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인 무료, 왜 생겼을까 [정진호의 정책史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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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인 무료, 왜 생겼을까 [정진호의 정책史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7.31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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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정부서 50% 할인하는 경로우대제 시작…전두환 정부가 100% 무료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하철 노인 무료 승차 정책은 전두환 정권 때 시행됐다. ⓒ시사오늘 김유종
지하철 노인 무료 승차 정책은 전두환 정권 때 시행됐다. ⓒ시사오늘 김유종

요즘 지하철을 타면 생소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역 이름 옆에 기업명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2016년 을지로입구역에 IBK기업은행, 청담역에 한국금거래소를 병기하면서 시작된 이 사업은 최근 강남브랜드안과가 9억 원에 논현역 부(副)역명을 낙찰 받는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울교통공사가 적극적으로 역명 병기 사업에 나서고 있는 건 누적된 재정 적자 탓입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적자는 17조 원으로, 지난해에만 1조 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노인 무료 승차로 인한 적자 폭이 커지면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부역명을 판매하게 됐다는 게 서울교통공사 측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재정 적자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노인 무료 승차 정책은 누가, 어떤 이유로 시행한 걸까요. 시작은 최규하 대통령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에만 집중했던 탓에 국민 개개인을 위한 복지 정책이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국가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잊고 살았던 노인층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경로우대제’였습니다. 정부는 198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경로우대제를 실시했는데요. 당시 이 제도는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철도·지하철·고궁입장 등의 공공서비스요금과 목욕료·이발료·시외버스·사찰입장 등의 대중서비스요금을 50% 할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지하철 노인 무료 승차는 노인 복지 확대 차원에서 시행된 1980년 경로우대제가 시작이었던 겁니다. 당시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기사 하나를 소개합니다. 조금 길지만 찬찬히 읽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정부는 노인복지 증진책의 하나로 전국의 70세 이상 노인에게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경로우대증을 발급키로 결정, 오는 5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경로우대증을 가진 70세 이상 노인 등은 앞으로 지하철 등 공영서비스 요금과 목욕, 이발, 시외버스, 고궁입장 등 요금의 50%만 물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인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된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가정과 사회로부터의 소외감과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의 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왔으며 얼마 전에는 며느리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기도한 80고령의 딱한 노부부도 있었다.
이 같은 실정에 비추어볼 때 당국의 이번 조치는 비록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겠지만 노인복지향상을 위한 전진적인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환영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건위생환경이 개선되고 평균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노인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되고 있는 것은 우리뿐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특히 우리의 경우 노인은 지금까지 어느 가정에서나 온가족의 중심이며 존경을 받는 이름 그대로의 가장의 위치에 있어 왔다. 그러던 것이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한 핵가족화 현상과 함께 전통적 미풍인 효사상이 흔들리면서 노인들은 소외되고 심지어 버려지고 있어 그 충격과 문제의 심각성은 보다 크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 의약과 의료의 발달은 평균수명을 연장시킴으로써 고령인구를 크게 늘어나게 하고 있어 노인문제는 사회문제를 넘어선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정책적 과제가 되고 있다. (중략)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의료혜택이라든지 연금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의 확충, 그리고 아직도 활동의 여력이 남아 있는 데도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제대시키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후략)

1980년 4월 14일 <경향신문> 경로우대제와 노인문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5월 22일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식에 참석해 65세 이상의 노인 무료 승차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기록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5월 22일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식에 참석해 65세 이상의 노인 무료 승차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기록원

하지만 이때까지는 50% 할인에 그쳤습니다. 혜택도 70세 이상에 한정됐습니다. 1982년 1월부터 경로우대제 적용 대상이 65세 이상으로, 적용 범위도 시내완행버스와 선박 요금까지 확대됐지만 할인율에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하철을 완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1984년 5월 23일부터였습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5월 22일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식에 참석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무료로 승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는데요. 이 지시가 떨어진지 하루만인 5월 23일. 서울시지하철공사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탑승권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된 겁니다.

서울의 강남-북을 한 바퀴 도는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식이 22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이순자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시청역에서 거행됐다.
전 대통령 내외는 개통식에 참석한 후 새로 개통된 시청 앞~서울대 입구간 192km를 시승, 지하철 시설 등을 둘러보았다. (중략)
한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대통을 계기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무료로 승차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지금까지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경로우대증을 발급, 시내버스는 무료, 지하철은 50% 할인의 혜택이 주어졌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로우대증을 가진 노인들은 23일부터 지하철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1984년 5월 23일 <조선일보>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로”

이 같은 조치의 배경에는 노인 복지 확대에 더해, 정통성 없는 정권의 인기를 높이기 위한 포퓰리즘적 성격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나 재정 문제에 대한 숙고(熟考) 없이 대통령 지시에 의해 이뤄진 정책이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1980년 4월 14일 <경향신문> ‘경로우대제와 노인문제’ 사설에 따르면, 당시에 이미 199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7.8%, 2000년대에는 11%, 2015년에는 14.4%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2015년 65세 이상 인구가 13.2%, 2020년 16.4%를 기록했으니 예상이 거의 맞아떨어졌던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외 선진국들은 여러 기준에 따라 일정 정도의 할인을 해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65세를 넘었다고 해서 무조건 무료 승차를 제공하는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노인 연령 상향, 지하철 요금 현실화 등의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전두환 정권이 남긴 유산, 노인 무료 승차 정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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