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와 마누엘 펠레그리니]‘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지도자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손학규와 마누엘 펠레그리니]‘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지도자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3.19 1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구로 풀어본 정치인(13)>‘정치계의 지성’ 손학규와 ‘최고의 전술가’ 마누엘 펠레그리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마누엘 페예그리니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지장’으로 소문난 인물들이다. 대학교수 출신인 손 전 대표와 도시학 학위를 갖고 있는 펠레그리니 감독은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지성’으로 꼽힌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논리력과 지성에 비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 뉴시스

‘차가운 머리’로 무장하다

손 전 대표는 경기중학교 –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정치인이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하대학교에서,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임했다. 교수 시절 손 전 대표는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치며 정치권의 숱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제14대 총선 보궐 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손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당 대변인으로서 정제되고 합리적인 논평을 고수하며 한국 정치의 품위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제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5·18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건의·시행했다.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장애인·노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오랜 국가적 현안이었던 한약조제권분쟁(한약조제권 인정 여부를 놓고 한의사협회와 약사회 간에 벌어진 분쟁)을 매듭짓는 성과를 거뒀으며, 제16대 총선에서 3선을 달성한 뒤에는 총재 제도 폐지와 상향식 공천제 도입, 당권·대권 분리 등을 주장해 정치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2년에는 경기도지사로 당선,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펠레그리니 감독은 축구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술가 중 한 명이자 지적인 지도자로 꼽힌다. 1973년부터 1986년까지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 센터백으로 활약한 펠레그리니 감독은 선수 생활 시작 6년 만인 1979년 칠레의 명문 산티아고 대학에서 도시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선수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한 것이다. 펠레그리니 감독이 국가대표로도 28차례나 출전한 경험이 있는 선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명석한 두뇌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1986년 은퇴를 선언하고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펠레그리니 감독은 33세의 나이에 유니버시다드 칠레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팔레스티노, 오히긴스 등을 지도한 그는 유니버시다드 카톨리나의 감독으로서 대성공을 거두며 ‘명장’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펠레그리니 감독은 이 팀을 2년 연속 프리메라리그 2위, 1994년 코파 인터아메리카나 준우승, 코파 칠레 우승팀으로 만들며 LDU 키토의 러브콜을 받았고, CA 산로렌소, 리버 플레이트 등을 거치며 남미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남미를 정복한 펠레그리니 감독은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 비야레알을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프리메라리가 2위로 이끌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양분하고 있던 스페인 무대에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클럽인 비야레알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펠레그리니 감독의 전술 역량 덕분이었다. 그는 좌우 측면에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한 선수들을 배치하는 ‘더블 플레이메이커’ 체제로 패스 앤 무브 과정의 창의성을 극대화했고, 전후 간격을 좁혀 조직적인 압박을 가하는 전술로 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남미 최고의 ‘전술가’다운 면모였다. 

▲ 마누엘 펠레그리니 맨체스터 시티 감독 ⓒ 맨체스터 시티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손 전 대표는 ‘마지막 관문’을 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3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에 이어 2008년에는 통합민주당 당대표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최종 목표인 대통령 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러나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합민주신당 국민경선에서는 정동영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국민경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정치인으로서 모든 것을 이뤘으나, 유독 대통령 선거에서만큼은 후보로 나설 자격조차 손에 넣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손 전 대표의 ‘무색무취’ 이미지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로서 ‘손학규’ 하면 떠오르는 강한 이미지가 없다는 지적이다. 부드러운 리더십과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이 바탕이 된 조직 관리 능력이나, ‘보편적 복지’, ‘저녁 있는 삶’ 등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정책화시키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설득해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펠레그리니 감독 역시 손 전 대표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펠레그리니 감독은 감독 생활 내내 이렇다 할 불화 없이 선수단을 잘 장악해왔다. ‘스타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별다른 잡음 없이 팀을 끌어갔을 만큼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녔다. 그러나 축구 전문가들은 펠레그리니 감독의 ‘지적이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인해 선수들이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의 얼굴에 축구화를 날릴 정도로 다혈질이었으나, 맨유 선수들은 퍼거슨 전 감독의 승부욕이 선수단 전체를 고무시킨다고 증언한 바 있다. 실제로 퍼거슨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맨유는 리그 전체에서 가장 역전승이 많은 팀 중 하나였다. 주제 무리뉴 감독 역시 ‘우리 팀’ 이외의 모든 팀을 적으로 규정하고 선수들에게 투지를 불어넣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갈등과 다툼이 있더라도, 선수들을 자극해 승리를 향한 의지를 불어넣는 것이 성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펠레그리니 감독은 빼어난 전술 능력과 무난한 선수단 장악 능력은 있으나,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