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이한구 친박 분투기…'老兵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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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이한구 친박 분투기…'老兵은 죽지 않았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2.18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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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 위기마다 등판…선봉에서 친박계 이끌어
李, 朴대통령 경제교사에서 공천 최전선으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왼쪽)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뉴시스

최근 여권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위원장이다. 당내 공천전쟁의 최전선에 서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일합을 겨루고 있다. 19대를 끝으로 의원직을 내려놓는 그가 친박계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중이다. 그와 겹쳐 보이는 모습이 있다. 지금까지 친박계를 위해 몸을 살라 온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다. 두 사람의 선수를 합치면 11선에 달한다. 친박계 두 노병(老兵)의 분투가 눈길을 끈다.

친박계가 지금까지 계파로서 생존하고, 이를 넘어 주도권을 유지하게 만든 것은 서 최고위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81년 제1야당이었던 민한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정치구력이 30년을 훌쩍 넘겼다. 이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이끄는 상도동계로 들어가 한국의 유력 정치인으로 발돋움한다. 그런 그가 친박계가 된 것은 2007년이다. 당시를 서 최고위원은 다음과 같이 소회했다.

"제가 YS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각하 용서해주십시오. 박근혜가 저희 집에 와서 도와달라고 해서 약속했습니다. 그 사람 말은 신뢰가 갑니다. 박근혜는 부정부패는 안 할 사람입니다. 그런 이미지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한 번도 각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 여자와 한 약속을 깰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이 부족했는지 모르겠지만 각하가 이명박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YS가 '니는 와이리 고집이 쎄노'라고 해요. 그렇게 하고 나오는데 YS가 문 앞까지 따라 나왔고 분위기 좋게 헤어졌습니다. 나중에 '서청원은 배신자'라는 얘기들도 나오고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가신은 아니었지만 YS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손명순 여사가 YS에게 '서청원이 왜 배신자예요. 당신한테 충성을 제일 잘 했는데…'라고 했답니다." -2012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中 (관련기사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831)

이미 당시에도 서 최고위원은 5선에 당 대표를 지낸 거물급 인사였다. 단숨에 친박계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그는 당내에서 친이계의 핍박이 시작되자 정치적 수완을 발휘, 친박연대를 만들어 친박계의 공중분해를 막아낸다.

친박연대는 18대 총선에서 14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서 최고위원은 옥고(獄苦)를 치르며 의원직을 잃는다. 그래서 서 최고위원이 2013년 10월 재보선으로 국회에 돌아올 당시 정가에선 그의 출마 사유를 두고 ‘18대에서 억울하게 의원직을 잃은 것에 대한 명예회복’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명예회복에 성공하고 돌아온 국회지만, 비박계가 당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고, 상도동계의 옛 동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자 친박계는 다시 한 번 서 최고위원에게 등판을 요청한다. 그렇게 나간 7.14 전당대회에서 서 최고위원은 결국 김 대표에게 패배, 당권 창출엔 실패했지만 분전(奮戰)한 맏형에게 책임을 묻는 친박계는 아무도 없었다.

이한구 위원장은 1945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상대적으로 정계에 늦게 입문했다.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며 본격 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대구 수성구갑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며 3번 연속 당선돼 4선 의원이 됐다.

이 위원장은 정계입문 전엔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무부에 근무하다 대우경제연구소 대표이사를 거친 경제전문가다. 때문에 친박계가 된 뒤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선을 앞두고선 김종인 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경제민주화’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정치적으로도 승승장구하고, 19대 국회에서는 공무원연금개혁TF 팀장과 당 경제혁신특별위원장을 맡으며 당의 대표 ‘경제통’으로 인정받던 이 위원장은 이번 20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한다. 지난해 2월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찌감치 "지역구 관리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데 시간을 좀 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다음에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나라 걱정을 좀 더 심각하게 해서 거기에 몰두하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고 불출마 선언의 배경을 밝혔다.

그렇게 이 위원장은 정치 전면에서의 명예로운 퇴장, 혹은 다음 도전을 위한 휴지기를 갖는가 싶었다. 그러나 약 1년 뒤, 이 위원장은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당내 대립의 최전선에 선다.

이 위원장과 김 대표는 공천 룰에서 충돌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6일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모든 광역시·도에서 최소 하나 내지는 세 개까지 우선추천지역으로 해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한 제도로 활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가 17일 “선거에 지는 한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한구안을 수정하든지, 공관위를 해체하든지 하라”고 강력히 반발했으나, 이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제발 좀 당 대표는 경선에 관여하지 말라고 좀 하라”며 “자꾸 저렇게 하면 당헌·당규에 따라서 대표가 물러나든지, 내가 물러나든지 그래야 되지 않겠나”라고 정면에서 받아쳤다.

한편 서청원 최고위원이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 이야기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공관위는 독립기구로 누구도 손 댈 수 없다”고 이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자, 김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 회의가 파행되기도 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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