객도 “우리나라는 유력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 세력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대통령이 갖는 권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며 “정치 구조상, 대선 후보를 낼 수 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정당이 형성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친박연대 같은 경우는 박 전 대통령이 유력 대권 후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친박 신당 이야기는 한국당 내에서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내놓는 레토릭일 뿐, 실제로 새 당에 참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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