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역사와 현실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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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역사와 현실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3.23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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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 전철 밟으면 개혁 요원
국민생명 의료개혁 총체적 페달 밟아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 4대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 4대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사 최강의 이익집단은 의사집단이다. 의료개혁을 내세운 역대 어느 정권도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번번히 가로막혔다.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정부 등 7개 정부가 9차례 크고 작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모두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가로막혀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정규 의사가 턱없이 부족했던 1955년 의사면허가 없어도 경력과 기술이 인정되면 지역과 기간에 한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지(限地)의사’ 면허를 도입하려 했으나 의사들 반발로 무산된 것을 시작으로 의사 면허세 부과(1962년), 침사·안마사 등 ‘유사의료’ 제도화(1965년) 등이 죄다 무위에 그쳤다. 2000년 의약분업은 의대 정원 10% 감축을 가져왔다. 2014년 원격의료 도입도 좌절됐다.

역대 정부는 지난 27년 동안 의대 정원을 단 1명도 늘리지 못했다. 그만큼 의대 정원과 의사 정원을 늘리려면 의사단체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고, 의사단체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의료개혁은 불가능한 현실로 치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의사정원 확대와 의료개혁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만큼 역대 어느 정부와는 다른 강경 기류를 읽을 수 있는 동시에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통도 동시에 수반되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1개월을 넘어선 만큼 정부와 의사단체는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며 전향적인 대화의 문을 열고 의료개혁을 향한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의대정원 확대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이기 때문에 더 늦출 수가 없는 일이다.

현재 국민 70%가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렸던 경증환자들이 자의반 타의반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의료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공의들이 환자 곁을 떠난 지가 3주가 지났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결은 이어지고 있다. 양측이 한발도 물러날 기미 없이 한달째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 의정(醫政)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나지 않으면서 상대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전공의는 병원을 떠나고, 전임의는 계약이나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의대 졸업생은 전공의 계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대항하고 있다. 40개 의대생의 유효 휴학 신청건수는 8000건 가깝고, 개원의들은 주말·야간 진료 거부를 논의 중이다. 병원의 마지막 보루인 의대 교수마저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에 맞서는 정부도 강경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일부 간부들에게 의사 면허 3개월 정지를 통보하는가 하면, 병원 미복귀 전공의들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추가로 공고했다. 의사들에 대한 행정 및 사법 처리가 시작된 것이다. 의대 교수가 의료 현장을 떠날 경우 진료유지 명령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의·정 충돌이 장기화하면서 전국 의료현장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은 의사들, 의사 업무를 떠맡게 된 간호사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러다 환자들의 죽음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의대 교수들도 4월이 넘어가기 전에 해결해야 의료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이면서 피해자인 국민과 환자들이 오히려 인내하는 형국이다. 대다수 국민은 그간 수차례 실패한 의대정원 확대와 함께 의료체계 혁신에 대한 기대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수도권 병원에만 환자가 몰려 지방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피부과·성형외과 등 돈 버는 과목에만 의사들이 몰리는 게 의료계의 비정상적인 현실이다.

더욱이 교수까지 전공의들과 한통속이 되면서 의료개혁은 더 절실해졌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던가. 결국은 같은 의사들이었다. 다른 대학 교수들은 서울대 교수들의 뒤를 밟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환자들이다.

의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최고 지성인들이다. 이들이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는 건 의사와 스승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전공의들에 이어 전임의들까지 대거 이탈한 마당에 의대 교수들마저 진료를 포기한다면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진료 거부는 범죄 행위”라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원들의 호소가 안 들리나. 환자와 국민을 더 이상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의사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가 소모적 갈등으로 끝나선 안 된다. 출구를 찾느라 임시 봉합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의 절대 지지 속에 의대정원 2000명 확충과 의료개혁을 반드시 이뤄내는 게 인내하는 국민들에 대한 보상이다. 의사집단은 하루속히 현장으로 복귀해야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 결의를 철회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원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는다면 의료개혁은 요원해진다. 의대 정원 배정을 서둘러 원칙의 견고함을 보여야 할 때다. 대학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수가 개편을 통한 전문병원 역할 강화 등 이번 사태로 드러난 의료현장의 문제를 바로잡는 제도 정비에도 더욱 총체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동시에 전공의들에게 돌아올 명분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필수·지방의료를 살리는 패키지 정책에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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