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그는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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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그는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다"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4.07.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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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 정계 은퇴 선언하는 새정치연합 손학규 상임고문 ⓒ 뉴시스

야권의 잠룡이었던 새정치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7·30 재보선 승리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낙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손 고문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그의 아버지가 7선을 역임한 수원병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지역세를 이기지 못하고 정치인생 마침표를 찍었다.

1947년 11월 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서 태어난 손 고문은 경기중·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손 고문은 대학교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저항하면서 옥고를 치렀다. 1979년 부마사태에도 참가해 잡혔다가 10·26 사태로 풀려난 전력이 있는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손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발탁한 계기로 정계에 입성했다. 손 고문은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14대 총선에서 경기 광명시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때부터 손 고문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6년부터 약 1년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역임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도지사를 역임해 명실공히 ‘경기도 맨’으로 자리잡았다.

손 고문은 15·16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한나라당 후보로 각각 당선됐고 이 과정에서 민자당 대변인,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이명박 후보와 3파전을 형성했던 손학규는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당시 여권으로 들어간 손학규는 정동영과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일합을 겨뤘으나 패했다.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으나 박진에게 패한 후 강원도 칩거 생활을 했다.

2010년 10월 다시 민주당으로 복귀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2011년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텃밭'이라 불리는 분당을로 출마해 최초로 민주당이 승리한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를두고 '손학규의 분당 대첩'이라고 불렀다.

손 고문은 이후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에 참여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정치적 잠복기를 가져온 손 고문이 이번 7·30 재보선을 통해 복귀를 노렸지만 실패해 길고 길었던 정치 여정을 끝마치는 은퇴를 선언했다.

손 고문의 좌우명은 수처작주(隨處作主,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다. 손 고문의 측근은 3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손 고문은 좌우명처럼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다”며 “자신의 좌우명을 이루면서 정치 여정을 끝맺음 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새누리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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