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패배한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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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에 패배한 '콘텐츠'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4.21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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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2010지방선거上>차기 여권 기수 선점 '고지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2014년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YS가 지방선거를 30년 만에 부활시켜 1995년 제1회 선거가 치러진 이래,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또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등용문으로,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등이 지방선거를 발판삼아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지역의 대표 자리를 걸고 펼쳐온 다섯 차례에 걸친 선거대전. <시사오늘>이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지난 지방선거를 되짚어 봤다. 첫 번째로 34년 만에 부활된 1995년으로 들어가 봤다. <편집자 주>

▲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의원은 이미지를, 원희룡 의원은 콘텐츠를 앞세워 선거 구도를 형성했다 ⓒ 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은 행복했다.

오세훈의 정책 중 하나인 스노보드 월드컵대회가 2009년 12월 11일 광화문에서 개최됐다. 스노보더들은 현란한 기술을 내뿜으며 광화문광장을 장식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것이 바로 창의적 아이디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에 봄이 찾아오자, 오세훈은 또 다른 정책을 내놨다. 광화문 광장에 플라워 카펫을 깐 것이다. 서울 한 복판에서 자라나는 꽃들과 잔디들은 오세훈이 생각했던 서울의 모습이었다.

그는 서울이 아름다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아름다움이 훗날 독이 되어 오세훈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행복한 꿈속을 거닐었다.

오세훈은 “최초의 재선 시장”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에 찼다.

오세훈 발목 붙잡는 ‘이벤트 행정’, 도마 위에 올라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들은 오세훈의 ‘이벤트 행정’에 대해 비판했다.

광화문 광장의 스노보드 대회를 위한 점프대 설치에만 17억 원, 개장 두 달 동안 광장 관리비로 3억 6700만 원을 들였다.

게다가 플라워 카펫엔 6억 원이나 들였다가 뽑고 다시 그 자리에 11억 5000만 원을 들여 조성한 스케이트장 등이 전시행정이라며 논란이 됐다.

오세훈은 흔들거렸고 원희룡 나경원 의원 등이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렸다.

▲ 원희룡 의원은 본인의 단짝과도 같은 나경원 의원에게 서울시장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했다 ⓒ 뉴시스

원희룡 vs 나경원, 친했던 두 동기가 라이벌이 된 사연

원희룡은 한나라당에서 개혁을 일으켰던 소장파다. '보수'색이 짙었던 한나라당에서 변화의 물결을 주도했다. ‘보수 꼴통’으로 불리던 한나라당에 변화와 개혁을 주입시킨 주인공이기도 했다.

원희룡을 필두로 소장파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남원정은 16대 미래연대, 17대 새정치수요모임을 주도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이들의 개혁적 이미지는 ‘보수’ ‘구태’ ‘노령’ ‘지역주의’의 이미지였던 한나라당을 ‘개혁’ ‘변화’ ‘소장’ ‘탈지역주의’ 이미지로 바꿨다.

한나라당 내 개혁 성향을 가진 원희룡에겐 한나라당의 희망이라는 수식어도 붙여졌다.

원희룡은 그렇게 오세훈을 잡을 서울시장 후보로 우뚝 설 줄 알았다. 그런데, 길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학번으로 친밀함을 유지하던 나경원 의원이다.

두 사람은 사석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우정을 확인했던 사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경선을 앞두고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원희룡은 2009년부터 서울시장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2010년이 들어서자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제일 먼저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3월 7일 서울시장에 나갈 것을 공식화했다.

저울질을 이어가던 나경원은 3월 17일 서울시장에 나갈 것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나경원은 일류대학 출신에, 수려한 외모와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 같은 호소력 있는 언변으로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나경원은 만나고 싶은 정치인 1위, 국회의원 보좌관이 같이 일하고 싶은 정치인 1위를 차지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런 두 사람이 서울시장 경선 후보를 놓고 만났다. 원희룡 입장에서 보면 힘겨운 싸움이었다. 개혁이라는 화두를 통해 오세훈을 제압한다는 전략이었으나 이를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세훈에 앞서 화려한 이미지로 무장한 나경원이 앞에 서 있었다.

원희룡은 나경원과의 단일화를 통해 승부수를 띄웠다.

이들은 4월 29일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고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후보를 정하기로 했다. 여론조사는 29일 오후 8시부터 30일 오후 6시까지 실시하되, 결과는 승패만 공개키로 했다.

결과는 나경원의 승리였다. 나경원이 원희룡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당시 합의 선출방식 1번은 ‘여론조사는 한나라당 서울시 책임당원 1000명, 서울시민 2000명 중 한나라당 지지자로 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한나라당 지지자’에 국한된 여론조사가 나경원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한 정치 전문가는 21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원희룡이 한나라당 내 개혁파다 보니 애초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겐 그다지 좋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면서 “그 때 당시 원희룡이 간발의 차로 졌는데, 아마 한나라당 내 지지자로 국한하지 않았더라면 원희룡이 이기는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원희룡은 패배의 변을 이렇게 했다.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었는데 집계를 하면서 덧셈을 해보니 끝자리에서 약간의 차이가 났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 위주의 틀에서 벗어나 희생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키우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정치풍토를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링 위에 올라온 나경원은 오세훈에게 있었서는 원희룡보다 더 쉬운 상대였다.

오세훈과 원희룡이 붙는다면 이미지와 콘텐츠의 싸움이 됐을 것. 하지만 나경원이 올라와 ‘이미지’대 ‘이미지’싸움이 돼버렸다.

나경원은 막판 대 역전극을 노렸지만 본인만의 생각이었다. 2010년 5월 3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최종결과는 오세훈이 3,216표를 얻어 68.3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나경원을 꺾고 본선에 올랐다.

나경원은 1,170표를 얻어 24.88% 지지율을 기록, 2위에 머물렀다.

파죽지세로 올라온 오세훈은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한명숙을 꺾으며 마침내 차기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계속>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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