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선거’…열린우리당 152석, ‘압승’
[17대 총선]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선거’…열린우리당 152석, ‘압승’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0.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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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본 정치史>2004년 그날,
김종필 노무현 등이 말하는 진실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이번 스물일곱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2004년 제17대 총선이다.ⓒ시사오늘 김유종
이번 스물일곱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2004년 제17대 총선이다.ⓒ시사오늘 김유종

<시사오늘>은 매번 역대 대통령들의 입을 빌려 당신에게 일종의 ‘기억재생장치’를 선사해왔다. 이번 스물일곱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2004년 제17대 총선이다.

‘대통령 회고사’는 대통령의 입을 빌려 그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만, 이번 회고사는 이만섭·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도 참고했다.

 

2003.8~11月 열린우리당 창당


노무현에게 새천년민주당은 대선 승리를 함께한 정당이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2002년 대선에서 나는 민주당 후보였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후광을 받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표를 남김없이 흡수했다”며, ‘민주당’ 후보였기에 그가 가졌던 이점에 동의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의 막전막후는 아래 기사에 상세히 서술돼있다.

(관련기사: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710)

정동영 열린우리당 선대위원장과 악수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정동영 열린우리당 선대위원장과 악수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그러나 대선 승리가 안겨준 기쁨의 순간은 짧았다. 민주당은 새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 1년도 채 안 돼서 분열했다. 신(新)주류와 구(舊)주류가 나뉜 가운데, 신당 창당 움직임이 시작됐다. 신당 창당을 주도한 신주류는 ‘새로운 정치’를 외쳤다. 그렇게 11월 11일 창당한 정당이 열린우리당이다.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 △부정부패·정경유착 근절 △참여민주정치 개척 △정치개혁 등 노무현이 외친 가치들을 강조했다. 다음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선언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오늘 우리는 낡은 정치가 그 생명을 마감하고,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정책정당, 국민참여정당, 국민통합정당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한다. (중략) 이제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권의 변화는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 새로운 개혁주체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는 47명의 의원이 합류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에서 탈당한 40명, 소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김부겸·김영춘·안영근·이부영·이우재 5명,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유시민 2명이 함께였다. 이로써 제16대 국회는 한나라당 149석, 민주당은 61석, 우리당 47석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민주당의 분열은 누군가에겐 불편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겐 비웃음거리가 됐다. 김대중은 “불편하다”는 심기를 내비쳤다. 이는 김한정 비서관이 김대중의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한 말이었다.

추미애 당시 민주당 의원은 “평화·민주·개혁 세력을 분열시키고 오늘의 난국을 초래한 장본인들인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단죄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추미애는 당 대표 경선 출마선언문을 통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신 기득권 집단’이자 ‘가짜 개혁 집단’으로 칭하며, “자신의 부정부패를 은폐하기 위해 등불 주위로 모여든 불나방들”이라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열우당’ 내지 ‘노무현당’이라 비꼬았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우리당이라고 절대로 부르지 말고, 오늘부터 열우당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말하는 열우당이란 단순히 정당명의 줄임말이 아니었다. 열우당(劣友黨)은 ‘열등한 친구들의 당’이란 의미를 내포했다.

한편 민주당에겐 불편함을, 한나라당에겐 비웃음거리를 준 열린우리당에 대해, 노무현은 책임론에서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생각은 전북지역 언론 합동기자회견에서 드러난다. 아래는 그의 답변을 발췌한 내용이다.

“우선 분당이 됐지만 저는 안 했다. ‘안 했다’ 그러면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정말 당이 알아서 하도록 제가 간섭하지 않았다. 방치했고, 결과가 그렇게 됐다. 결과적으로 분당이 됐지만, 분당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당을 새로 한 번 만들어 보자고 한 것이 그만 분당이 돼 버렸다.

제가 대통령 후보 시절에 민주당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 우리 공약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환골탈태한다는 이런 말을 계속 했는데, 그것도 부족하다 해서 발전적 해체까지 나아간 것이다.”

노무현은 후보 시절 “노무현 당선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아니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해 온 낡은 정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승리”라며 “지역분열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한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다”는 성명을 꺼내들었다. 이는 추미애·조순형을 포함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낸 성명 내용으로, 노무현은 “그것이 그 시기에 대의였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은 “추 의원은 (성명을) 잊어버리고, 자꾸 내게 배신이다, 배은망덕이다 말한다”며 “옛날 그때는 나와 동업자였다”고 지적했다.

정대철 민주당 당대표 역시 사퇴를 선언하며, “분열 없는 통합신당을 위해 노력을 적지 않게 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실패였으며 부덕과 역부족임을 솔직히 고백한다”고 밝혔다. 그 역시 이후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이후 민주당 내 잔류파는 조순형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2004.02.24. 탄핵 발단이 된 기자회견


2004 신년 내외신기자회견을 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2004 신년 내외신기자회견을 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해가 바뀌자, 17대 총선 지형에 관심이 쏠렸다. 노무현은 당선 직후부터 ‘총선 승리’를 강조해왔다. 2003년 1월 민주당 연찬회에서 “다음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반(半)통령”이라 말했다. 이는 17대 총선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동시에 남은 절반의 국정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이 강조하던 총선 승리의 주체가 달라졌다. 2003년 12월에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청와대 비서관을 격려하는 모임에서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지지를 분명히 했다.

2004년 2월 18일 경인지역 합동 기자회견에서는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정말 알 수 없다”고,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회견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이 두 발언은 이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이유로 탄핵의 발단이 됐다.

노무현의 발언에 가장 민감했던 정당은 민주당이었다.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노무현의 양강구도는 민주당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도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28일 노무현의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를 요구하는 의뢰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중앙선관위는 3월 3일 발언 내용들이 선거법 9조(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하려는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에 청와대는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며 “관권선거 시대에 만들어진 선거법은 정비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대통령의 비중립적 발언은 공무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법 위반 결정을 내렸다”고 맞받아쳤다.

노무현 역시 3월 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탄핵 사유에 대해 굴복할 수 없다”며 “열린우리당 지지 의사 표명이 위법이라 해도 아주 경미한 것”이라 주장했다. 노무현의 이러한 생각은 자서전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화법에 대한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발언 내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이 문제였다. 나는 구어체 현장 언어를 구사했으며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을 즐겨썼다. (중략)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언어습관을 고쳤어야 했다.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는 극복해야 할 문제였지만, 국민들에게 믿음과 안정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일을 했어야 했다.

(중략) 2004년 2월, 두 차례 기자회견에서 나는 신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정당의 당원이며 정치인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국회에 있어야 입법을 할 수 있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 야당은 대통령을 정치로 공격한다. (중략)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 줄 정치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야당의 정치적 공격에 대항할 수 있다.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중략) 정치인인 대통령이 선거와 정치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34~236쪽.

 

2004.03.09.~12. 탄핵소추 발의 및 의결


3월 9일, 민주당은 연석회의를 열고 탄핵소추안 발의를 결정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 역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탄핵안이 발의되더라도 내심 노 대통령이 사과함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수습할 것을 기대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회의에서 그가 말한 발언의 일부다.

“나는 평소 노 대통령이 너무 말이 많아 결국 말 때문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해 왔다. (중략) 탄핵에 대해서도 청와대와 열린당은 야당이 4·15 총선거를 겨냥해 정치 공세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탄핵정국은 결국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어떻게 대통령이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이 당선되니 민주당을 찍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느냐?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 아닌가? 민주당 분당의 책임을 대통령도 느껴야 한다.”

그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대통령 선거 비중립성’은 탄핵안 발의의 표면적 이유에 불과했다. 민주당의 깊은 갈등의 골은 ‘민주당 후보였던’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에 있었다. 분당·창당에서 비롯된 분열이 탄핵소추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날 오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소속 의원 159명의 서명을 받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접수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는 헌정 사상 최초였다.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이 지난 뒤인 10일 오후부터 72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했다.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 272명의 3분의2인 181명이 필요했다. 수세에 몰린 열린우리당은 물리적으로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12일 오전 11시, 박관용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이후 투표 종료와 개표까지 걸린 시간은 50분이었다. 투표 결과, 우리당 의원을 제외한 195명이 재석해, 찬성 193표와 반대 2표로 가결됐다. 이때 반대표를 던진 2명은 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자민련 김종호 의원이었다.

박관용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자, 우리당 의원들은 서류뭉치와 의원 명패를 던지며 울부짖었다. 전 국회의장이었던 이만섭은 이 현장을 “참담했다”고 회고했다.

그동안 나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주장했으나 국회 본회의에서 벌어진 그 참담한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중략) 이날 경호권이 발동되고 국회의원들이 경위들에게 비참하게 끌려나가는 모습은 차마 고개를 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만일 내가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장이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경호권 발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나는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략)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여 표결을 방해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비난을 받고 야당은 오히려 명분도 얻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유리한 입장에 놓였을 것이다.

- 이만섭 회고록 <나의 정치인생 반세기>, 559~560쪽.

4월 15일, 꼭 투표합시다! 탄핵심판! 민주수호! 포스터다.ⓒ노무현재단 사료관
4월 15일, 꼭 투표합시다! 탄핵심판! 민주수호! 포스터다.ⓒ노무현재단 사료관

그의 우려대로 국회에서 여야가 무력 충돌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끌려 나가는 모습은 여론을 바꿔놓았다. 목이 쉬어가면서도 탄핵 무효를 외치며 울부짖거나, 망연자실한 듯 주저앉은 이들의 모습이 동정심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민심은 탄핵 반대 촛불 시위로 표현됐으며,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관용 국회의장의 입장은 달랐다. 그의 저서 <다시 탄핵이 와도 의사봉을 잡겠다>에서, 그가 노무현 포함 야3당 대표 회담을 중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지막 제안마저 거절한 것은 노무현이었다.

박관용은 “대통령은 여러 번에 걸쳐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도록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노무현의 4당 대표 회담 거절을 보며 ‘아, 이 사람들이 파국을 원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은 역시 민주당 의원들과 두 전·현직 국회의장의 주장처럼, 탄핵소추를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탄핵 요구에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대통령 탄핵은 가장 강력한 형태의 정치적 공격이었다. 그보다 더한 정치적 공격은 없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 그리고 박관용 국회의장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 탄핵소추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추미애, 조성준 등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또는 사과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중략)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중략) 대통령 탄핵소추권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합헌적 권한이다. 그 권한을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라는 또 다른 절차와 국민 여론이라는 것이 있으니 법리적 정치적으로 다투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36~237쪽.

이후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라 노무현은 권한이 정지됐으며, 고건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2004.04.15. 제17대 총선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및 중앙위원들과 가진 만찬에서 활짝 웃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및 중앙위원들과 가진 만찬에서 활짝 웃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부터 서울시청 앞 광화문 거리에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촛불은 노무현이 바랐던 총선 승리를 안겨줬다. 제17대 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새천년민주당은 9석이었다.

노무현은 총선 승리에 “안심이 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촛불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큰 기쁨이 아닌, 무거운 책임감의 무게였다. 그는 촛불을 보며 “겁이 났다”고 했다.

관저 앞마당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관저 마당 왼쪽 나무 계단을 밟고 뒷산으로 올라가면 등산로 진입로에 조그만 탁자를 놓은 작은 쉼터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데크’라고 불렀다. 이 쉼터에 올라가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부근까지 불빛이 보인다.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무어라고 소리치는지는 알 수 없다. 멀리서 사람들이 외치는 함성이 아련히 들릴 뿐이다.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240~241쪽.

 

2004.05.14.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


총선의 승리가 한 달 쯤 지났을 무렵,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이로써 노무현은 직무 정지 63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선고 당시에는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비공개였으나, 2014년 한 보도를 통해 10년 만에 3명이 인용, 5명이 기각, 1명이 각하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음은 헌재의 결정요지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하는 효과를 가지며,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은 물론이고, 국론의 분열현상 즉,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간의 분열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파면효과가 이와 같이 중대하다면,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

(중략) 이 사건에서 인정되는 대통령의 법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하여 본다면,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

요약하자면, 헌재는 위법 행위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대통령 탄핵을 정당화할 만큼의 중대한 범법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노무현의 탄핵 심판의 변호를 담당한 문재인 변호사는 “일단 기쁘다”면서도,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탄핵 소추로 사회적 비용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계기로 정치 문화 발전과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자리를 떠났다.

한나라당 박근혜 당시 당대표는 성명을 통해 “탄핵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면서도, 노무현에겐 “헌재의 고심에 찬 결정의 참 뜻을 헤아려 다시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당부했다.

헌재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 결정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헌재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 결정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이다.ⓒ노무현재단 사료관

노무현은 판결 다음날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취임할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모든 것이 제 부족함에서 비롯된 일”이라 사과했다. 그는 “비록 탄핵에 이르는 사유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까지 모두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저의 허물을 결코 잊지 않고 마음의 부담으로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지지율 차이, ‘진보의 분열’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차이는 ‘진보의 분열’ 여부에 있다.ⓒ한국갤럽 갈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차이는 ‘진보의 분열’ 여부에 있다.ⓒ한국갤럽 갈무리

20% vs 48%

이는 4년차 2분기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률을 비교한 결과다. 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같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같은 임기를 지나고 있으나, 왜 노 전 대통령의 부정률은 70%였고, 문 대통령은 43%에 불과할까.

전문가들은 이를 ‘진보의 분열’ 여부에서 찾았다. 진보가 참여정부에게 배운 것은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04년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및 창당에서 비롯된 갈등에 있다. 선거의 중립성이라는 명목 하, 진보의 분열이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선거를 낳았다. 이렇듯 진보 내 갈등은 역대 그 어떤 진보·보수 갈등이나, 여야 갈등보다도 치열했으며 격렬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배움의 결과가 지금의 48% 지지율이다. 그러나 2020년의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높은 집권 여당 지지율(38%)은, 단순 학습효과의 결과는 아니다. 그 속에는 진보가 갖고 있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상실감 혹은 부채의식이 문 대통령에게 이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에 진보는 매 사태에 직면할 때마다 문 대통령만은 ‘지켜냈다’.

하지만 문제는 진보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다른 분열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일명 ‘편 가르기’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이들과 대립할 때 우리 편은 더욱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문 정부 들어 가장 많이 제기됐던 비판 중 하나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탈당을 결심한 이유에도 편 가르기가 있다. 금 전 의원은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거기에서부터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 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말 뒤집기’의 행태가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지금의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처럼 외롭지 않다. 그들의 옆에는 언제든 ‘문자 테러’나 ‘악플 좌표’를 찍어 힘을 보태줄 하나의 우리 편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편의 분열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분열을 낳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일까. 이러한 분열은 ‘국민 통합’을 목 놓아 외쳤던 노무현의 정신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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