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 작가, 추억 길어올리는 매력적인 거울 회화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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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 작가, 추억 길어올리는 매력적인 거울 회화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 이화순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13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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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프레임 확장시킨 거울 작품으로 관객 매료
국전 대상 작가의 용감한 변신은 아직도 진행중
노화랑 40회 개인전 'Lee Yeul'(10.18~11.7) 개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이화순 칼럼니스트]

노화랑에서 열린 이열 작가의 40번째 개인전 Lee Yeul 전시전경. ⓒ 사진제공 = 이화순 칼럼니스트
노화랑에서 열린 이열 작가의 40번째 개인전 <Lee Yeul> 전시전경.
ⓒ 사진제공 = 이화순

그리스 신화에는 물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 결국 생명을 다하는 나르시스 이야기가 나온다시대를 현대로 바꾸면 나르시스를 비춘 물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치환된다.

작가 이열은 캔버스 대신 거울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199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상을 받은 뒤 2012년 개인전까지만 해도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회화를 캔버스 위에 그리던 작가였다. 그러나 2018년 노화랑에서 연 개인전 <이열>에서 국내 처음으로 캔버스 대신 거울을 이용한 신작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이어 최근 노화랑에서 열린 40번째 개인전 <Lee Yeul>(10.18~11.7)에서는 더욱 다채로운 거울 작품과 설치작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거울을 새로운 생성공간으로 접수해 캔버스 프레임을 넓혀가는 작업을 더 공고히 한 셈이다. 이열 작가의 거울은, 그 거울을 보고 있는 나를 비추고 있다기 보다는 거울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을 역사를 반사적으로 관객에게 비춰주고 있는 것 같다.

추억어린 어머니의 경대와 거울 작품

이열 작가, 거울형 회화, mixed media,135.5x85cm 2022 ⓒ 뉴시스
이열 작가, 거울형 회화, mixed media,135.5x85cm 2022
ⓒ 사진제공=이화순

보통 거울은 물체의 모습을 똑같이 비춰주지만 거울안에 있는 세계는 실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열의 거울 작품 속 이미지는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추상적이다. 그래서 더욱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다양한 오랜 기억과 추억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게 된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거울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수많은 시간 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담고 있었을 낡은 어머니의 경대에서부터 그의 거울 작업은 시작됐다. 이처럼 그의 거울은 많은 사람들의 오랜 삶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

노화랑 전시장에서 본 작품에는 르네상스 시기 어느 궁에서 홀로 쓸쓸히 사라져 갔을 누군가의 초상이 보이는가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인의 얼굴도 슬쩍 보인다. 그는 이번에 따스한 불빛이 스며 나오는 조명 위에 거울 작품을 얹은 신작으로 거울 작품은 차갑다는 편견을 깨는 시도를 했다.

추상적인 거울 작품 대표작가 되기까기

작품을 볼 때 일반 컬렉터들은 ‘내 집에 한 점 걸어놓는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며 작품을 바라보기 일쑤다. 작가가 파리에서 수집하기 시작한 빈티지 액자들은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타원형, 원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 다채롭다. 장식성 유무도 다르고, 액자의 소재도 나무와 금속, 채색한 것 등 가지가지다.

빈티지 액자 속 거울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와 장식성으로 꽤 오랫동안 그 앞에 머물며 대화를 하고 싶게 만든다. 관람객에게 작품 안을 들여다보게 하고 동시에 작품 바깥을 반사시킨다. 초점을 작품의 안과 밖, 그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확장성은 무한하다.

작가는 어떤 계기로 거울을 주 매체로 사용하게 됐을까.

서울 인사동 노화랑은 이열 작가의 40번째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지난 10월 18일부터 11월 7일까지 열렸다. ⓒ 사진제공 = 이열 작가

“2010년쯤 우연히 경기 동두천 미군기지 철수 현장에서 낡은 거울들을 발견한 것이 주요 계기였어요. 당시 어린 시절 경대 앞에서 화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됐죠.”

하지만 그가 유리와 만난 게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0년 국전 대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은 범람하는 물에 사물이 얼키고 설켜서 흐르는 것에 착안해 부감 시점에서 어눌한 듯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당시 물감에 유리가루를 쓰면서 물감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대상을 비추는 재료로 썼다.

“사실 20여년 평면 추상작업을 하면서 수행성과 반복성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어요. 40대 중반 즈음에 재료를 달리해서 독자적인 나만의 세계로 가보자하는 열망이 생겨났죠. 그러다가 동두천 군부대서 나온 거울을 만나게 된 겁니다.”

거울을 만난 순간 작가는 저 거울이 새롭고 흥미로운 재료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거울을 사서 작업실에 늘어놓고 세월이 흘렀다.

2014년쯤 거울로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 뒷면을 뜯어내고 벗겨가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몰입이 쉽지 않았다. 이러쿵저러쿵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두 딸이 용기를 주었다.

“2015년에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e·시테)에 입주해 1년간 체류했어요. 그때 파리 벼룩시장과 골동품시장을 훑으며 고풍스러운 거울을 사모으기 시작했어요.”

이열 작가, 배꼽에 어루쇠를 붙이다, Mixed Media, 113x149cm, 2020. ⓒ 사진제공 = 이화순칼럼니스트
이열 작가, 배꼽에 어루쇠를 붙이다, Mixed Media, 113x149cm, 2020.
ⓒ 사진제공 = 이화순

시간날 때는 은경막을 원하는 효과로 제거하기 위해 사포로 문지르고 깎아내는 등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계속했다. 하지만 물리적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화학약품 찾기를 석달간 헤매다가 마침내 현지 화가를 통해 화학약품을 구했다. 광맥을 찾은 듯 날 듯이기쁜 순간이라 회고한다. 이후 작품 제작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해 11월 파리 시떼에서 <또다른 시간>전을 연 작가는, 거울이 새로운 재료라는 데 확신을 갖게 된다. 2016년 귀국 후 본격적으로 낡은 액자와 거울을 이용한 작업에 몰입했다. 경기 포천의 광릉수목원 옆 작업실에서 호기심과 설렘의 대상인 거울을 보며 두문불출 작업에 몰두했다.

작가는 은경(銀鏡)의 뒤 페인트층을 벗겨내고 녹이는 행위는 마치 물감을 섞어서 작업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캔버스에서 거울로 재료적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생성공간(生成空間)’을 주제로 작업해온 그는, 거울은 누군가를 비추고 반영한 오랜 세월의 시간 즉 세월의 흔적과 상처가 쌓여있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감성과 감각에 따라 은경막을 지우고 녹여낸 행위를 통해 흔적을 남기고, 그 속에 투명천을 씌워 점묘 드로잉을 한다. 거울면이 벗겨지면 유리로 성질이 바뀌지만, 은경막이 남은 부분은 여전히 거울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작가가 만진 거울 액자는 캔버스 작업과 다른 지지체가 된다. 반사체인 거울 혹은 유리는 작품 밖을 반사한다. 캔버스에서는 볼 수 없는 또다른 몽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세계를 구현해 내는 것이다.

작품을 하면서 나를 끌어당기는 요소에 한껏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각도와 방향을 달리하면서 한없이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게 돼요. 그 앞에 서면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충만해 작업하게 되더군요.”

어느덧 거울 작업을 한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거울을 재료로 작품을 하면서 접한 부정적인 견해와 편견은 수도 없이 만났다. “유리 작품은 깨지기 쉽고 물성이 차가운데다가 재료의 친밀도가 낮다. 또 작품을 크게 만들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캔버스로의 회귀를 권하는 지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작가의 뚝심은 대단하다.

남들과 비슷한 것을 하기보다는 남과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작품이 더 중요하죠. 또 세계적인 유리 작가들도 있는데, 제 작품들이 깨지기 쉬우면 조심해서 운반하면 되죠. 또 반사체를 최대한 활용해 차갑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면 되구요. 더구나 작품의 양이나 크기 보다 퀄리티가 더 중요하지 않나요?”

열린 자세로 새로운 표현방법을 계속 시도해가는 작가의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이화순 칼럼니스트는…

에이앤씨미디어 대표이자 아트&미디어연구소 소장, 현대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평창비엔날레 홍보위원장,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홍보위원을 역임했다. 

안산문화재단 이사, 서초문화재단 비상임이사, 음성품바축제 연구위원, 서울교통공사 문화예술철도 자문위원을 지냈다. 

예술경영 석사, 경영학 박사. 스포츠조선 문화경제팀 팀장, 시사뉴스 문화 경제 국장·칼럼니스트로, 아트플래너, 아트컬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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