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터진 포퓰리즘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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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터진 포퓰리즘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3.3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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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되지 말고 냉철한 대응을
도 넘은 여야 포퓰리즘 경쟁
퍼주기 공약…뒷감당 어떻게 할 건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충북 청주시 동부창고에서 열린 스물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충북 청주시 동부창고에서 열린 스물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참석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포퓰리즘은 재정파탄의 지름길이다. 9차례 디폴트(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지금도 세 자릿수 물가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도 지난해 기업실적 악화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국세가 56조원 이상 덜 걷히는 역대급 ‘세수펑크’가 일어났다. 섣부른 감세는 오히려 재정운용에 부담을 줄 개연성이 크다. 이런 판국에 감당하지 못할 돈풀기 경쟁은 물가만 자극할 게 뻔하다. 민생을 살리는 것도 재정이 감내할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선심 정책 남발은 재정 건전성을 한층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영호남권 일부 도당 위원장들은 인구소멸 지역 읍·면 주민들에게 매달 각각 15만 원, 10만 원씩 지급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일부 후보는 첫아이 출산지원금 1000만 원 지급을 약속했다.

무리한 현금 지원 사업으로 늘어난 재정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야 하므로 그 부담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들은 지방재정을 더 악화시키는 포퓰리즘 공약 경쟁을 멈춰야 한다. 정부도 선심 정책으로 적자를 키우는 지자체에는 교부금 삭감 조치 등을 취해 지방의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고질적인 포퓰리즘은 도를 더하고 있다. 선거에 이겨야 한다는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야는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물론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원금을 주고 취약계층에는 거기에 10만원을 더 주겠다며 마치 자기 주머닛돈을 쓰겠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정부와 여당도 이 대표의 발언에 빌미를 제공했다. 세 자녀 이상 가구는 대학등록금을 전액 면제하겠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약속도 선심성 발언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저출산이 국가적 중대사라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이렇게 불쑥 내놓을 게 아니다. 정부 차원의 숙의가 필요한 문제이며 야당의 현금 살포 약속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여당이라면 긴축재정을 추구하는 정부와 엇박자를 내서는 곤란하다.

여야의 선거용 포퓰리즘 경쟁은 이뿐 아니다. 건전재정을 외치는 정부·여당조차 초·중·고생 연 100만원 바우처, 재형저축 부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상향, 소상공인 이자환급 등 연일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도 여기에 편승해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과 가상자산 매매 차익에 대한 공제 한도 상향 등을 외치고 있다. 가상자산은 변동성이 커 소비자 보호가 어렵다는 지적도 아랑곳 않는 선심성 공약(空約)이다.

여야의 행보에 가장 걱정해야 할 당사자는 재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실과 정부다. 그런데 되레 한술 더 뜬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23차례 민생토론회를 주재했는데 매번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약속을 하고 있다. 25일엔 반도체 고속도로를 짓겠다 했고 대구 통합신공항 개항, 국가장학금 수혜자 50만명 확대 등의 정책들을 발표했다. 재원이 얼마 들지 정부도 답을 못한다. 이재명 대표는 “1인당 25만원 지원은 민생토론회 공약에 드는 900조∼1000조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 했다. 정당 퍼주기 공약에 정부 정책이 면죄부를 준 격이다.

세수는 지난해 사상 최대 결손(56조원)에 이어 올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세수 부족이 이어지면 정작 민생을 위해 돈을 못 쓰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2022년 한국의 조세탄성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히 늘어나야 할 세입이 턱없이 적다는 의미다. 현 정부의 감세 정책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선거용 퍼주기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한국호를 이끌 정당, 정부, 대통령실이 경제 미래를 갉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을 판이다. 특히 대통령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법인세 수입이 77조600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3.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를 기록한 가운데 세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법인세는 올 1월부터 전년보다 감소했다. 국가재정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만 이기면 상관없다”는 식의 민생접근은 수권정당으로서 무책임한 모습이다.

판단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얄팍한 수작임을 명심하고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허황된 약속을 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냉철함도 보여줘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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