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은행과 착한 공공기관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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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은행과 착한 공공기관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4.08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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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한참 지난 이야기인데 미국의 어느 주정부가 주정부의 예산을 예치할 금융기관을 선정하는데 있어 다음의 조건을 내걸었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착한은행에 주정부 예산을 예치하겠다는 제안이었다.

해당 주정부가 말하는 착한은행이란 은행의 수익 중 상당액을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하되 그 공헌도가 높은 은행에 대해서만 주정부의 예산을 예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두고 몇몇 언론에서 착한은행이라고 지칭하면서 착한은행제도라고도 불리게 됐다.

지금도 이런 정책이 유효하게 적용되고 운용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바람직한 시도였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예산, 지자체의 예산, 그리고 공공기관의 예산을 자신의 은행에 예치하기 위한 경쟁이 높다고 한다.

예산을 예치하기 위해서는 입찰 과정을 거치는데 정성적인 판단보다는 정량적 기준이 높게 평가되어 이자를 더 준다거나 일정 금액 이상을 예치할 경우 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식의 옵션들이 오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미국 주정부의 제안과 같이 착한은행에 국고를 맡기겠다는 제안이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주목적이 국민을 위한 행정에 그 우선순위가 있다면 예산을 예치하는 대신 예산의 주거래 금융기관으로 선정된 금융권들이 국민을 위한 나눔의 사업에 보다 더 동참하도록 하는 것은 예치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공공성 확보라는 실익을 취하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9대 국회에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공공성 확대에 기여한 금융권에 예산을 예치하도록 하는 의원법안이 발의 된 적도 있지만 이 법안은 제대로 된 심의과정도 못가지고 임기만료 폐기됐다. 당시 발의된 법률안을 보면 금융기관에 대한 예산 예치조건으로 ‘취약계층 지원, 복지사업 등 공익사업 실시를 통한 사회공헌도’를 평가 항목에 의무적으로 추가할 것을 담았었다.

이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공기업 준정부기관이 자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경우 건전성과 공익성이 높은 금융기관을 정하여 자금을 예치할 수 있도록 하면 자금관리의 안정성, 투명성과 공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됨”이라고 적시 했음에도 귀결에 가서는 “법령으로 자금을 예치할 수 있는 금융기관을 한정할 경우 공공기관의 특성, 자금의 성격, 분산투자의 필요성, 만기 구조 등을 감안한 공공기관의 탄력적인 자금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며...”라며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을 담아 결과적으로 의결되지 못하고 말았다.

한편 은행 즉, 금융권에게만 착함을 강조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내 생각에는 정부와 지자체보다도 공공기관이 착함을 위해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은 공적인 일을 하는 민간인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공무원과 민간인 사이에 있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공기관은 민간사업자들과 같은 적극적인 마인드로 공적인 부분에서의 일을 하는 곳으로 정부 위탁사업이라든지 R&D 사업에 있어서 공무원들이 할 수 없는 창조적 제안과 실행, 그리고 성과를 내야한다.

그런데 일부 공공기관의 경우 공공성 강화를 공무원화로 잘못 인식하고 있어 민간영역에서의 협업이나 지원 기능을 보수화 시켜버려 스스로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능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나도 공공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다른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왜 공무원 흉내를 내냐”고 말이다.

공기업의 계약 담당하는 직원이 규정만을 내세워 시류를 읽지 못해 실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상급청과의 의견교환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단가만 높여서 예산을 낭비하는 등 행정이라는 틀 안에서 민간영역에서 요구되는 니즈를 제대로 반영 못하고 있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착함을 의무화하고 강요 할 수는 없지만 공공기관 스스로 민간과 공무원 사이의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저버리는 일들은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안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영역에서 떠안을 충격을 완화 시켜줄 수 있는 스폰지와 같은 역할은 공공기관에서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비서관, 보좌관 등을 지냈다. APEC기후센터(APEC Climate Center) 경영지원실장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근위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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