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①>反독재 야당투사, 신익희 조병옥 유진산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①>反독재 야당투사, 신익희 조병옥 유진산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08.18 0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아래 살다간 정치 지도자, 그들의 비운의 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이 있다. 한 때 유력 대선주자들로 통했지만 대통령 운이 닿지는 못한 이들을 말한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신익희, 조병옥, 유진산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민주화 된 다음에는 이인제, 박찬종, 이회창, 정몽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나름의 애석한 이유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비껴간 시간의 단면을 돌이켜 봤다. <편집자 주>

이승만 정권의 최대 정적이었던 해공 신익희(1892~1956)는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이자 존경받는 정치지도자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직에서 활약하다 해방이 되면서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이승만 후임으로 국회의장직에 선출됐다.

ⓒ뉴시스.
야당 거목으로서 1954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 1956년에는 당 내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신익희는 자유당 정권이 물러나길 바라는 국민들을 대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선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1953년 5월 3일, 연설하는 신익희를 보러 서울 한강 백사장으로 운집한 유권자 수만 해도 30만 여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선거일을 10일 앞둔 5월 5일, 신익희는 열차를 타고 지방 유세를 떠나던 중 갑자기 뇌일혈이 일어나 급서하고 만다. 때 아닌 죽음을 둘러싸고 정적 세력에 의한 독살설이 퍼지기도 했다.

신익희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서인지 선거일에는 185만 표라는 추모표가 나왔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때 신익희가 급서만 하지 않았어도…"라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야당의 선봉장으로서 반자유당독재정치에 앞장섰던 유석(維石) 조병옥(1894~1960)은 한인회 · 흥사단 등의 항일운동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1948년 정부수립 당시 대통령특사를 맡고 유엔총회에 참석, 대한민국이 국제적 신임을 얻는데 기여했다고 전해진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내무부장관으로 등용돼 국방부장관 대신 대구방위에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해 5월 이승만 정권이 독재화되는 모습에 실망,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탄생하였으므로 반드시 민주국가로 발전, 성장해야 한다”고 비판하며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53년 극우 자유민주주의자로서 반공 포로 석방에 반대하다 테러를 당한 후 잠시 투옥되기도 했지만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됐다.

1954년 이승만 정권이 종신집권을 위해 사사오입개헌을 하자 민주당을 창당, 노골적인 독재세력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다. 1960년 제1야당인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 이승만 정권의 호적수로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얻었다.

ⓒ뉴시스.
그러나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미국에서 돌연 병으로 급서하고 만다. 강력한 경쟁자인 야당 후보의 죽음은 이승만(85세) 정권의 순조로운 정권 재창출 결과를 낳았다. 자유당 정권의 연이은 독재는 4.19혁명의 원인이 됐고, 5.16군사 쿠데타는 이듬해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 야당 거물이었던 옥계(玉溪) 유진산(1905∼1974)은 광복 전후 반일반공 청년운동을 거쳐 정치가 길로 들어섰다. 1954년 무소속으로 3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래 7회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56년에는 민주당 신익희 당 대통령 후보 선거참모, 1960년에는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 참모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1961년 민주당 구파 중심으로 신민당을 창당했고, 1970년에는 신민당 총재에 올라 야당 내 유화노선을 주도하며 여야 협상의 달인으로 불렸다. 1974년 유신개헌 반대에 나서는 등 반독재 투쟁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그 해 4월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모두 반공우익보수 인사로 출발했으나 그 끝은 반독재정권 투쟁으로 귀결됐다. 그런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독재에 맞서 싸웠던 진정한 우익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또한 우익적 관점의 진보주의자들로서 현 야권의 초석을 마련한 주춧돌이 됐다.

아직도 우익 좌익 보수 진보가 제대로 된 규명 없이 혼탁하게 쓰이고 있다. 크게 보면, 우리 현대사는 우익 좌익 간 대립보다는 독재와 민주주의 대립으로 이어져왔다. 제대로 된 이념 논쟁과 이데올로기적 정의를 내리기에는 독재 정권 기간이 너무 길었던 셈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