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친일 논쟁'…자가당착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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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친일 논쟁'…자가당착 귀결
  • 노유선 기자
  • 승인 2014.06.24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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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정부에서 자진사퇴 문창극까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유선 기자)

▲ 왼쪽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 오른쪽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뉴시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뒤집힌 역사인식을 지금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8·15 경축사에서 이같이 말하며 친일 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의도대로 친일 청산 작업은 원활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작업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났어도 '친일 논쟁'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자진 사퇴에 이르게 된 것도 그에 대한 '친일', '반민족'이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 노무현의 자가당착(自家撞着)
노 전 대통령의 친일 청산 작업은 2004년 2월부터 착실히 준비돼왔다. 당시 국회 법사위는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본회의에 넘겼다.

이 법안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들로 '친일 반민족 진상규명위'를 구성해, 3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사료를 편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대통령 산하에 설치됐다.

하지만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일파 후손 논란만 일으킨 채 흐지부지 끝났다.

1. 신기남 父, 일제(日帝) 헌병 근무
2004년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부친 신상묵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였다'는 시사 월간지 <신동아> 9월호 보도에 대해 "아버지가 일제 때 교사하다 군에 들어갔다"고 인정했다. 신 의장은 "독립투사 유족들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2. 김희선 父, 만주국의 경찰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독립군 김학규의 손녀'라는 명분하에 친일진상규명법을 주도했다. 하지만 김희선 의원은 독립운동가 김학규 장군과 족보상 남남이었고, 오히려 김 의원 부친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조기숙 祖父,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출신으로 노 전대통령 측근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도 '연좌제'를 피하지 못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수석의 조부인 조강희씨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신문 동광신문(東光新聞)에서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천정배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연좌제는 안 된다. 친일규명과 개인 문제는 별개"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친일 청산에 나섰던 이상, 제 발등 찍었다는 평을 면하기 어려웠다.

◇ 문창극의 자진사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저번 주까지만 해도 '친일', '반민족'이란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의 칼럼과 강의안, 사진 등을 손수 챙겨왔다. 하지만 24일 오전 KBS 보도에 따른 '친일 낙인'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오히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유공자인 것으로 추정됐다. <조선일보>는 23일 국가보훈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애국지사 문남규(文南奎) 선생과 문 후보자의 조부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도했다.

강상호 시사평론가는 2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문창극의 경우 그의 발언과 칼럼은 친일과 무관하다"며 "언론의 왜곡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일 낙인'이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에서 활개를 치는 현상에 대해서는, "물론 친일파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단순히 친일 후손이라고 정치적 목적 하에 낙인찍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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