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들의 정치①]이승만과 국부논란
[死者들의 정치①]이승만과 국부논란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2.04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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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정치인에 흔들리는 야권 판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정치판엔 늘 새로운 세대가 탄생한다. 아무리 큰 거목(巨木)이 져도, 그 후신들이 정치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가끔 이미 사라진 사람들이지만 영향력이 아주 강력했던 경우, 혹은 치열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 그들은 현실의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죽은 자들의 정치는 끝나지 않았는지, <시사오늘>이 짚어봤다.

▲ 1952년 제2대 대통령 취임선서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뉴시스(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이승만과 국부(國父) 논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모두가 답을 할 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국부(國父)가 누구냐는 물음에는 다양한 대답이 따라온다. 여기에 한국에 국부는 과연 존재하느냐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이 덧붙여진다.

국부로 모시는 인물이 있는 나라의 경우, 나라를 세운데 핵심적인 인물, 그리고 초대 통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 중국은 쑨원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 베트남의 호치민이나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도 큰 이견 없이 국부로 받들어진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의견이 분분한데 그 뿌리는 건국일부터 시작한다. 그간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으로 보는 의견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뉴라이트’를 비롯한 소위 보수주의 사학계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진정한 건국일이라는 의견을 들고 나오며 대립이 시작됐다.

지난 2008년 뉴라이트 관련 단체 100여명은 8월 15일 “이승만 건국대통령에게 감사하자”며 <대한민국 감사한마당>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건국60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1948년 건국론에 불을 지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지난달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1948년 당시의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선언했다"고 1919년 건국론에 못을 박았다.

조 교수의 의견은 한국 야권 정계와 그 지지자들을 대변한다. 사실 그 이전에는 국민 대부분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중론이었지만, 뉴라이트 등 소수가 들고 나왔던 1948년 건국론은 종북 논란에 대한 반발과 진영 양극화를 타고 들불처럼 번졌다. 그리고 이승만 국부론이 대두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맡은 독립운동의 수반(首班)이기도 했다. 미‧소 공동위원회의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등 김구 선생 등과 더불어 국부로 불릴만한 업적을 이어온 그였지만, 말년엔 하와이로 망명, 쓸쓸하게 생을 마친다. 이 전 대통령을 몰락으로 인도한 주요 실정(失政)은 초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일어났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강경대응과 1951년 거창양민학살사건, 특히 1952년 ‘발췌개헌’과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등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헌법 개정은 민주화세력의 반발을 산다. 1958년엔 경향신문 폐간사건과 진보당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경향신문 폐간사건은 언론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고 진보당 사건은 정적 조봉암을 제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정타는 1960년 3‧15 부정선거였다. 이 선거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은 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4·19 혁명에 의해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그래서 공과 과가 공존하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위치는 미묘하다. 살아서는 한국땅을 밟지 못했지만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적대자로 남게 됐다. 때문에 한동안 한국 정치에서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은 잘 거론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전 대통령은 ‘보수의 아이콘’처럼 상징화됐고, 진보 세력으로부터는 맹공을 받게 됐다.

이와 관련,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바친 80대의 한 노정객(老政客)은 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국부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인데……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자신만이 한국을 이끌 수 있다는 자만이었는지 모르겠다. 부정선거란건 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사실 최악의 범죄 아닌가? 게다가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총을 쏘다니, 어디 세상에 부모가 자식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나. 나는 그래서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이지만 국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부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추측을 말해보자면, 극우세력의 이승만 띄우기, 소위 이승만 국부론은 나중에 박정희를 끼워팔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독재를 결과론으로 밀어붙여서 미화하자는 거다. 이승만이 추앙받으면 그 다음은 자연히 박정희란 말이지. 그런 의심이 든다."

또한 원로사학자 한영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승만 국부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놨다.

"국부라는 말을 붙여야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게 아니다. 그냥 초대 대통령 이승만으로 평가하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면 된다"

"건국이냐, 재건이냐 택일 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건국도 맞다. 그러나 건국절을 내세우고 임시정부 전통을 부정하면 대한민국은 반신불수가 된다. 교각살우(矯角殺牛)다."

▲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국민의당 지도부 ⓒ뉴시스

가장 최근 벌어진 국부논쟁의 중심에는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이 있다.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현재, 약 50여년 전 소천한 정치인은 야권의 힘겨루기의 매개체로 돌아온 느낌이다.

논쟁은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으로부터 촉발됐다. 지난달 14일 한 위원장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등과 함께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한 직후 “어느 나라든 나라를 세운 분을 국부라고 평가한다”며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부분을, 그것도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한 후에 건드린 한 위원장의 발언은 즉각 빗발치는 반발을 불러왔다. 한 위원장은 지난 19일 4·19민주혁명회와 4·19혁명 희생자 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등 3개 시민단체장들을 만나 사과했지만 이미 사태는 생각보다 크게 번졌다. 게다가 안 대표가 지난 2013년 트위터에 ‘건국65주년을 축하한다’라고 적었던 것까지 부각되며 당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8일 국립 4·19민주묘지 참배 직후 "나라를 세운 사람을 국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결과를 나쁘게 만들었다"면서 "결국 불미스럽게 퇴진했다"고 강조, 국민의당과 차별화에 나섰다.

결국 안 대표는 지난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국부론은 우리 당의 입장이 아니다"라며 ”한 위원장도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다는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계속> 

 

담당업무 : 경제부 금융팀/국회 정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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