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정이란 무엇인가…사회적 합의, 시급
[기자수첩] 공정이란 무엇인가…사회적 합의, 시급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9.21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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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공정’ 약속하지만…공정의 정의 아무도 몰라
정책 집행 서두르기보다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37번이나 반복하며 공정한 사회 건설을 약속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37번이나 반복하며 공정한 사회 건설을 약속했다. ⓒ뉴시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앞쪽 선로에는 인부 다섯 명이 있고, 다른 선로에는 한 명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대로 다섯 명을 희생시키겠습니까 아니면 방향을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키겠습니까.

당신은 육교 위에서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는 다섯 명의 인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면 기차를 멈출 수 있는데, 당신의 몸무게는 너무 적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기차를 멈추기에 충분한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서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람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하겠습니까.

이 문제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탄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절대불변의 정의(正義)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의의 개념은 절대적 진리라기보다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사회적 합의’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정의로 통하겠지만, 전쟁 중에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합의를 이뤄나가야만 합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선행돼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평등이란 무엇인지, 공정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3년이 흐르는 동안,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자고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그 누구도 평등이 무엇인지, 공정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국민이 탄 배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도 “정부는 공정에 대한 청년들의 높은 요구를 절감하고 있고 반드시 부응하겠다”며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청년들은 다시 한 번 의문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시험 기회만 부여하면 기회의 공정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는 하루 종일 공부하고, 누군가는 돈을 벌면서 퇴근 후에야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똑같은 시험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는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필기시험은 타고난 재능 차이로 결과가 달라지니, 선발 방식을 바꿔야 공정해진다’고 말합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은 바로 공정에 대한 서로 다른 감각이 원인이었으며, 이는 문재인 정부 내내 반복된 ‘공정성 논란’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 없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나침반 없이 열심히 노만 젓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공정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반복할 뿐,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러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관련 법률 개정 등이 모두 그 일환일 겁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오히려 ‘불공정’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의적 기준을 보편타당한 공정의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사회적 갈등만 커질 뿐, ‘공정한 사회’는 요원합니다. 배를 띄우기 전에, 목적지와 항로부터 설정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한 번 돌아볼 때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미래통합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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