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책] 대통령님, 당신은 ‘페미니즘 대통령’이었나요?
[여성 정책] 대통령님, 당신은 ‘페미니즘 대통령’이었나요?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1.14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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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본 정치史〉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등이 말하는 진실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김유종
이번 서른한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역대 대통령의 여성 정책이다.ⓒ시사오늘 김유종

최근 정치권에서 발생했던 성폭력은 공통적으로 ‘권력’에 의한 범죄였다. 남성 정치인의 권력형 성범죄는 여러 차례 문제됐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2020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7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정의당 여성본부는 이를 “개인의 일탈이 아닌, 정치권 내 공고한 권위주의 문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사건”이라 정의했다.

위력(威力)이란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권력의 집약체인 정치권에서 위력은 주로 여성을 향했다. 이로부터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이야말로 정부의 역할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향한 여성들의 요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도권 바깥의 사회·가정에서의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한 제도 역시 필요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 정책은 얼마나 발전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매번 역대 대통령들의 입을 빌려 당신에게 일종의 ‘기억재생장치’를 선사해왔다. 이번 서른한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역대 대통령의 여성 정책이다.

 

김영삼, ‘여성발전기본법’ 통한 양성평등 도입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이화30주년 기념 전국여성대회 참석했다.ⓒ대통령 기록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이화30주년 기념 전국여성대회 참석했다.ⓒ대통령 기록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에 김영삼이 당선됐다. 그는 ‘신한국 창조’를 내세우며, 10대 국정 과제와 77개 세부 공약을 제시했다. 그중 ‘여성이 존중되는 평등사회의 실현’이란 여성 분야 과제가 포함됐다. 여성 세부 정책으로 6천여 곳의 보육시설을 3만 4천여 곳으로 증가, 군사전문인력 양성기관의 문호 개방 등이 담겼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향신문>은 그를 ‘모성 지향적 여성주의자’라고 칭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는 종종 “사회가 남성 주도의 사회로 돼있어 그렇지, 여성의 능력은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그 남성을 지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한 지방 유세에서는 “이번 대선을 끝으로 남녀 불평등 사회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 연구(29) 여성관·여성정책

3당의 대권 주자 중 김영삼 민자당 총재가 여성 유권자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는 게 김 총재 주변의 이야기다. (중략) 김 총재 자신도 여성층으로부터 인기가 있다고 의식하고 지난달 26일부터 시작한 지방유세에서도 이러한 인기를 표로 전환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각종 여성 공약을 제시했다.

이처럼 여성을 확실한 득표원으로 계산하고 여성 표 공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김 총재의 여성관은 모성 지향적이고 여성 의존적인 특성이 뚜렷하다.

(중략) 김 총재의 이러한 여성관은 ‘여성에게 열린 세계, 평등한 사회를 보장한다’는 민자당의 여성 정책과 여성 공약의 뼈대를 이루는 밑받침이 되고 있다. 민자당의 여성 정책이나 여성 공약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적 차별의 철폐에 있다.

- <경향신문>, 1992.11.06.

또한 김영삼은 역사상 처음으로 3명의 여성 장관을 탄생시켰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첫 내각에는 △보건사회부: 박양실 한국여의사회장 △환경처: 황산성 변호사 △정무2: 권영자 한국여성개발원 부원장 등이 포함됐다. 그간 여성 장관은 사실상 여성부에 해당하는 정무제2장관 한 자리에만 배정돼왔던 터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여성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는 부처에 여성을 임명한 것은 새 정부의 여성 정책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직후 여론조사에 서도 응답자 75.7%가 여성 장관 증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6일 오전, 나는 대변인을 통해 새 내각의 각료와 안기부장 등이 포함된 조각(組閣) 명단을 일괄 발표했다. 나는 대변인을 통해 인사의 원칙과 특징 몇 가지를 밝혔다. 먼저 신한국 창조를 위해 확실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참신하고 유능하며 개혁 지향적인 인사들을 기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 각계각층에서 골고루 인재를 기용했으며 특히 젊은 층을 과감히 발탁했고 여성을 크게 배려한 점 (중략) 등을 설명했다.

-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 나의 투쟁> 上편, 56쪽.

뿐만 아니라 그는 ‘여성발전기본법(여발법)’을 통해 양성평등을 처음 도입한 대통령이었다. 여발법은 현재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불린다. 이 법안은 모든 분야에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돼, 1996년 7월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모든 공직에 양성평등이 돼야 한다고 한 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YS는 여성발전기본법을 만들어 양성평등을 처음 도입한 대통령”이라며 “우리나라 최초로 내각에 복수의 여성 장관이 들어간 것도 YS 때부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문민정부의 여성 정책을 ‘D-’로 혹평했다. 여연은 “긍정적인 모습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기대 이하”라며 “여성 정책의 총론은 갖췄으나, 집행의지가 부족하고 각론이 빠졌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여발법이 여성 정책의 청사진이라고 할 만한 내용을 담아냈으나, 정책 추진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여성 정책 전담 부처 ‘여성부’ 신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 이희호 여사는ⓒ김대중 평화센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故 이희호 여사는 대한민국 제1대 여성운동가였다.ⓒ김대중 평화센터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여성 정책 공약을 쏟아냈다. 제3당의 일치된 공약은 △여성 할당제 2~30% △여성부 신설 등이었다. 당시 언론과 유권자들은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두 공약은 모두 국민의 정부 시기 이뤄졌다.

김대중은 1998년 7월부터 행정고시 및 외무고시 등에 여성채용목표제를 도입했다. 또한 정부 내 각종 위원회의 여성참여확대 사업을 국정과제로 전환했다. 그 결과 여성의 실제 참여는 1984년 2.2%에서 △1998년 12.4% △1999년 17.6% △2000년 20.4%로 증가했다.

아울러 문민정부의 여성 정책의 주된 평가는 ‘전담부처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여성 현안에 대해 정무 제2장관이 조정할 수 있지만, 입법권을 갖고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1999년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여성부를 신설했다. 신설된 여성부 장관에는 한명숙 민주당 의원이 발탁됐다.

여성들은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에서 가부장 제도에 눌려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힘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힘에 눌려 지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는 힘보다는 머리가 중요했다. 그래서 21세기는 정보화 시대이고 곧 여성의 시대였다.

(중략) 나는 여성을 위하는 일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치밀한 사고는 국가가 관리해야 할 자산이었다. 정보화 시대에 여성 인력 개발은 국가적인 과제였다. 그리고 전업 주부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해 주어야 했다. 이런 여성 문제는 독자적인 정부 부서를 설치하여 해결해야 했다.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였다.

- 김대중 자서전, 411~412쪽.

한편 국민의 정부는 양성 평등을 위해 법안을 수차례 제정했다. ‘가정폭력 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998년 7월)’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1999년 1월)’ 등 가정폭력·성폭력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김대중은 여성부에 대해 “늦게 태어난 막둥이”라는 표현을 쓰며, 여성 정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현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부 현안을 챙겼다. 다른 부처 관리들은 사실 여성부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늦게 태어난 막둥이를 보살피듯 했다. 그래서 정이 더 갔다.

- 김대중 자서전, 412쪽.

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민의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해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도 여성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이를 사회적 이슈로 띄워주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총평했다. 특히 “여성부 신설을 통해 여성 정책을 총괄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조직을 탄생시켰고, 국민들에게 여성 문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홍보효과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연은 IMF에 따른 여성들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간제 노동의 증가에 대해 혹평했다. 이들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1순위 희생자는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성계가 여성정책담당관 임명과 여성부 신설 등의 김대중 정부의 획기적인 여성 정책에 환호의 박수를 칠 수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가부장제 상징인 ‘호주제 폐지’


ⓒ노무현재단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16대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노무현재단 사람사는세상

2002년 12월,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대두된 현안은 ‘호주제 폐지’였다. 이회창·노무현·정몽준 세 후보 모두 폐지에는 긍정적이었으나, 방식과 시기는 다소 이견을 보였다. 이회창은 ‘시기상조’란 이유로 즉각 폐지에 반대했으나, 노무현·정몽준은 폐지를 공약했다.

노무현은 당선 직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호주제 폐지를 제12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1960년부터 이어온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따르면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의 가(家)에 입적한다’고 명시돼있었다. 호주제 폐지는 이러한 가부장적 전통을 벗어나,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 형태로 변화하는 첫 걸음이었다. 여성에겐 ‘차별’이자 남성에게 ‘짐’이었던 오랜 역사와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2005년 2월,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위헌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같은 해 3월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유예기간을 거쳐 2008년부터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됐다.

아울러 참여정부는 2004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했다.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인권 침해로 규정짓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과거 역대 정부와 달리 참여정부는 성매매 피해자를 ‘인권’의 문제로 다루었다. 이로써 ‘성매매는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게 됐다.

당시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이임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투철한 인권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라며 “성매매방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으로 여성부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200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을 참여정부의 성과로 언급했다. 이들은 “여성계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는 참여정부 출범 후 여성부와 법무부가 적극 추진하면서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며 “성매매방지법 제정은 국가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성매매 범죄 근절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들어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노동법과 사회보험에서 제외되는 여성이 늘며,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文 정부는?


2017년 2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성별 차이로 인해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다”며 “성평등은 인권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바로 ‘성평등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연설에서 발표한 성평등 정책은 △자녀 공동 육아(주 52시간제·육아휴직제·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 40% 증대) △여성 일자리 차별 철폐 △비정규직 여성의 노동권·모성권 보장 △젠더폭력 가중처벌(성평등 공교육에 포함·성인지적 인권감수성 증대) 등이 해당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여성을 수혜 계층으로 한 공약은 총 32개다. 이 가운데 완료된 정책은 △여성(젠더) 건강 기본계획 마련 △여성 농어업인의 공동경영주 제도 △민간 여성 농어입인 조직 육성 강화 등 총 3개로, 아직 완료율이 10%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16개 정책이 진행 중이며, 9개가 지체, 3개가 변경, 1개가 평가안됨 판정을 받았다. 이는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체크 프로젝트 ‘문재인미터’를 참고했다.

여성단체는 낮은 공약 이행률만큼이나, 문 정부의 행보에 종종 실망스러움을 표했다.

2020년 5월,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2007년 저서에 담긴 여성 비하 발언으로 비판받은 바 있다. 이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장내자는 여성들의 외침을 무시한 것”이라며 “강간문화에 일조한 사람이라도 남성권력의 지지와 신뢰를 받기만 하면 얼마든 공적인 영역에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비판했다. 여성계의 외침에도 불구, 그는 현재 의전비서관으로 근무 중이다.

뿐만 아니라 7월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 논쟁 가운데, 여성계는 피해자와의 연대를 택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성평등한 세상을 향한 변화와 성찰을 만들어왔다”며 “피해자의 말하기를 가로막는 사회에서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피해 경험을 드러낸 피해자의 용기를 응원하며 그 길에 함께 할 것”이라 덧붙였다.

이들은 미투에 대해 정치권이 제대로 응답할 것을 촉구했다. 여연을 비롯해 전국 290개 여성인권단체로 구성된 ‘오거돈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각 당은 뼈아픈 반성과 성찰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되짚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단순히 가해자 제명만으로 그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며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 등 일부 정당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피해자와 지원기관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역대 정부를 지나오며 여성 정책은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그러나 여성들이 위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성평등한 세상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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