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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뷰파인더]〈남한산성〉, 농밀함에 가려진 사극의 비애
잊혀진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메시지를 접하며
2017년 09월 26일 (화) 김기범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예나 지금이나 어느 매체에서든 풍전등화의 국가 현실에 맞닥뜨린 이들의 실제적 고뇌를 마주한다는 것은 보는 이로서도 그리 쾌감 있는 풍경만은 아니다.

더구나 그 운명의 당사자들이 무수한 민초들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 있다면 바라보는 이들에겐 때로 당혹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일이 될 수 있을 터다.

그렇기에 380년 전 호란을 피해 고립무원의 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의 47일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은 소설과 영상이 만나 역사 다큐를 지향했을 때 그려질 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남한산성>은 소설 <칼의 노래>를 알린 김훈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19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혹한의 남한산성에 몰린 임금과 신하의 비애, 그리고 백성의 굶주림을 그린 이 서사는 이병헌과 김윤석을 중심으로 한 여섯 남자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 등으로 드라마와 코미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히트작을 양산해 냈던 황동혁 감독이 맡은 이번 영화는 연출자의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극에 처음 도전하는 연출자의 한계 또한 노정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 간의 치열한 갈등이나 대립 구도보다는, 당파를 떠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각자의 애국 방식에 방점을 찍었다. 

기나긴 추석 연휴를 소진시킬 스펙터클한 전쟁 시퀀스를 원했던 관객들에게는 일말의 실망감도 내어줄 수 있는 대목이다.

사면초가의 산성에서 치러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여러 단락으로 나누어 기술하는 대신,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축시키는 연출의 농밀함이 배어 있다.

그 서사 구조는 전쟁 상황 속의 긴박을 묘사하기보다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내보내려는 연극적 요소가 강렬하다.

문제는 이병헌과 김윤석을 중심으로 한 여섯 남자의 이야기가 확실히 맞물린다기보다는, 각 배역이 때론 헛돌며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액션 보다는 삶과 죽음을 논하는 살을 에는 명대사들이 이 드라마의 정수임에도 보는 이들의 기대치에 온전히 부응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되는 이유다.

대사는 날카롭다.

마치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는 셰익스피어 비극을 보는 듯하다.

그만큼 연극적 요소는 영화가 내뿜어야 할 흥미와 매력을 반감시킨다.

나머지 여백은 처연하게 길기만 한 인조의 소맷귀처럼 미장센으로 상쇄된다.

그나마 마지막에 폭발하는 두 주인공 간의 격조 있는 대사가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 아껴둔 비장의 카드다.

어떤 이들에겐 이렇다 할 반전 없이 밋밋하다 못해 다소 헐겁게 느껴지는 서사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며, 각 챕터별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다소 지루하게 이어 붙이는 장애가 된다.

늘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병헌의 낮게 깔린 목소리는 여전히 신뢰감을 생성한다.

여기에 김윤석의 연기는 그 이상의 위력을 발산한다.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이며, 때론 대립하고 때론 응원하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 중심에는 자신의 안위가 아닌, 오로지 허약한 나라와 어리석은 민초만을 위하는 애국애족의 정신이 서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최명길과 김상헌으로 분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설전 보다는, 오히려 그 틈바구니에서 무기력한 인조 역을 맡아 중심을 잃어가는 박해일의 연기가 눈에 띈다.

짧았던 인조의 농성기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은 원작과 호흡하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장편소설의 진중함을 사극으로 함축시키고 극대화하려는 작업은 자칫 영화가 바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140여 분간의 러닝 타임을 더 길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한 대중성의 부재가 앞으로 있을 명절동안 우리 극장가를 점령할 수 있을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다소 긴 호흡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갉아 먹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가 정세가 어지럽다.

북한은 연일 핵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피력하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의 반감은 점점 임계점에 도달하는 듯하다.

예기치 않은 조기 대선으로 탄생한 새 정부의 이력만큼, ‘코리아 패싱’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를 만들어내 우리 스스로를 옭아 맨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 완벽한 내각이 구성되지도 못한 현 정부의 출범에 맞춰 북한은 상시 핵 무력시위 체제를 갖추고 있는 형국이다.   

사드와 북핵 등의 이슈가 만들어낸 동북아의 긴장 구도는 우리 정부의 지도력과 사회의 응집력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북핵을 위시한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대한민국 내부의 갈등은 현 정부의 능력 못지않게,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정치력 또한 검증 대상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인조가 머리에 피를 흘려가며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치렀던 치욕의 역사를 구태의연하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섞인 21세기 대한민국에 빗대려 함이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는 시점에서 자신만의 안위와 당리당략에만 천착하는 정치꾼들의 권모술수보다는 진실로 애민하는 경세가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 백성은 추위와 배고픔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 추위와 배고픔을 안겨주는 것은 무능하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위정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산성>은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을 투입하고도 명징한 파괴력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말미의 저릿함은 현재 우리를 둘러싼 시국과 무관치 않으리라.

영화는 10월 3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다.

 

뱀의 발 : 배우들의 만주어 연기는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최종병기 활>에 비해 날카롭지 않지만, 청의 홍타이지로 분한 김법래 특유의 목소리와 위엄이 예사롭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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