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섬세한 전진’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섬세한 전진’이 필요하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6.27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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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급격한 변화는 희생자 만들어…안전장치 마련이 우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도 노사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뉴시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도 노사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뉴시스

얼마 전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최고위원은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당무 보이콧을 하던 상황이라, 인터뷰 초점도 이 문제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말은 오히려 다른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이 최고위원은 택시기사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최고위원의 워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최근 4차산업혁명이 주목받고 있다. 이럴 때 정치인들은 이공계 출신이라고 숟가락 얹고, 최신기술 단어 하나 언급하면서 ‘이걸 키우자’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4차산업을 어떻게 키우나. 저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정반대 역할이라고 본다. 4차산업 신기술 도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구산업과 어떻게 조화를 시켜 연착륙을 유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대한 희생을 줄이고, 모든 구성원들을 배려하는 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문재인 정부 들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2년 새 최저임금이 2000원 가까이 뛰어올랐고, 68시간까지 가능했던 1주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16시간 줄었습니다. 공공기관에서는 ‘비정규직 제로(zero)’ 정책을 추진하고 있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정의롭고 훌륭한 정책들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용역을 받은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5개월여간 조사해 5월 2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인상 탓에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좋은 의도로 시도했지만 시장에서 기대한 것보다 임금 인상 속도가 빨랐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52시간제 도입도 부작용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임금을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로 보충하던 노동자들은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수입 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한동안 온 나라를 긴장시켰던 버스노조 파업 역시 이 같은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진행한 대담에서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대책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병행해서 시행됐다면 어려움을 덜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차가 생겼다”며 “당사자들에게는 송구스럽다”고 사과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마도 자유한국당이 법안 통과에 협조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구축된 이래, 야당이 여당의 정책 추진 속도에 맞춰 법안을 처리해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양당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구조상, 야당의 신속한 협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국회의 적극적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믿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으로 무능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협조가 어려울 것을 알고도 정책부터 시행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희생을 줄이고 모든 구성원들을 배려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어떤 쪽이든, ‘준비 없는 정책 시행으로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저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비정규직을 최소화하고,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계속돼온 주68시간 근로를 법에 따라 주52시간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방향에 완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이끌고 있는 변화의 속도에는 다소간의 아찔함을 느낍니다. 사회안전망 미비로 퇴직 후 대다수가 자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월 200만 원의 수입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면 그 대안을 국회에서 먼저 통과시킨 뒤에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지 않았을까요?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수입을 사업주들이 메워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원 방안부터 마련해 놓고 정책을 시행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더디고 더딘 걸음에 힘들고 지치더라도, ‘혹시나 사람 한 명이라도 밑으로 떨어질까’ 걱정하면서 작은 그물망부터 먼저 마련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임기 5년 내에 최대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목표가 ‘국민의 행복’이라면,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은 3년, 문재인 정부의 조금 더디더라도 ‘섬세한 전진’을 기대해 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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