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왕국③ “밥 먹읍시다” 감독과 남자 반장이 들어왔다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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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왕국③ “밥 먹읍시다” 감독과 남자 반장이 들어왔다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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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구 여사의 핸드폰 알람 소리에 세상모르고 곤하게 자던 여자들이 일제히 발딱 일어났다. 후다닥 교자상이 펴졌다. 냉장고의 반찬통들이 상위에 그득하게 차려지고 구 여사는 밥그릇을 연신 퍼 날랐다. 

나는 ‘재순’ 옆으로 꼭 붙어 앉아 밥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때 “밥 먹읍시다” 하면서 감독과 남자 반장이 건너왔다. 감독은 철퍼덕 허니 교자상 머리에 거만을 떨면서 앉았다. 남자 반장은 슬그머니 감독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고는 “내 반찬이 어떤 거야?”라면서 상위에 펼쳐진 반찬을 찬찬히 살폈다. “반장님 반찬은 여기 감독님 반찬과 함께 드시면 돼요”라며 ‘순옥’ 이 살살거렸다. 감독과 반장한테 수저를 챙겨 주는데 한눈에 봐도 눈꼴이 신 것이 나도 모르게 확 비위가 뒤집혔다.  

더 깜짝 놀랄 일은 감독 앞에 맥주 컵이 놓였고, 그 안에 소주를 콸콸 따르는 사람은 ‘순옥’ 이였으며, 그 모습이 마치 제 남편한테 따르듯,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히히 감독님한테 오늘은 술안주로 드린다고 ‘영심’ 이가 홍어회 무쳐왔대요. 순옥아, 홍어회 감독님 앞으로 놔 드려.” 

구 여사는 교자상 저쪽 머리 쪽으로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마치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시키듯이 했다. 

“어디 ‘영심’ 이 안주 한번 먹자”라며 감독의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벌써 감독의 입안으로 홍어회가 한 점 쏙 들어가 버렸다. ‘순옥’의 작품이다. ‘순옥’ 은 아예 감독 옆에 바싹 붙어서는 연신 술과 밥을 번갈아 퍼 먹이는데, 감독은 마치 편식하는 어린애인 양 술은 벌떡벌떡 잘도 들이키면서 ‘순옥’ 이 들이미는 안주와 밥은 안 먹겠다고 자꾸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감독님 밥을 드셔야 해요” ‘순옥’ 은 왼팔로 감독의 등을 다독이면서 보채는 어린아이에게 억지로라도 밥을 퍼 먹이려고 했다. 이미 감독은 소주 두병을 꿀꺽한 상태였다. 

지독한 소주 냄새 가 밥상 가득히 진동했다. 

“큰일 났네. 이렇게 밥을 안 드시니…" 

진한 소주 냄새와 ‘순옥’ 의 여우꼬리 같은 심한 휘둘림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순옥’ 의 꼬리는 ‘재순’으로부터 들었던 그 꼬리보다 훨씬 길고 털이 많은 암컷 여우꼬리 같았다. 

“아, 좀 제발 그만 먹이라고…“ 

버럭 감독의 투정이 ‘순옥’을 향해 더욱 진한 소주 냄새와 함께 밥상 위로 쏟아졌다. 그제야 ‘순옥’ 이 밥을 먹었다. 감독이 먹던 밥을 퍼먹기 시작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감독은 흥에 겨운 듯이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스물다섯 살에 장가를 갔는데 말이야. 아, 처갓집이 워낙에 산골이라서 가는 데만 다섯 시간이 걸렸어, 섣달이라서 제일 춥던 땐데 내복에다가 신랑 예복이라는 것을 입었으니 얼마나 추웠겠어, 겨우 색시 집에 당도해서 초례청에 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색시가 나와야 말이지. 내가 떨다 못해 얼어 죽을 판국이더라고. 성질이 얼마나 나던지, 나 장가 안 들고 집으로 가겠다고 난리를 쳤지. 처삼촌이 화롯불을 내오고 난리가 나더니 그제야 신부가 나오는 거야, 나는 가겠다고 계속 고집을 피우니까, 처갓집 끄나풀들이 모두 다 나와서 만류를 하는 통에 못 이기는 척하고 초례를 치렀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혀서 속이, 속이 아니라니까. 아무튼 나는 일평생 생각을 해봐도 여자들 속을 모르겠더라고.”

감독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독한 술 냄새 때문에 나까지 취기가 도는 듯했다. 아마도 감독의 그 같은 자랑은 거의 매일매일 이어져 왔으리라. 누구 한 사람도 감독 말에 호응하지 않는 걸로 봐서도 그렀다. 사실 감독한테 꼬리를 흔들어 대는 ‘순옥’이라도 어떻게 그 같은 오만무쌍한 감독의 말에 장단을 치겠는가? 감독의 자랑 같지도 않은 위세도, 끝이 났고 밥상도 다 치워졌다. 먹은 설거지는 순번을 정해 놓고 여자가 하는 모양이었다. 

설거지도 끝나고, 모든 야간조 미화원이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감독 앞으로 모여 앉았다. 그날그날 감독의 지시 사항을 듣기 위함인 것은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오늘부터 재순이는 기계를 돌리지 말아. 내가 반장한테 기계 돌리는 것을 가르쳐 줄 거니까 재순이는 발판을 하고, 순옥이는 반장 뒤를 쫓아다니면서 기계가 못 들어가는 데를 마대로 닦으면 돼. 길자가 영심이와 함께 에스컬레이터 양옆과 유리를 닦고 구 여사는 정자와 함께 화장실 청소, 경숙이는 하던 일 계속하면 돼. 알았어?”

그러면서 꽥 소리를 질러댔다. 동시에 벽걸이 시계가 밤 12시를 가르쳤고 우르르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 나갔다. 청소 장비는 지하 5층에 있었다. 기계는 지상 8층에 내려놓고 모두 지상 9층에서 내렸다. 들었던 바대로 9층은 바닥이 돌바닥인 관계로 기계가 필요치 않았다. 빗자루로 쓸고 마대로 닦아야 했다. 

9층 청소가 끝나면 나와 구 여사는 9층 화장실로, 재순과 길자와 영심은 에스컬레이터로, 경숙은 층마다 설치돼 있는 고객 편의 시설을 청소해야 한다. 이 같은 작업은 새벽 1시 반까지 진행됐다. 1시 반이 되면 모두 휴게실로 이동해 휴식을 취할 수가 있다. 새벽 3시가 되면 다시 작업이 시작되는 방식이다. 

특이한 점은 남자 반장은 그 시각부터 외곽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를 여자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오늘부터는 감독이 순옥에게 넘겨준다는 것이고 어제까지는 그것을 재순이 했었다는 얘기였다. (이어서)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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