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고3 담임과 대입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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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고3 담임과 대입개편안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8.08.1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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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지난 5월에 正論직구 <‘괴물’이 된 대입시험>이라는 글을 통해 수험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입제도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아쉬움을 적은 것이다.

교육부는 내일(17일) 대입제도 개편안을 최종 발표할 예정이라지만, 최근 일련의 대입개편안 논의 과정을 보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보다.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이 지난 1년 간 다단계 논의 과정을 거치고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정시 확대 비중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대입 개편 결정권이 다시 교육부로 넘어갔다.

일부에서는 이번 대입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실험실의 쥐들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실험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을 위한 시간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중3 학생들과 학부모의 혼란은 심해졌다.

이번 대입개편안 논의 과정을 보면서 수십 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고3 시절이 선생님 때문에 나름 행복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제자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담임 선생님의 사랑이 새삼 그립다.   

1982년 초반의 일이니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고3이 되니 마음자세가 달라졌는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는 초조감과 함께 1년만 고생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등교시간도 자연히 빨라졌던 것 같다. 

3학년 첫날 아침, 교실문은 열려 있었고, 어떤 아저씨가 책걸상을 뒤쪽 벽으로 밀어놓고 교실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3학년 교실은 학생들이 청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청소를 해주는구나’ 생각했다. 아저씨는 학생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치고는 홀연히 교실문을 나섰다.  

아침 조례시간이 돼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조금 전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반소매 차림으로 물걸레질을 하던 그 아저씨가 바로 3학년 6반 담임이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교실 청소는 내가 할 테니 여러분은 공부에 열중하라”는 말씀을 했다. 선생님은 이틀, 1주일, 한 달, 그리고 1년 동안 변함없이 청소를 계속했다. 교실청소를 며칠 하다 그만두겠지 하는 나의 생각은 틀린 것이 되었다.

입시제도는 상급학교로 진학할 사람을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배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성적향상을 위한 경쟁이 우선시되는 학교교육에는 믿음이 안 간다. 학생들의 부담은 줄이면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교과운영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하겠다.  

국어가 재미있을 리 없다. 시(詩)를 동강 동강내 하나하나 분석하려 든다. 시험에 그렇게 문제가 나오니 문제다. 끝없는 문제풀이와 벌세움으로 수학은 공포의 과목이 돼 버렸다. 문제풀이 숫자만 있을 뿐, 수학이라는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이 없다.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의 많은 양이 영어로 축적돼 있고, 그것에 정확히 접속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면 앞선 기술이나 문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부담을 줄이면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대입제도가 그것을 견인해 그런 방향으로 바꾸어 갔으면 좋겠다. 선진 외국에서는 가능한데 우리는 왜 못하는 걸까. 지금의 대입개편안 논의 내용 중 하나인 정시와 수시 모집비율 조정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의 젊은이들은 공부 때문에 아플 시간도 없다. 제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빗자루로 교실바닥을 쓸고 물걸레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의 마음. 꿈과 희망을 갖게 한다. 대입제도 개편안에도 이런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가 스며들었으면 한다.

지금의 대입제도는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에게 크나큰 부담을 주는 ‘괴물’이 돼 있다. 이 괴물은 우리의 무지와 잘못된 정책으로 몸집을 불려온 게 분명하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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