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은행권 기겁하는 까닭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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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은행권 기겁하는 까닭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 고수현 기자
  • 승인 2023.11.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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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이자장사 몰두?…선진국比 비이자이익 창출 창구 부족
국내 1위 KB금융, 세계랭킹 60위권…자본 대규모 확충 필요
횡재세 도입 현실화까지 난관도 많아…이중과세 논란 불가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금융당국-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한 양종희 KB금융 회장(사진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등이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금융당국-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한 양종희 KB금융 회장(사진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등이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횡재(橫財). 뜻밖에 얻은 재물, 또는 뜻밖에 재물을 얻었다는 의미로 별다른 노력없이 그저 운좋게 여건이나 상황이 돼 재물을 얻었다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횡재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횡재세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은행권 이자수익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겁니다. 고금리 상황에서 은행이 별다른 노력도 없이 이자수익이라는 횡재를 얻었으니 도로 토해내란 소리죠. 세금 명칭부터 은행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노골적으로 담겨있으니, 사실상 은행권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목줄인 셈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횡재세 도입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온 건 지난해부터입니다. 기본소득당에서 추진한 ‘한국판 횡재세’는 군소정당이라는 한계성과 은행산업 성장 족쇄 등을 이유로 정치권은 물론 금융권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죠. 당시 금융권에서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며 별다른 대비나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1년이 지난 지금은 횡재세(또는 유사 횡재세) 도입 추진이 정치권 주요쟁점으로 다뤄지면서 은행권이 그야말로 기겁을 하고 있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고금리에 고통받는 서민과 자영업자의 표심을 잡기위한 은행권 때리기가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횡재세 도입 주장 배경을 보면, 은행의 핵심이익이 이자수익에만 지나치게 편중된 상황에서 결국 은행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서민과 자영업자들로부터 그만큼 이자를 많이 받아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주요 선진국들의 은행은 비(非)이자수익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데 국내 은행들은 20%대를 넘지 못한다는 얘기도 빠지지 않고 나오죠. 이는 수치로만 보면 ‘사실’이긴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은행들은 정말 이자장사에만 몰두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중 수수료 수익을 낼 창구가 다양하다는 점이죠. 미(美) 은행의 경우 계좌 유지 명목으로 고객들로부터 월 단위로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도 ATM 수수료, 계좌이체 수수료 등으로 비이자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죠.

반면 우리나라 은행은 이 같은 서비스 대부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죠. 국내은행이 미국은행처럼 계좌 유지 명목 수수료를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 거 같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손가락질 받겠죠. 

이처럼 수수료 수익 구조가 다른 상황에서 수치로만 단순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다시 횡재세 얘기로 돌아와 이자수익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습니다. 얼마부터를 초과수익으로 볼지 그 기준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이중과세 논란도 큰 산입니다. 특정산업에만 횡재세를 부과하는 경우 형평성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됩니다.

금융당국 역시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횡재세 도입에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법률로 초과수익을 환수하겠다는 것인데, 은행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금리 장기화라는 특별한 상황에 맞춰 대응을 해야지, 법률로 일률적 규제를 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는 논리죠. 이 같은 우려에 공감대를 형성한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상생금융 확대’를 그 대안으로 내놓은 상황지요.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단계지만, 은행권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역대급 규모’의 이자부담 경감책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횡재세 도입 주장은 사실상 은행권을 더 압박하기 위한 ‘협박용 카드’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상생금융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진짜 추진할 수 있다는 으름장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상생금융 확대와 별개로 은행들은 국내 이자수익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비이자이익 포트폴리오 확대, 해외 진출 등을 추진하고 있죠. 아울러 글로벌 경제둔화와 고금리 등 경제위기에 대응해 건전성을 관리하고자 대손충담금도 열심히 쌓고 있고, 금융지주들은 성과 일부를 배당금으로 주주들과 공유하고 있죠. 모두 은행이 창출한 수익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횡재세 도입이 이뤄진다면 당장 주주 배당금 지급이 어려워질테고, 해외진출 역시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진행하긴 어렵겠죠.

무엇보다 횡재세 도입이 우려되는 건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국내 금융지주 중 ‘리딩금융’이라는 타이틀을 쥔 KB금융그룹조차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60위권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내 1위 금융그룹이 세계무대에서는 상위권은 커녕 5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죠. 최근 퇴임한 KB금융 윤종규 회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국내 금융사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상위권에 들어가려면 자본 확충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상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자본 확충이 요구되죠.

횡재세 도입 주장이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해야하는 국내 은행산업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건 착각일까요?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은행·카드 담당)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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