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Wars⑥]“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진박Wars⑥]“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16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유승민 찍어내기... 친박의 귀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 권력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거대 여당의 패권, 한국 정치의 주도권을 두고 새누리당의 내전은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스타워즈(StarWars)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탄생부터, 최근 일어나는 ‘진박’논란까지,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 국회법 개정안 비판하는 박근혜 대통령 ⓒ 뉴시스

에피소드 Ⅵ : 친박의 귀환

비박계의 진격은 계속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 일로를 걸으면서 김무성 대표를 앞세운 비박계의 목소리는 날로 커져갔다. 2015년 2월 2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친박계의 전폭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꺾고 당선, 급기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비박계로 구성되기에 이른다.

자신감을 얻은 비박계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을 정조준 했고, 유 원내대표는 “그동안 정부나 청와대가 민심을 잘 모르고 있었다. 당도 필요할 때 제 목소리를 내고 이를 견제하지 못했던 책임이 있다”며 청와대가 주도했던 당청 관계를 수평관계로 변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유 원내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파격적인’ 연설로 야당의 박수를, 친박계의 분노를 불렀다.

“희생자 295명, 실종자 9명, 그리고 생존자 172명을 남긴 채 1년 전의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부끄러움과 분노를 남겼습니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는 왜 존재합니까?”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습니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 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아있는 박근혜 정부가 이상과 같은 근본적 개혁의 길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권력’의 힘은 만만치 않았다. 거칠 것 없이 진군하던 비박계는 결국 박 대통령의 진노를 샀다. 발단은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행정입법 수정 및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국회로부터 요청받은 내용을 처리하고 결과를 국회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였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12분 동안 정치권을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중에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섞여 있었다. 사실상 유 원내대표를 향한 ‘돌격 개시’ 신호였다.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 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저는 보다 근본적 문제로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에게 둬야 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강공을 가하자, 유 원내대표도 한 발 물러섰다. 그는 다시 국회로 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고 자동 폐기하는 한편, 청와대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사퇴 요구는 더 잘 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앞으로 당·청 관계를 복원시키고자 나나 당 대표, 최고위원들과 같이 의논해 복원시키는 길을 찾아보겠다.”

▲ 원내대표에서 사퇴하는 유승민 의원 ⓒ 뉴시스

유 원내대표가 물러서자,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유 원내대표를 유임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반격 기회를 잡은 친박계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친박계 의원들은 잇따라 사퇴를 요구하며 유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당과 청이 하나가 돼서 국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청와대에 대한 당의 뒷받침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에는 여당으로서 역할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대통령이 탈당 결정도 하실 수 있다고 본다.” (이장우 의원)

“의원들이 당·청 관계의 심각성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진정한 리더는 거취를 누구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윤상현 의원)

유 원내대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새누리당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 참석한 그는 박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비박계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친박계 입장에서 이 사태는 판세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였고, ‘놓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청와대에서는 지속적으로 ‘유승민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내보냈고, ‘특명’을 받은 친박계는 당무 거부와 최고위원 전원 사퇴 가능성을 흘리며 유 원내대표를 몰아붙였다. 29일에는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과 ‘대통령의 복심’ 이정현 최고위원이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불참, 마지막 승부수까지 던졌다.

7월 2일에는 최고위에서 고성이 오가는 다툼까지 벌어졌다. 원유철 당시 정책위의장과 김태호 최고위원이 격론을 벌이자, 김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것이다.

“유 대표 스스로 ’나는 콩가루가 아니라 찹쌀가루가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이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당과 나라를 위해서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김태호 최고위원)

“저는 계속 유 대표보고 그만두라고 얘기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원유철 정책위의장)

“한 말씀 드리겠다.” (김태호 최고위원)

“그만해.” (김무성 대표)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되면 안 된다.” (김태호 최고위원)

“회의 끝내겠다. 회의 끝내.” (김무성 대표)

“대표님,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사퇴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김태호 최고위원)

잇따른 논란과 압박을 버텨내던 그는 김 대표가 ‘사퇴 불가피’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당초 ‘유임론’을 주장하던 김 대표는 거부권 정국이 길어지자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총선을 앞둔 당대표로서 갈등과 혼란을 봉합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항변했으나, 청와대의 압력에 굴복한 모양새를 지우기는 어려웠다.

유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설득은 거부했지만 의원총회를 통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로 한다. 의원총회에서 사퇴 권고안을 준비 중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의 사퇴 수순이었다. 결국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의 사퇴 권고를 수용하고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제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스럽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유 원내대표는 떠났고, ‘거부권 전투’에서 승리한 친박계는 다시 당권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