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전야제⑦] "추모는 산자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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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야제⑦] "추모는 산자의 숙명"
  • 광주=김병묵 기자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5.17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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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묻지 말어" "5월은 우리가 지키는 거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광주=김병묵 기자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제36주년 5·18 민주항쟁 기념일을 하루 앞둔 광주는 뜨거웠다. 시민들이 중심이 된 5·18 사전행사와 추모 행렬, 전야제에 도시 전체가 환호하고 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었다.

▲ 광주 동구 금남로 민주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시민 난장' ⓒ 시사오늘

36년 전 전두환 정권의 계엄군과 시민군이 대치한 광주 동구 금난로 민주광장에는 17일 이른 오후부터 시민들 중심으로 여러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야제 사전행사인 '시민난장' 한편에서 민주항쟁 당시 희생된 아이들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그 옆에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도청을 지켜라!'는 브루마블 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5·18이 주제가 아닌 부스도 눈에 띄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세월호 참사, 농민 백남기 씨의 회복을 위한 시민단체들이 오월단체 관계자들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오월어머니회가 주관하는 단연 주먹밥 만들기 행사였다. 주먹밥은 1980년 민주항쟁 당시 부녀자들이 시민군들을 위해 만들었던 것을 계기로 대동정신을 상징한다. 

주먹밥 만들기에 직접 참여한 김민지 학생은 "전남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광주가 가까이 있는데 5월 정신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사 중간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나타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고 셀카를 찍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 정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문 전 대표와 '셀카'를 찍은 60대 남성은 "문재인은 예전부터 지지했다"면서 "반문정서라는 건 종편에서 괜히 문재인과 호남을 이간질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70대 남성은 "광주는 야권 후보가 될 만한 사람을 아는데, 그게 문재인"이라면서 "대선은 광주로만 치르는 게 아니다. 전국에서 표를 받아야 하는데 문재인은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주먹밥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두고 "지난 대선 때 박근혜한테 져 놓고서 어떻게 여기 와서 웃고 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더민주 송영길 당선인도 사전행사를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시사오늘>과 만난 송 당선인은 "광주는 학창시절을 보낸 내 고향"이라면서 "5·18 당시 고3이었는데, 친구 한 명이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이때 소규모 음악 콘서트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렀다. 지나가던 몇몇 시민들이 멈춰 서서 노래를 따라불렀다.

▲ 광주공원에서 시작된 민주대행진 ⓒ 시사오늘

오후 5시경, 추모 행렬인 '민주대행진'이 예정된 광주공원에는 오월 풍물회, 오월 유가족회 등 여러 오월단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소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던 유가족회는 취재진에게 "요새는 강원도나 부산 등 외지에서 많이 찾아온다"면서 "지난해 기념식에서 만난 한 가족은 5·18 왜곡에 대해 화를 내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리더라. 그게 위안이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월항쟁에 대한 국민 의식을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유가족도 있었다.

서구 화정동에서 온 송장관 씨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머니를 잃었다. 그것만도 힘들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겪은 고통이 더 컸다. 군대 가서는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선임에게 맨날 두들겨 맞았다. 그런 일을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른 선진국에서는 민주화세력의 유가족이 방문하면 시민들이 의의를 두고 또 희망을 갖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왜곡하고 비방하는 데 바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송 씨는 "오월 추모는 위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은 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바꿔 말하면 숙명이다. 나는 회사에 연가를 내고 며칠째 시민 행사를 쫓아다니며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가족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만으로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유가족회 구성원은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다"면서 "지금 본인 때문에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면 받으려고 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대행진 시간이 가까워오자 야권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보였다. 공원 입구에서 대행진 열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행사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중에 뒤편에서 국민의당 당선인들끼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회자가 "인사는 나중에 하고 소개 말씀에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꼬집자, 앞쪽에 앉아있던 50대 남성 시민이 "굳이 찾아와서 자기들끼리 인사하느라 바쁘네"라며 비꼬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대행진이 시작되자 주변에 교통이 통제됐지만, 운전자 어느 한 명도 불만을 쏟아내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행진을 따라 충장로에 들어섰다. 한 부부는 거리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자, "눈물 날 것 같다"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행진 중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북구 운암동에서 온 민경식 씨는 <시사오늘>과 만나 "딸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서 "학교에서 5·18에 대해 배울 텐데 그전에 어떤 일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민주항쟁 전야제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 시사오늘

추모 행렬이 민주광장에 닿은 것은 오후 7시경.

당시 시민군의 싸움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과 연극, 밴드 연주가 진행됐다. 중간중간 오월항쟁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전야제 현장에서 만난 이명진 전 오월 어머니회 관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전야제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면서 "대신, 시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 정계 인사들의 참석을 시민들 관심이 더 높아진 것은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미소를 띤 채 얼굴을 가로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60대 남성은 "정치와는 상관없으니까 묻지 말라"면서 "오월의 광주는 우리 시민들이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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