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합법적 불공정’ 앞에서 무너지는 공정
[기자수첩] ‘합법적 불공정’ 앞에서 무너지는 공정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09.18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국 사태부터 추미애 사태까지
엘리트 카르텔을 지탱하는 합법적 불공정
합법적 불공정은 당연한 관행 아닌 ‘부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여러분들한테는 공정한 게 최고라면서요?”

50대 언저리로 보이는 감독관은 20‧30대 취업준비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치 ‘까탈스러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선심 쓰는 듯한’ 어투였다. 그 자리에 있던 A씨(남‧27)는, 감독관이 주황색 귀마개(이어플러그)를 끼고 문제를 푸는 한 취준생에게 공정을 이유로 빼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시험 종료 후 3초 간 답안을 더 작성한 취준생이 불이익을 받는 모습 역시 지켜봤다.

90년대 생이 마주하는 세계란 그랬다. 1~2점에 따라 달라진 결과를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임의 규칙만큼은 공정하길 이토록 강조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귀마개 따위를 끼거나 안 끼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시험 종료 후 고작해야 3초 간 더 적는 것이 큰 문제일까. 청년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공정’의 벽은 정작 기성세대의 ‘합법적 불공정’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의 ‘합법적 불공정’은 엘리트 카르텔에서 시작됐다


‘합법적 불공정’이란 궤변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국 사태에 대한 민심을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 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라 해석했다.

대한민국의 합법적 불공정은 엘리트 카르텔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그중 교육과 부동산을 통해 이 구도를 견고히 해왔다. 여기에 병역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보여준 ‘합법적 불공정’은 교육이었다. 그는 2012년 트위터를 통해 “용이 돼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말했다. 그러나 그는 딸을 용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자고 강조하던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런 그가 조국 사태 이후 약 1년 뒤 재판장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형사소송법 148조(근친자의 형사책임과 증언거부)를 따르겠습니다”는 말을 수백 번 반복했다. 그 어디에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을 꿈꾸던 청년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었다. 딸이 용이 되는 동안 짓밟혔을 또래의 붕어‧개구리‧가재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을 둘러싼 의혹 역시 ‘합법적 불공정’에 기반을 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추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을 ‘합법’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15일 “전화, 메일, 카카오톡 등으로도 (군 휴가 연장)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절차상 합법성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같은 당 신동근 최고위원 역시 11일 “병가와 휴가는 외압이나 특혜 없이 통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도 정당한 사유와 절차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합법적 불공정’은 엘리트 카르텔을 견고히 하는 ‘부패’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이 일궈놓은 권력 위에서 부(富)를 축적하고, 부를 기반으로 본인의 자식을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켜 그들 역시 좋은 학벌과 좋은 직장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합법적 불공정 위에서 견고히 한 엘리트 카르텔은, 분명 청년들이 바라는 공정한 사회의 구호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합법적 불공정 위에서 견고히 한 엘리트 카르텔은, 청년들이 바라는 공정한 사회의 구호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뉴시스
합법적 불공정 위에서 견고히 한 엘리트 카르텔은, 청년들이 바라는 공정한 사회의 구호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뉴시스

마이클 존스턴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의 부패 유형을 △독재형 △족벌형 △엘리트 카르텔형 △시장 로비형 등 4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이 가운데 대한민국의 부패를 엘리트 카르텔 유형으로 구분했다. 흔히 독재형에는 중국, 족벌형에는 러시아나 필리핀, 시장 로비형에는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그는 한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한국에서는 관료들, 정치인들, 청와대, 같은 지역 출신, 같은 학교 출신 엘리트들이 함께 뭉쳐,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부패를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는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라며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사회적 의무 부담”이라 강조했다.

특히 그는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며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이렇듯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공정한 세상은 고작해야 귀마개(이어플러그)나 3초가 아니다. 그들이 청년 세대를 위해 해야 할 배려란, 엘리트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이들과 맞서는 것이다. 이를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변명과 공격 좌표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할 때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