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⑤> 정치권의 독도 '박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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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⑤> 정치권의 독도 '박찬종'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10.14 14: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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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 식의 스타일이 패배 원인? 2012 대선 ‘주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시대를 비껴간 대통령들이 있다. 한 때 유력 대선주자들로 통했지만 대통령 운이 닿지는 못한 이들을 말한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신익희, 조병옥, 유진산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민주화 된 다음에는 이인제, 박찬종, 이회창, 정몽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나름의 애석한 이유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비껴간 시간의 단면을 돌이켜 봤다. <편집자 주>

정치권 안에 있으면서도 정치권 끝을 지키던 박찬종 무소속 대선후보(이하 박찬종)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우리나라의 땅, 독도라 칭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그곳을 가 본 국민은 얼마 안 될 것이다. 위치상으로 보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 독도다.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키고 싶은 1호 땅은 독도일 게다. 마땅히 지켜야 할 땅, 그것은 한국인 고유영역의 정체성, 자존심과도 연결된다.

실패한 프로메테우스

순간, 무슨 말인가 할 게다. 박찬종이 독도처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일간 피 튀기는 갈등의 핵처럼, 쟁점이 되는 인물도, 더군다나 지키고 싶은 인물도 아니지 않느냐,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뉴시스.
그런데 박찬종은 우리 정치사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가 통치의 뼈대, 정치 체제의 심장과도 같은 헌법의 참뜻을 바로 구현하려는 이가 박찬종이고, 헌법대로만 하면 문제 없다고, 헌법대로 정치하자고 핏대 세우는 이가 박찬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주장이 현실 정치권 안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치패러다임이 바뀌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 박찬종의 헌법 수호 가치는 지켜져야 할 나름의 의미가 있다.

또한 그는 지금의 낡은 정치라 일컬어지는 권위주의 정치, 지역주의 정치, 3김 정치, 패거리 정치, 해바라기 정치에 정면 도전한 프로메테우스 같은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비록 깨끗한 정치, 새로운 정치라는 불씨를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 정치 과도기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타협하지 않은 투사적 면모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

만약 그가 됐다면…조기 3공 청산?

박찬종이 1971년 정치권에 입문할 당시 공화당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리며 애초부터 고군분투할 일도 없었을 거라는 일각의 시선도 있다. 혹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1992년 대선에서 당선됐다면 3김 시대 청산은 좀 더 일찍 앞당겨졌을 거라는 관측도 있다.

만약 그가 1997년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을 중도포기 하지 않았다면, 또 탈당하지 않고 밖으로 먼저 나간 이인제 후보를 돕지 않았다면 차후라도 당내에서 지지기반을 쌓을 수 있었을 거라고 애석해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박찬종이 '박찬종 스타일'을 버리지 못해 시대를 비껴간 안타까운 인물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우선, 그는 청렴하고 정직한 편이다. 또한 낯이 두껍지 못해 부끄럽다고 여기면 부끄러워  한다. 정치인 특성 중 하나인 얼굴 바꾸기에 능하다거나 자기합리화가 강하지 않고, 이른바 자기비판, 자아성찰 형이다.

ⓒ뉴시스.
부끄러움은 정치인에게 안 좋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유신시대 여당이었던 공화당 소속 의원이면서도 정치쇄신을 주도하는 한편 간이공판제도 신설을 반대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자기 소신을 정직하게 고수, 결국엔 제명을 당했다. 이 무렵 그는 지난날을 성찰하며 1983년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유신정권하에 몸담은 바 있던 스스로를 꾸짖었다.

박찬종은 이후 1985년 야권 통합의 일환으로 창당된 신한민주당에 들어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 당시 그는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 변호, 박종철 사망사건이 고문치사사건임을 밝히는 데 앞장서는 등 명망 있는 인권운동가로서 맹활약했다.

그는 또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깨끗한 정치를 기치로 내건 제3후보로 출마,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을 실천했다. 이에 깨끗한 정치인,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박찬종은 지금의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조직력도 없이 혈혈 단신으로 나간 상황에서도 6%대의 득표율을 획득, 대선 4위를 기록했다.

기회 잡을 타이밍을 놓쳤다

이외에도 박찬종은 쓴 소리의 달인, 촌철살인의 甲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하지만 명예를 중히 여기고 선비 성향에 가까워 남의 비판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울러 포부는 있지만 정작 야망은 두둑하지 못하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줄은 알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뉴시스.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여당인 신한국당에 박찬종을 영입했을 때의 일이다. YS가 공들여 영입한 만큼 당해년도 박찬종은 총선에서 전국구 2번을 배당받아 확실한 당선권에 들게 된다. 그런데 그는 지역구로 나선 후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사즉생 각오로 전국구 14번으로 돌렸고, 결국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어찌됐든 백의종군해 김문수 홍준표 등 많은 후보들을 당선시키는데 기여했던 그는 이후 YS로부터 정무장관직을 제안 받게 된다. 이때 박찬종이 수락했다면 나중에는 국무총리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였다. 하지만 박찬종은 정무장관을 맡게 되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염려, 쉽게 OK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간접 거절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 참여, 두 번째 대권도전 길에 나섰지만 결국 중도포기하게 된다. 체육관식 줄 세우기 등의 불공정한 경선에 환멸을 느껴 등 돌린 것도 있지만 YS가 충청도 지역의 이인제 후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미루어 짐작, 후에 그를 돕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박찬종은 또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사람을 믿기도 잘 믿지만 소신과 원칙에 위배되면 참지를 못해 독불장군 식으로 박차고 나가는 근성이 있기도 하다. 자신이 지원했던 이인제 후보가 DJ 쪽으로 가게 되자 이를 맹렬히 비판하며 그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메시지는 있는데 청사진 부족?

이와 함께 박찬종은 깨끗한 정치, 헌법수호 정치 등의 메시지는 있지만 청사진은 정작 부족했다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대권에 오르려면 강렬한 정책 비전 등을 국민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미래 가치로 인식되지 않아서일까. 근래 들어서는 낡은 정치인 이미지로 굳혀진 모습이다. 사실상 그는 요즘 정치인들보다 참신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젊은 층에게는 구시대적 인물로 비쳐지고 있는 듯하다.

안철수 현상에 투영된 미완의 꿈

한편 무당파 성향의 무균질 박찬종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부터 안철수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는 것을 보고 무지 반가웠을 것이다. 세대교체 바람의 원조, 제3후보의 모태격인 그가 목 빠지게 기다린 것은 제3후보 지대의 발판이 마련되는 거였다.

그래서일까. 최근 그는 18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다.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듯 자신을 비롯해 안철수 정운찬 등 제3지대 인물들이 국민후보추대연합 위에서 스파링을 하자는 것이다. 주먹을 세게 날려 최종 메달리스트에 오르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다. 다들 정치기반이 약한 상황이니 제3후보 지대간의 연대의 틀을 마련, 정책비전의 스파링을 통해 나름의 힘을 기르자는 취지일 게다.

끝으로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에게 권유해본다. 비록 대선 막바지 최전방에서 만날지라도 정치권의 김삿갓, 무균질 청렴함의 대명사, 헌법수호투사, 조직적이지는 못하지만 양심적이라 백의종군 할 수 있는, 뼛속 깊이 비주류의 피가 흐르는, 그러기에 진실의 쓴 소리를 던질 수 있는 박찬종 변호사와 손을 잡을 공간은 남겨두라는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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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2012-11-11 23:34:26
두뇌좋고 명석하고 의리있고 청렵하고 멋있는분 박찬종씨
존경합니다. 아까워요 저런분이 전두환 노태우 거쳐 1992 년대선에 당선되었다면
민주화도 멋지게 하였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