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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1987〉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던' 그 시대를 불러내다
야만과 혼돈의 시절에 목 놓아 오길 바랐던 '그날'을 위해
2017년 12월 14일 05:39:55 김기범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영화 <1987>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어느 국가나 민족이던 암울하고 지난한 세월의 여정을 겪기 마련이다.

때로는 몰상식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그 시대 상황을 어떻게 치러 내느냐에 따라 각 사회 구성원의 운명의 향방이 바뀌는 것을 인류는 늘 목도했다.

일제강점기로 시작됐던 우리의 근현대사는 ‘민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을 거쳐, 군사독재의 폭정 속에서 신음으로 점철돼 왔다.

그 오욕과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눈부신’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늘 그렇듯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느 역사나 중요한 길목이 있듯, 그 한국식 민주주의를 열어가는 데엔 바로 '1987년'이라는 시대의 전환점이 있었고, 그것을 넘긴 우린 오늘을 살 수 있었다.  

조그마한 샘물들이 모여 거대한 강을 이루고 장대하게 바다로 나가듯, 작디작은 알갱이와 같은 민초들의 가냘픈 힘은 하나하나 모여 거대한 파국을 막는다.

5공 몰락의 단초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그렇게 새 역사를 위한 토대를 만들고, 이 땅의 역사는 또 그렇게 휘몰아쳐 갔다.

바로 이어진 1987년의 6월 항쟁은 우리 역사와 민중의식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며,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모태가 됐다.

영화 <1987>은 일단의 그릇된 신념만이 무조건 최우선이요, 옳다고 생각되던 야만과 혼돈의 그 시절을 소환한다.

‘받듦’의 진정한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고 하기보다, 맹목적인 명령체계 속에 자신의 철칙만이 애국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산 경찰.

상층부의 권력에 종속돼 강단 있는 법의 집행자가 되지 못했던 비겁한 검찰과 ‘보도지침’에 의해 영혼 없는 ‘받아쓰기’만을 이행해야 했던 문약한 언론.

그리고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백골단에게 속절없이 불법 검문검색을 당해야만 했던 힘없는 대중.

알고 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모두가 역사의 희생자였다.

다만, 나만의 양식과 원칙이 곧 정의라는 미망 속에 결국 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이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던 역사의 패배자가 있었을 뿐이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를 되뇌며 오열해야 했던 그 시대의 아버지.

“한열이를 살려내라!”며 최루탄에 맞아 죽어가는 학우를 끌어내며 울부짖던 그 시대의 대학생.

그리고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역사의 방관자가 갇혀야 하는 굴레에서 절망하는 그 시대의 소시민들. 

통증과 분노를 삭이며 한 시대를 살아가던 당시 민중의 자화상이었고, 우린 그렇게 살아남았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다큐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던 <스포트라이트>가 미국에 있다면, 우리에겐 <1987>이 회자될 것이다.

감당해야 할 무게 때문이라도 접근이 쉽지 않은 그 아픈 소재에 대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역사의 분수령이 됐던 소재의 비중에 비해 각 캐릭터가 맡은 밀도가 생각보다 많이 분산되는 듯한 느낌은 영화의 상상력이나 극적 요소보다 최대한 다큐에 충실하려는 감독의 연출의도에 기인한다.

<1987>이 내뿜는 시대의 공기는 영화의 배경을 이루던 당시의 뒷골목 만큼이나 빈틈없이 사실적이었고, 그만큼 엄밀했다.

자칫 관객이 경계하고 기피할 수 있는 신파의 서사를 피해 감독은 농밀한 연출력으로 순정의 눈물을 뽑아낸다.

스토리를 이끄는 중심에는 국가권력의 폭압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증오하던 대상을 오롯이 닮아가던 김윤석의 에너지가 있었지만, 하정우를 비롯한 각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크고 작은 배역에 충실하려 했을 뿐 각자의 스타성이나 존재감에 의존하진 않는다.

<1987>은 현재로선 믿을 수 없는 그 비이성과 상실의 시대가 우리의 현실이었고, 역사였음을 세대를 이으며 전달하려 한다.

자신의 부모가 살았던 그 믿기지 않는 시절을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잊지 않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영상언어의 소임을 다 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금,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고지를 달성한 <택시운전사>와 함께 <1987>은 국민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던 2017년의 대미를 그렇게 장식한다.

통곡의 과거를 다시는 물려주지 않으려 자기 자신을 버렸던 그 시대의 숱한 영혼들을 잊지 않는 한 우리가 목 놓아 외치며 오길 바랐던 현재진행형의 ‘그날’은 늘 우리 곁에 있음을 알리면서...

오는 27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영화에서 故 박종철 · 이한열로 분하는 두 남자 배우의 선정은 한창 젊고 순수했던 두 열사의 아름다움을 피력하려는 감독 의지의 소산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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