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야당 심판론’ 프레임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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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야당 심판론’ 프레임의 허구성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2.2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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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도 책임도 없는 야당을 탓하는 집권여당…‘정치력 부족’ 자인하는 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권한도 책임도 없는 야당을 집권여당이 탓하는 것은 정치력 부족을 자인하는 꼴이다. ⓒ뉴시스
권한도 책임도 없는 야당을 집권여당이 탓하는 것은 정치력 부족을 자인하는 꼴이다. ⓒ뉴시스

최근 정치권에서는 ‘야당 심판론’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야당을 심판하고 여당에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야당 심판론의 골자다.

이런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지, <한국갤럽>이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수행하고 1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자가 43%(정부 견제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에서는 4·15 총선을 ‘정권 심판론’ 대 ‘야당 심판론’ 프레임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야당 심판론이라는 개념의 타당성 여부다. 애초에 야당(野黨)이란 ‘정당 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정당’을 말한다. 즉, 야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아 정당의 제1목표인 정권 획득에 실패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 획득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전 선거에서 이미 국민에게 심판을 받아 국정 운영에 대한 권한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국 야당 심판론이란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정당에게 국정 운영 실패의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여당이 내세우는 ‘야당의 발목 잡기’ 주장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곧 권한과 함께 책임을 부여받는다는 뜻이고, 부여받은 책임 안에는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잘 다독이고 설득하는 일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즉, 집권 여당이 야당 탓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반대 세력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권 여당이 자신들의 무능력을 고백하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직무유기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패한 이후 2년 넘게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운영했지만, 오바마케어를 비롯해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통과시키며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영리하게 의제를 선점하면서 여론을 움직임과 동시에, 야당 중진들과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하며 소통하는 ‘정치력’ 덕분이었다.

반면 제20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됐고, 제19대 대선에서 정권을 잡았으며, 제7회 지방선거에서까지 압승을 거뒀음에도 민주당은 겨우 114석짜리 제1야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야당 심판론 프레임을 꺼내들었다. 이처럼 ‘정치력 부족’을 자인(自認)하는 집권여당을 국민은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민주당이 숙고해봐야 할 대목이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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