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변해도 '그얼굴이 그얼굴'...돌고도는 금융권 수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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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변해도 '그얼굴이 그얼굴'...돌고도는 금융권 수장들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5.02.09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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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하영구·박해춘, 옮겨가며 사장 연임
금융트렌드 변화 새로운 CEO 필요성도 제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최근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3대 금융투자협회장에 취임했다. 지난 2009년 9월 KB금융지주 회장에서 사퇴한 지 5년여 만의 금융계 복귀다.

각설이도 아닌데 죽지도 않고 또 왔다. 지난 4일 언론에는 10대 그룹 CEO의 평균 재임기간이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런데 금융권에는 10년 이상 CEO를 지낸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심지어 5연임을 허락한 금융사도 있다. 이들은 대체 뭐가 다른걸까?
 
〈시사오늘〉은 10년 이상을 금융전문 CEO로 역임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을 조명했다.

돌아온 검투사…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뉴시스

황 회장은 1999년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을 맡은 이래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 10년을 금융전문 CEO로 지냈다. 그가 재임할 당시 별명은 '검투사'. 금융당국과의 충돌에도 밀리지 않고 일을 추진해나가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일례로 금융권을 떠나 야인 시절을 보내던 당시 그는 자신을 내쫓은 금융위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끝내 승소했다.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을 맡았을 당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었고, 이로 인해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지 1년 만인 2009년 사퇴했다.

자존심 상한 황 회장은 금융당국과 충돌이 빚어질 것을 알면서도 2009년 금융위원회 등을 상대로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 행정소송을 내 "법은 어기지 않았다"는 무혐의 판결을 받아냈다.

그는 이를 통해 상대가 누구든 뜻을 굽히지 않고 인정을 받아내는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여기에 증권, 은행 등 금융업계 전반에 걸친 대외 네트워크가 엮이면서 5년 간의 공백에도 압도적인 차이로 금투협회장에 취임했다.

증권업계는 복귀한 황 회장에 거는 기대다 크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금투협에 와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며 "가라앉은 업계 분위기를 바꿔줄 인물이라는 점에서 황 회장이 다른 후보자들을 압도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능력 인정…하영구 은행연합회장

▲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뉴시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금융권의 전설적인 존재다. 그는 씨티은행장만 14년을 역임해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하 회장의 글로벌 경영능력은 자타공인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1조300억 원 상당의 달러를 한국으로 들여와 외환시장을 안정화하는데 일조했다.

그가 은행장으로 있던 지난해 9월말 당시 씨티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16.67%로 국내 영업 중인 은행 중 가장 높았다 BIS비율은 은행 자본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에 하 회장은 지난해 11월 정권의 ‘낙하산 논란’에도 은행연합회장으로 선출됐다. 민간은행장 출신으로는 11년 만의 일이다.

당시 총회에 참석한 한 시중은행장은 "내정설이 있기 전부터 하 전 행장의 은행연합회장 선임은 어느 정도 합의된 사항"이라며 "1인 후보든 복수 후보든 결론은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하 회장의 능력이 내정설로 인해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올 들어 "금융권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쓴소리를 내뱉는 등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다.

박해춘…3번의 기업 회생 ´구조조정 귀재´

▲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뉴시스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은 '구조조정의 귀재'라 불리는 기업회생 전문 금융CEO였다.

박 전 행장의 이야기는 1998년 서울보증보험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울보증보험은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통합하면서 삼성자동차 회사채 부실 등 20조 원대 부실채권을 떠안아 파산 직전 상황이었다. 그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자산관리공사 공적자금 1조6000억 원을 상환하는데 성공했다.

박 전 행장은 2003년 말 방만한 경영과 대출, 연체율 증가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아 부도 위기에 직면한 LG카드에 내정되면서 두 번째 기업 회생을 시작했다.

그는 LG카드의 비효율적인 곳을 축소하고, 강화할 곳은 확대하는 등 인력 재배치를 단행했다. 본사 관리조직을 축소하는 대신 채권회수와 영업조직에 본사 인력을 배치하고, 채권부문에 외부인력은 데려와 전문성을 높였다. 또 신용관리와 IT시스템에 투자를 강화해 추가적인 손실발생 요인을 차단하는 등 자사건전성 회복에 주력했다.

그 결과 LG카드는 그가 취임한지 6개월 만에 흑자를 냈고, 2005년~2006년에는 2년 연속 1조 원의 흑자를 올렸다.

2007년에는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박 전 행장은 여기서도 비이자수익 증가를 위해 '우리V카드'를 출시, 점유율 7.5%를 확보했고 자산건전성 등을 점검해 우리은행 연체율을 0.56%로 낮췄다.

업계에서는 밀어붙이는 식의 업무 스타일 때문에 그를 ‘용장’으로 분류한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장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는 평가를 했다. 그가 우리은행장 재임시절 우리은행 임원도 “무섭도록 업무에 전념한다”며 “수 개월간 주말에 출근하지 않은 때가 거의 없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금융권 최초 5연임…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

▲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 ⓒ뉴시스

지난 2013년 6월 퇴임한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은 앞서 언급된 이들과 달리 한 곳에서만 5연임을 하며 15년을 CEO로 지냈다.

코리안리 취임 전 그는 재무부에서 27년간 근무한 고위 행정 관료로 1998년 7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코리안리 전신인 대한재보험 CEO로 취임했다.

대한재보험은 1963년 정부가 투자해 만든 공기업으로 1978년 민영화 됐지만 재보험시장 독과점과 뿌리깊은 공기업 마인드 때문에 IMF를 거치며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그가 취임할 당시 대한재보험은 당기순손실 2800억 원을 기록해 파산 위기에 처했다. 박 전 사장은 취임 두 달 만에 임직원 3분의 1(87명)을 내보내야했다. 박 전 사장은 2002년 코리안리로 사명을 바꾸고 연평균 13%대 성장을 이어왔다.

박 전 사장의 놀랄만한 경영능력에 지난 2010년 영국의 'Reinsurance'지는 '2010 재보험 영향력 리스트'에서 그를 21위로 선정했다. 재보험 불모지인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 확장을 통해 유럽, 미국 등에 도전한 점도 높이 평가됐다.

'Reinsurance'는 그에 대해 정부 기관의 여러 관직을 거쳐 CEO로 취임한 인물로 향후 기대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박 전 사장은 "한번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당시에 정면 돌파를 하지 않으면 이후 무수히 많은 압력에 굴복하는 약자가 돼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경제 집단 중 가장 보수적인 집단에 속한다. 대량의 자금이 흐르기 때문에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CEO가 계속 연임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장기간 CEO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본인만의 특색을 경영에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핀테크, 인터넷 전문은행 등 새로운 금융 산업에 맞는 새로운 CEO의 등장도 필요한 상황이 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CEO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장기집권 할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능력있는 CEO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시간이 갈수록 레드오션이 돼가는 금융업계에서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CEO 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 시중은행 및 금융지주, 카드사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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