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국회 연금개혁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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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국회 연금개혁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3.16 09: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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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짐 덜 수 없다
21대 국회 마지막 임무 돼야
역대 최악 무능국회…7,8년 늦추는 걸 개혁안이라고 내미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상균 공론화위원장과 연금특위 여야 간사인 유경준·김성주 의원 등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에서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뉴시스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상균 공론화위원장과 연금특위 여야 간사인 유경준·김성주 의원 등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에서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것이 국회 연금개혁인가.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은 2개 개혁안은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하다. 연금개혁을 위해선 큰 폭의 보험료 인상과 함께 소득대체율 인하, 수급 개시 연령 상향이 필요한데 어느 것도 제대로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2055년으로 예상된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기 어렵고, 극심한 저출생 상황에서 젊은 층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 짐을 덜려면 현 납부 주체들이 ‘더 내고, 덜 받고, 나중에 받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이번 안은 그런 방향이 아니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해야 하는”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강조돼 왔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 직후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에서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며 표류해왔다. 정부 자문기구는 기금 소진 시점이 2년 앞당겨진 심각한 재정추계 결과를 받아들고도 20개 넘는 개혁안을 정부에 떠넘겼고, 정부는 여기서 민감한 숫자를 뺀 맹탕안을 국회에 넘겼으며, 국회 연금특위는 자문위와 공론화위를 만들며 질질 끌다 결국 ‘찔끔’ 개혁안으로 시늉만 내다 끝내려 하고 있다.

공론화위가 제시한 1안은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40%에서 50%로 높이는 것이다. 2안은 보험료율 인상을 12%로 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은 40%를 유지한다. 보험료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8%까지 높이거나 소득대체율 인하 주장도 있었지만 후퇴한 것이다. 1·2안으로는 연금 고갈 예상 시점이 2055년에서 7~8년 늦춰질 뿐이다.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한 국민 목소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국회 특위 민간자문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재정 안정화 방안(보험료율 15%, 소득대체율 40%)이 선택지에서 빠진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의제 숙의단의 연금개혁안은 “실망스럽다”는 혹평을 받았던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안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다. 민간자문위는 지난해 11월 최종 보고서에서 내는 돈과 받는 돈을 의제 숙의단의 1안과 같은 13-50%로 인상하는 ‘소득보장 강화 방안’과 15-40%로 조정하는 ‘재정 안정화 방안’을 제안했다. 1안의 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2년으로 현행보다 7년, 2안은 16년 늦춰지게 된다. 그런데 의제 숙의단의 2안은 소진 시기가 2063년으로 ‘소득 강화 방안’인 1안과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재정 안정화 방안’이라 부르기 민망하지 않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행대로 ‘2033년부터 만 65세’로 놔둔 것도 문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외부에 의뢰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수급 연령 인상에 응답자의 68.9%가 ‘무조건 찬성’ 또는 ‘정년 연장 등과 함께 조건부 찬성’을 택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수급 연령을 늦출 의향이 있는데도 공론화위는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이다. 공론화위가 다음달 시민대표단의 네 차례 토론을 거쳐 단일안을 확정하면 21대 국회는 마지막 의결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총선 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또 2개 안 중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연금 지속성을 높이려면 추가 논의가 불가피하다.

2007년 이후 멈춰 서 있는 연금개혁의 시계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지난해 말 기준 1035조 8000억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기금은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늘면서 2055년에는 고갈될 상황이다. 지난 정부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험료율을 9%에서 12~13%로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50%로 높이는 개혁안을 보고받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물거품을 만들었다. 이제 또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건 미래세대에 시한폭탄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연금특위는 시민대표 500명을 선발해 다음달 13~21일 생방송으로 토론을 벌인 뒤 단일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는 돈을 더 큰 폭으로 높이고 주는 돈을 더 줄이는 게 기금 안정성엔 가장 좋겠다. 하지만 국민의 수용 가능성이 없다면 국회 통과는 요원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부담해야 할 보험료 인상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여야는 4·10 총선이 끝나고 21대 국회가 문을 닫는 5월 안에 이 ‘점진적 개혁안’이라도 반드시 처리하기 바란다. 그것이 그나마 역대 최악 무능 국회였다는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길이다.

현 정부가 연금 문제를 3대 개혁 중 하나로 내건 데다 연금 고갈 압박이 커지고 있어 연금개혁은 시급한 과제다. 최근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을 넘어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계정을 분리하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시늉만 내는 조치 말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된 안을 내놓고 국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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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2024-03-17 19:52:31
청량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