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국난(國難) - 의회독재 권력폭주 국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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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국난(國難) - 의회독재 권력폭주 국정위기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07.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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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정치력 부재 국민 피해
견제 없는 권력 폭주 시작
헌정사 오점, 35년 만에 1당독재
巨與, 민생(民生)보다 대통령 뜻 우선
지방의회도 독식, 전국이 '1당 국가'
기업규제 법안 봇물, 역풍(逆風) 비상
추경안, 역대 최악 졸속심사
野도 '반대 위한 반대' '책임 방기' 비판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국난(國難) 조짐이 확연하다. 21대 국회가 협치(協治)와는 동떨어진 여당의 독식과 독주로 시작된 현실은 충격적이다.

여야의 극한 대립이 불가피해졌다. 정국 향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오늘, 한국 정치는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가가 돌아가는 실태는 1당 독재와 다를 바 없다. 의회 민주주의의 분명한 후진이며, 헌정사에 남을 중대한 오점이 아닐 수 없다. 법치주의도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됐다.

지금은 국가적 비상 상황이다.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고용대란, 비핵화 해법 없이 표류 중인 남북, 북·미 관계, 21차례의 부동산 정책에도 치솟기만 하는 집값 상승 등 전방위적 위기로 인해 국민의 불안과 분노는 실로 위험수위다.

여야가 힘을 합쳐도 넘기 힘든 유례없는 위기상황이다. '1당 국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예산안 졸속 심의만 봐도 알 수 있다.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사상 최대 규모 추경안을 최악의 졸속 심사 끝에 일방 처리, 두고두고 국회와 여당에 부끄러운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국난(國難) 조짐이 확연하다.ⓒ뉴시스
국난(國難) 조짐이 확연하다.ⓒ뉴시스

국회, 과거 '거수기'로 퇴행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보지 않겠다는 여당의 오만과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야당을 보는 국민들의 스트레스와 한숨만 커지고 있다.

이번 추경은 48년 만에 이뤄지는 3차 추경인 데다 그 규모가 역대 최대이며, 적자국채 빚더미로 편성됐다. 그럼에도 국회 상임위원회 예비심사는 대부분 1~2시간 만에 황당할 정도의 졸속 심사로 끝났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 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예산안 심의 의결이 국회 고유 권한이라는 사실은 안중에 없다. 과거 독재 시절 국회가 예산·법률안을 제대로 심의·수정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을 하던 '통법부'를 다시 보는 듯하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모습이 전두환 정권 시절, 멀리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파탄지점으로 수십 년 퇴행하고만 형국이다. 추경 처리가 끝나면 제동장치 없는 여당의 폭주열차가 어디로 향할지 실로 두렵다.

정치력과 협상력 빈곤

문재인 정권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지방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정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은 국회나 지방의회 어디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자라 공수처라는 정권 보위 기구까지 만들었다.

오늘, 최악의 국회 파행은 여야 정치력과 협상력 빈곤 때문이다. 책임의 경중을 따지자면 여당인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결렬을 이유로 상임위원장단을 독식해버렸다.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고 말았다. 전두환 정권의 야당 및 민주화 세력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85년 제12대 국회 이후 처음이다. 기존 관행까지 무시하면서 야당의 입지를 박탈한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제 '여야 협치'란 낱말은 사치가 되었고, 박물관에 놓일 처지가 됐다. 한동안 정국은 여야가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면서 각기 제 갈 길을 가는 양상을 띨 공산이 크다.

국회 관행과 절차 무시

협상 결렬의 발단은 법사위원장 자리다. 민주당이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법사위를 차지하려 했던 저의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배경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울산 선거 공작, 조국 일가 사건, 유재수 비리 무마, 드루킹 대선 여론 조작 같은 정권 비리 의혹의 수사와 재판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임기 말 정권을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30여년 이어져온 국회 관행과 절차까지 무시하기로 한 것으로 관측된다.

국정 실상은 참담하다. 최근 재정건전성이 위험 수준이지만, 관련 부처나 국책 연구기관에서 이를 깊이 있게 다루거나 경고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 ‘뒤끝’이 두려워 모두가 입을 닫고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그 만큼 '정권 방어' 분위기가 깊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여당은 모든 국회 추천권 까지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들을 상임위원회에 강제 배정한 것은 1967년 제7대 국회 이후 처음이다. 박정희 정권은 그 직후 3선개헌을 통해 장기집권과 독재의 길을 닦았었다.

국회의 원칙과 전통이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정권에 의해 무너진 셈이다. 민주당은 지방의회 의장단·상임위원장단도 싹쓸이하고 있다. 국회뿐 아니라 지방의회에도 사실상 민주당 1당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앞으로 대선까지 2년 동안 선거도 없다. 민주화 이후 이런 권력은 없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수많은 문제를 낳는다. 권력이 원하는 대로 폭주하는 폭정(暴政)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장경제 흔드는 '사회주의' 발상

문제는 슈퍼여당이 장악한 입법권력이 경제에 미칠 파장이다. 지금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 버팀목 삼는 기업의 노력과 정부 여당의 정책 견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기업규제 법안들을 무더기로 쏟아내며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전체 상임위원장 자리를 꿰찬 거여(巨與) 독주 국회가 오히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법들을 쏟아낼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이 ‘공정경제 3법’이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이려는 법안은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다. ‘공정’으로 포장했지만 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죄는 독소조항이 한둘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역사 해석을 정부가 독점하는 역사왜곡금지법의 통과와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휴지 조각이 된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도 추진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로 국민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21대 국회 초반에 입법 독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정권이 바뀌더라도 진보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속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당초 여야는 공히 '일하는 국회'를 21대 국회의 화두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국리민복을 뒷받침할 입법 작업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진영으로 갈라져 장외투쟁과 상호비방, 고소·고발전 등 소모적 정쟁 전략에 몰두하려 할 가능성이 짙다. 스스로 국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려는 자세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고질적인 후진적 정치구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어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정부 여당은 국가 현실과 미래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군사정권 시절 되돌아간 형국

21대 국회 전반기 원(院) 구성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독식(獨食)으로 마무리됐다. 176석의 절대 과반 여당인 민주당은 사실상 상임위원장 전체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1985년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이다.

지방의회의 경우도 수도권과 호남뿐 아니라 통합당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한 부산·울산·충청 지역이 있지만,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앞세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고 있다.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시의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까지 했다.

의석 비율에 따라 야당에도 위원장 자리를 배분했던 관례와 전통이 지방의회에서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동안 여야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정치 문화가 어김없이 지켜졌지만, 이제 5공화국 이전의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1988년 13대 국회 때부터 이어진 의석수에 따른 여야 상임위원장직 배분 전통은 32년 만에 깨지게 됐다.

'입법독재' '의회독재' 현실화

국회는 앞으로 여당 출신 국회의장과 부의장만으로 운영되게 됐다. 1987년 군사정권의 호헌 조치에 대한 항의로 야당 부의장 없는 국회가 운영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을 아무 상임위에나 내리꽂아 강제 배정하는 일도 다시 벌어졌다. 군사독재 정권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예정대로 오는 15일 출범시키는 한편 이른바 '민생법안'과 '개혁법안'을 7월 임시국회를 열어 조기에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 말 그대로 '입법독재' '의회독재'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반시장·반민주 입법은 실로 무더기로 추진 중이다.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남북 철도·주택 사업에 LH 등의 참여 근거가 되는 건설산업기본법·철도산업발전법, 5·18과 세월호 사건에 정부 입장과 다른 견해를 밝히면 처벌하는 역사왜곡금지법, 정규직 전환을 강제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법 등 수두룩하다.

4·27 판문점선언도 국회에서 비준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정은의 북핵 폐기 진정성이 없는 상태에서 판문점선언을 비준한다면 북한은 멋대로 도발하고 우리만 스스로 족쇄를 차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최소 장치인 ‘야당의 거부권’을 없애는 입법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추경안 심사 '날림 폭주'

'폭주'는 이미 제3차 추경안 심사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정부의 추경안은 허술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한국판 뉴딜사업,고용안정특별대책, 금융안정 후속조치의 세부사업 부실 등이 지적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군사작전 전개하듯 힘으로 밀어붙였다.

16개 상임위가 추경안을 의결해 예결위로 넘기는 데는 평균 2시간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운영위는 고작 47분 만에 끝냈으니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외교통일위원회도 단 64분 만에 정부 원안대로 단독 가결했다. 심사 과정은 사실상 없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는 정부안보다 오히려 40%나 증액해 의결했다.

여당만의 '1당 국회'가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삼권분립 하 행정부 견제가 최우선 본령인 입법부의 온전한이 아니다. 제1야당의 무대책 태업도, 집권당의 양보 없는 독주도 모두 유감인 이유다. 오죽했으면 기재위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예산 심의가 아닌 통과 목적의 상임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회의장을 떠났는지 양당은 곱씹어야 마땅하다.

이번 추경안은 역대 최대인 35조 원 규모로 심사항목만 1200개가 넘는다. 민생과 직결된 슈퍼추경을 건성 심사한다면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여기에다, 기업은 비명 지르는데 입법권력을 장악한 슈퍼여당은 반기업·반시장 법안 처리까지 벼르고 있다.

한없는 부채의식 가져야

역사의 교훈은 중시돼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 년 넘게 의석수에 따른 원 구성은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2004년(열린우리당), 2008년(한나라당), 2012년(새누리당) 총선에서도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나왔지만 1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적은 없다.

국회가 민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교섭단체를 이룬 야당들도 그에 걸맞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정부를 견제·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만들어진 관행이었다. 이번 여당 독식 사태에 대해 거대 양당은 국민에 한없는 부채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국회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좀 더 나은 공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여야가 경쟁하고 타협하는 곳이다. 수적 우세를 믿고 야당을 원천 배제한 채 국회를 운영할 수는 없다.

벌써부터 통합당은 일당독재에 맞서겠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고, 민주당은 “지금부터는 결단하고 행동할 시간”이라며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면 극한 대결만 남는다. 비정상적인 국회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특히, 국회의 예산 통제는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를 가르는 핵심 지표다.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의회가 탄생한 것도 왕의 자의적인 세금 징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2차 대전 후 ‘큰 정부’가 대세가 되면서 예산 결정 과정에서 행정부의 역할이 대폭 확대됐지만, 2010년 이후 그 추세는 역전이 확연하다. 그 후 그리스 재정 위기를 거치며 예산 결정에 대한 의회 감시 기능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선진국들의 시대적 흐름이다. 이를 무시해선 결코 안 된다.

상임위원장 배분, 힘으로 전례없는 무력화

그런 중요한 예산 심의를 앞두고, 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독주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본회의에 불참했고, 정의당은 표결에 불참했다. '반쪽 국회'가 현실화 되고 말았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지만, 예산 결정 과정에서 국회의 실질적인 권한은 매우 미약하다. 국회는 예산 심의·확정권을 가질 뿐 편성권은 행정부에 있다.

이같은 여건에서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여당의 국회 독점체제'로 사태가 비화한 데 대해 여야 모두는 정치력 부재를 통감해야만 한다.

이런 파행은 야당이 차지했던 법사·예결위원장을 여당이 갖겠다고 일방 선언하면서 균형추가 무너지자 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끝내 최대 쟁점인 '법사위원장' 대립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마디로, 각종 입법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해왔던 법사위원장직에 대한 여당의 과도한 집착 때문이었다.

심지어 민주당은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당이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가져가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고 한다. 입법부 조직 구성을 대통령 선거와 연계시키자는 발상 자체가 황당할 정도다.

관례대로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자는 미래통합당의 요구를 177석의 거여(巨與)는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방적인 승자 독식이 자칭 민주화운동 세력이라는 민주당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선국면 주도권 전략 영향

법사위원장의 위상은 국회 운영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부여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여야 협치의 상징이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1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장은 민주당에, 후반기는 '집권하는 여당'에 우선 선택권을 주자는 중재안을 냈다고 한다. 차기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에 주자는 뜻이다. 이에 민주당은 동의했으나, 통합당은 후반기는 자신들이 맡는 교대 방식을 고수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이 기존 입장을 바꿔 지방의회 독식에 나선 것도 중앙당 차원의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당 세력을 지방자치 단계에서부터 싹쓸이로 없앤다는 계산일 것이다.

당초 공수처장 인선에 야당에 거부권을 준 것은 준사법기관의 정치 중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런데 여당은 법을 바꿔 그나마 있는 야당 거부권마저 무력화하려 한다. 하루빨리 자신들 편 공수처장을 뽑아 검찰 수사를 막는 안전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외에도 헌법재판관,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회가 추천하는 헌법기관과 행정부 산하 위원회의 여당 추천 몫도 높힌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통합당은 앞으로 '국민을 상대로'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폭주'를 부각해 향후 대선 국면에서 주도권을 잡는 쪽으로 전략적 방향을 잡은 듯하다. 거여를 확실히 견제할 법사위원장을 확보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다 내주고, 여당의 '폭주와 무능'을 부각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본 듯하다.

주요 현안 산더미…여당 독주 본격화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 약 한 달, 본회의가 5회나 연기될 때 국민은 원 구성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길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여야는 결국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현재 국회에는 주요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여당 독주의 국회는 지금 같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을 일방 처리해선 안 된다. 대표적인 것이 주주권익을 강화한다는 명분의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다.

이들 법안은 기업 경영권을 위태롭게 하고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여기에다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구성 등 여야간 충돌 현안이 즐비하다. 그렇더라도 여야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통합당이 반대하면 법률을 바꿔서라도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은 거대 여당의 폭주 전주곡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런 여당의 독주 분위기가 앞으로도 숱한 법안처리 과정에서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민주당은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밀어붙일 태세이며, 방통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여당의 추천 몫을 늘리겠다는 움직임이다. 기업경영 여건을 위축시키는 법안들도 벌써 상당수 발의된 상태다.

산업활동 규제법안들 질주

최대 관심사는 역시 여당의 기업 규제 폭주 움직임이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내세워 기업들의 발목 잡기에 나서고 있다. 개혁입법'이란 이름으로 기업을 옥죄는 법을 향해 질주 중이다.

대주주의 권리를 제한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상법개정을 추진한다.

언제 어디서 고소고발이 들어올지 몰라 기업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공정위 전속고발권폐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해고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게 만드는 노동관계법 개정안도 이르면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 재계가 경영활동 위축과 경영권 방어에 치명적 독소조항이라며 도입을 반대했던 제도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상품이 팔리지 않아 쌓이는 제조업 재고율이 1998년 8월 외환위기 시절 이후 21년 9개월 만에 최고(128.6%)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내놓은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거의 모든 지표가 최악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반기업 규제법안들을 물밀듯이 쏟아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중소유통특별법은 대규모 점포 건축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반대가 많으면 점포 개설이 안된다. 같은 당 이동주 의원안은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에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정을 뒀다. 이미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고사위기에 처했다. 올 3월 기준 대형마트 매출액이 전년 대비 13.8% 고꾸라진 상황이다.

국민에 천문학적 빚 졸속심사

국정 최대 현안으로, 3차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심사 과정의 졸속 심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앞세워 9조원을 풀어 일자리 6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 3~6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욱이, 3차 추경 재원의 3분의 2인 24조원은 세수가 모자라 빚을 내서 조달한다. 민주당이 정부안보다 3조1천억원을 증액해 적자 국채 발행 규모가 더 늘어나게 됐다. 국민에게 천문학적인 빚을 지우면서도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이번 추경안은 미래 세대에 짊어져야 할 빚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푼이라도 엉뚱하게 쓰이지 않도록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 국회의 책무고, 그 빚을 감당해야 할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럼에도, 국회 운영위원회는 단 47분 만에 심사를 끝냈다. 외교통일위는 63분, 국방위는 69분이 걸렸다고 한다. 2조3000억원을 증액한 산업자원위조차 1시간30분만에 마쳤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해 치운 것이다. 참으로, 나라 살림의 무책임한 운용이다.

與는 여론 역풍 - 野는 책무 방기 가능성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3차 추가경정예산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비상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 입에서 '비상한 방법'이란 말이 떨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은 35조원에 이르는 3차 추경안 국회 통과를 위한 이런 폭주(暴走)를 시작했었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으로 불리는 이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는 야당의 지적을 되새기겨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예산·법률안을 처리하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야당의 자세도 비판 요소가 결코 적지 않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정책이나 법안에는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습속을 버려야 한다. 반대와 태업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지난 무수한 선거에서 확인된 바 있다.

국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나면 부족한 돈은 국민들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당장 채워넣지 못하면 결국에는 우리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이런 중요한 일을 심의하는 데 제1 야당인 통합당이 불참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설혹 표대결에서 밀린다 해도 정부·여당의 예산안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야당의 기능을 포기해선 안 된다.

통합당도 일단 원내에 들어와 심사에 참여하고 여당의 폭주를 최대한 저지해야 한다. 힘이 모자란다고 주어진 책무를 방기한다면 그나마 존재 이유도 없어진다.

국가적 위기 극복 머리 맞대야

민주주의 후퇴와 예산 낭비 등의 부작용은 이제 국민이 감내할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다시 엄혹한 국민의 시험대에 섰다.

국민 모두 이번 '폭거'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이를 준엄히 '심판'해야 한다.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 '개혁 국회'로 가야만 한다.

최대의 여야 협상력이 관건이다. 국정 책임을 진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통합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협치 방안을 반드시 강구해야 한다. 통합당 역시 강경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전향적인 자세로, 성숙한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다.

국회가 공전하지 않도록, 할 일은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여야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여야가 국가적 위기 극복에 머리를 맞대야 힐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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