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추협 커튼콜ⓛ>민추협 정신, 87년 체제 그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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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 커튼콜ⓛ>민추협 정신, 87년 체제 그 너머로
  • 김병묵 기자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6.28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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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일군 자부심, 성공한 한국정치사상 최대 실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홍세미 기자)

▲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이 공개한 민추협 30주년 기념메달 ⓒ시사오늘

“그 어떤 훈장보다도 값지다. 가문 대대로 보존할 생각이다.”

2014년 5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김영삼(YS) 김대중(DJ) 두 사람의 얼굴이 담긴 메달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나눠줬다.1984년 5월 18일 민추협 결성 때부터 활동했던 노병구 부이사장은 메달을 받은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민추협메달은 민주화를 위해 힘썼다는 단순한 증표 외에 더 큰 의미를 지닌다. 87년 체제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선거구당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 등은 제9차 개정헌법을 토대로 한다.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이다.

87년 체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이전에는 한 지역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였다. 대통령도 국민의 손으로 뽑지 못했다. 민주화의 열망이 용솟음쳤다. 6월 항쟁을 통해 얻어낸 민주화의 결과물이다. 이를 주도한 단체는 두말할 필요 없이 민추협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추협 공동의장 시절 악수를 하며 단합을 다지던 모습 ⓒ시사오늘 DB

YS 단식으로 촉발된 상도동-동교동 연합전선

민추협을 통한 87년 체제를 만들어내기까지 YS의 23일 간 단식투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983년 5월 18일 시작한 YS의 단식투쟁은 역사의 분수령이 됐다. 1980년 5·17 후 전두환 군사독재 폭압에 침묵하던 정치권 인사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고, 재야 등 야권인사들을 하나의 민주세력으로 결집시키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 YS 단식투쟁은 1년 후 민추협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YS와 함께 민추협을 만들었던 김상현 민추협 상임고문은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YS가 단식투쟁을 했던 게 민추협이 결성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민추협이 결성되기까지 전두환 정권의 집요한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이와는 별개로 민추협이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큰 어려움은 상도동(YS)과 동교동(DJ)의 연대였다. 이들이 하나의 합작품(민추협)을 만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동교동 쪽은 ‘선장(DJ)’이 없다며 민추협 참여를 놓고 내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영록 김종완 박종태 등은 “선장이 없는 상태에서 김영삼에게 붙으면 조직이 와해된다”며 YS와의 연대를 결사반대했다. 반면 김상현 조연하 김녹영 박종률 등은 공동전선 구축을 주장했다. 이러한 이견 때문에 수 개월 간 논란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DJ는 “동교동계만의 독자노선을 만들라”며 YS와 연대를 반대했다.
하지만 DJ의 이러한 메시지는 제대로 먹혀들지 못했다. YS와의 연대를 강력히 주장한 김상현 때문이었다.

그리고 1984년 5월 18일. 마침내 80년 정치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민추협이 발족하기에 이른다.
민추협은 이날 외교구락부에서‘민주화 투쟁 선언’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발족을 대내외에 알렸다.
민추협은 이후 6월 14일 결성식을 갖고 최고의결기구인 10인 운영 소위를 결성한다.
10인 소위는 김명윤 이민우 윤혁표 김동영 최형우(이상 상도동계) 조연하 김녹영 박종률 박성철 김윤식(이상 동교동계) 등으로 구성됐다.

민추협은 이후 5공 정권에 항거하며 민주화투쟁을 이끌었고, 마침내 1987년 노태우의 6·29 항복을 만들어낸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추협을 향한, 전두환 정권의 탄압은 집요하고 혹독했다. 특히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완전 무시한 행위로 비춰져 어려움이 많았다.

YS는 자서전에서 민추협 결성과 관련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민추협을 만들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전두환 정권의 핍박으로 곤욕을 치르거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를 만나서 민추협 동참 서명을 받으면 그 사람은 당장 어딘가로 불려갔다. 서명하기로 약속하고 해외로 나간 인물도 있었다. 내가 약속을 하고 찾아갔는데 어디론가 나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민추협 발기인 서명용지를 보면 먹으로 지운 명단이 상당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서명용지가 걸레가 되다시피 했을까.”

그럼에도 민추협은 물러서지 않았다. 김상현 상임고문은 “민주화는 당시 온 국민의 희망이자 우리의 생명과도 같았다. 이는 민추협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민주진영 '복원'…남은 것은 명예회복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민추협을 이끌었던 YS와 DJ는 반목과 갈등으로 분열했다. 민주진영이 YS와 DJ로 갈렸다. 그러다 2002년 민추협이 재결성됐지만 성과가 없었다. 2009년 DJ 서거 직전 YS와 DJ 두 사람이 화해하면서 민추협을 통한 민주진영 복원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2014년 5월 15일 30돌을 맞은 민추협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거대한 행사를 가졌다. 이날 기념식엔 민주화운동과 한국정치를 이끌어온 상도동 동교동 양 계파 원로와 전·현직 의원 등 회원 13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장에 이사장을 맡은 상도동 김덕룡 전 의원과 동교동 권노갑 전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인 김무성 의원과 박광태 전 광주시장도 참석했다. 이밖에 강창일 이인제 원혜영 설훈 김우남 정병국 등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대다수의 의원들도 자문위원 자격으로 자리를 지켰다.

민추협 회원들 중 대다수는 현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여야로 갈려 있지만 여전히 당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때문에 현실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로 모여서 과거 민추협의 성세를 재현하긴 어려워 보인다. 과거에는 ‘독재타도’와 ‘민주화 쟁취’라는 정확한 슬로건이 있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여야로 나뉘어 정계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다시 뭉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못 된다는 게 중론이다.

민추협 이성춘 사무총장은 “민추협 현장에 있던 분들은 이미 정계를 은퇴 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현실정치에 있더라도 여야로 갈려 있어 하나의 어젠다를 만들기 쉽지 않다. 정치권에서 각자의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민추협 자체가 누구를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때문에 민추협은 현실정치 참여보다는 재평가를 통한 명예회복에 주력할 방안인 듯하다. 민추협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실들을 담은 책이 발간 예정이다. 또한 국가유공단체 등으로 등록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성춘 사무총장은 “YS와 DJ, 두 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 널리 알리는 게 우리의 임무다. 이를 위해 민추협 관련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민추협을 국가유공단체로 등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민추협의 공로가 컸다. 그동안 민추협이 역할에 비해 평가를 못 받았다. 민추협이 어떤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재평가 받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 민추협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악수하는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왼쪽)과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뉴시스

새 시대가 오지만 민추협 정신은 이어진다

민추협이 주도해 만들어낸 87년 체제는 이제 낡은 체제가 됐다.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제왕적 대통령제 등이 폐해로 지적된다. 이곳 저곳에서 개헌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민추협은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일궈낸 민추협의 정신만은 지속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덕룡 이사장은 30주년 기념사에서 "87년 체제는 그 역사적 소명을 다했지만 우리의 책무는 끝난 것이 아니다. 제 2의 민추협 운동이 필요하다"며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개헌국민운동'을 전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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