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2020 특혜 vs 1980 박해, 문제는 사회 불평등 구조
[주간필담] 2020 특혜 vs 1980 박해, 문제는 사회 불평등 구조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7.0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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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YS 아들, ‘특혜’ 보단 ‘박해’ 받고 살았다…취업시장서 부친이름 거짓기재
정치인을 믿지 못하는 사회… 개인 도덕성 저하보단 사회 불평등 구조에 있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아무 문제없다”고 황 대표가 거듭 항변해도, 청년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에게 정치인은 ‘위계’를 원할 때마다 요술방망이처럼 휘두르는, 충분히 ‘부당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그래픽= 김유종
“아무 문제없다”고 황 대표가 거듭 항변해도, 청년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에게 정치인은 ‘위계’를 원할 때마다 요술방망이처럼 휘두르는, 충분히 ‘부당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그래픽= 김유종

‘취업 특혜’란 무엇인가? 유력가(有力家)와 관계된 특정인이 채용 과정에서 특별한 은혜나 혜택을 입은 것을 말한다. 여기서 특혜란 범법(犯法) 여부와는 상관없이 부당함의 상징이다. 고용주가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특정인을 억지로 채용했든, 고용주 본인이 상류층에 잘 보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발적으로 처리했든, 전자와 후자 모두 누군가의 간절했던 기회를 약탈한 도적질이기 때문이다. 

직업은 생계와 직결된다. 우리는 직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 노동과 시간을 쪼개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 산다. 그래서 채용엔 소시민의 생존이 달려 있다. 채용 비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 대학교 강연에서 아들에 관한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채용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사실 기자는 그의 선한 의도와 무고함을 어느 정도 믿는다. 정치인 황교안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확신해서가 아니다. 어찌 됐건 황 대표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110석이나 차지한 제1야당의 대표다. 본인이 아들 취업 과정에 압력을 행사해놓고, 공개석상에서 이를 까발릴 정도의 허술함은 갖고 있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서다. 그의 눈엔 그저 쓸모없어 보이는 정량적 지표, ‘스펙’에만 몰두하는 청년들이 안타까워 보였을 테다.

물론 수사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취업난으로 고생하는 학생들 앞에서 ‘내 아들은 무(無)스펙으로도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말한 그가 청년층의 미움을 살 일은 자명하다. 

“아무 문제없다”고 황 대표가 거듭 항변해도, 청년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왜일까? 채용 비리는 형법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속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에게 정치인은 ‘위계’를 원할 때마다 요술방망이처럼 휘두르는, 충분히 ‘부당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DJ 아들, ‘특혜’ 보단 ‘박해’ 받고 살아

“특혜는 무슨. 그 당시엔 야당 인사가 특혜가 될 수 있었겠어요? 제대로 된 직업도 갖기 어려웠지. 오히려 정치인 아들이라고 고문당하고, 해외로 쫓겨나가듯 했는데…….”

김대중(DJ)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A씨는 지난 27일 〈시사오늘〉과 만나 DJ의 자녀들은 ‘특혜의 대상’이 아닌 ‘박해(迫害)의 대상’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날 그는 “특히 DJ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장남 고(故)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과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은 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버지를 따라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김홍일은 군부 독재 세력에 의해 수배돼 수감 생활을 했으며,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극심한 고문까지 받았다. 김 의원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크게 앓다가 50대의 나이로 파킨슨병에 걸려 사망하기 전까지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DJ의 배우자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에는 당시 상황이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1980년) 9월 8일에는 홍일이가 수감된 서울구치소 면회에서 며느리를 근 4개월 만에 만났다. 며느리조차도 동교동에 오지 못하게 한 사람들이다. (중략) 죄수복 차림의 초췌한 홍일이가 나타났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뜨거운 눈물이 북받쳤다. (중략) 청년 조직 '연청'을 만들어 아버지를 도우려 했던 장남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버지 걱정만 했다고 한다."

-이희호 자서전 211~212페이지

다음은 김홍일이 직접 작성한 수감 당시 기록이다.

"군복을 던져 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살인적인 불빛에 현기증이 일어났다. 하얀 벽은 구멍이 뻥뻥 뚫린 방음벽이었다. 수사관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두들겨 팼다. 하루를 한마디 말도 없이 구타만 했다. '네가 김대중이 아들이냐? 너는 절대로 여기 살아서 나가지 못해. 어차피 송장으로 나갈 테니까 피차 힘들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 나는 혹여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의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시시각각 그의 안위(安慰)를 위협해오던 군사 정부와 주홍글씨로 남은 징역 기록, 고문 후유증으로 불편해진 신체까지. 그가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70~80년대는 야당 정치인의 자녀가 한국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기 어려운 ‘암흑의 시대’였다. 

DJ의 3남인 김홍걸도 다를 바 없었다. 이희호 자서전에 따르면, 그가 1982년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합격하자마자 전두환 정권은 고려대 학장에게 압력을 넣어 그의 입학을 취소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입학 특례’가 아닌 ‘입학 박해’를 받은 것이다. 그는 첫째 김홍일과 마찬가지로 40세까지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지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시작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 

YS와 DJ 자녀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정치인의 도덕성은 1980년대보다 퇴락한 것일까?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심각해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뉴시스
YS와 DJ 자녀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정치인의 도덕성은 1980년대보다 퇴락한 것일까?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심각해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뉴시스

YS 차남 김현철, “취업 위해 오히려 YS 이름 숨겨”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인 김현철 국민대학교 특임교수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다. 지난 2011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취업을 위해 아버지 함자를 숨겼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는, 기자에게 정치권에 입문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처음부터 정치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평범하게 취직을 하려고 했어요. 미국에서 MBA를 취득하고 취직을 하기위해 여러 곳에 원서를 냈지요. 하지만 야당 총재의 아들이란 이유로 취직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쌍용증권에 입사하려고, 입사 원서에 있는 부친 성명란에 거짓 이름을 썼어요. 할아버지 함자와 아버지 함자 하나씩을 따서 ‘김홍삼’이라고 거짓 기재한 거죠.”

이에 대해 앞선 DJ 정부 관계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정치인 아들이라고 취업에 특혜 받고 그런 건 없었어요. 아마 당시 살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 시대였으니까요.”

결국 YS와 DJ의 아들들에게, 정치인 아버지란 취업 시장에서 ‘후광’이 아닌 ‘약점’이었다. 요컨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보편화돼 정치인의 신변 보장이 이뤄지기 이전까지는, 정치인이란 함부로 위계를 휘두르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그의 아들은 특혜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데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소리다.

 

'채용비리 논란' 뿌리, 개인 도덕성 아닌 사회 불평등 구조에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도덕성은 1980년대보다 퇴락한 것일까? 선뜻 답을 내리긴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의 품성은 시대별로 수치화하긴 어려운 영역이다.

다만 한 가지, 누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위계는 누군가의 손에 쥔 것이 유독 많을 때 발생한다. 위계를 함부로 휘두르는 ‘위계 남용’, 즉 ‘취업 특혜’는 가진 자가 더 가지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까지 사적 이익을 함부로 추구할 때 발생한다. 

이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인이 가진 것이 많은 사회가 됐다. 그리고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의 도덕성을 믿지 않는다. 최근 황교안 대표를 중심으로 불거진 취업 특혜 논란은, 결국 심각해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청년들의 취업난, 취업해봤자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유지하는 현실. 또 월급을 모아도 해결하기 어려운 주거비.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어쩌면 해결할 의지가 없는 정치인들. 

의혹이 커지자마자, 한국당은 ‘맞불 작전’에 따라 지난 대선 때 쓰던 ‘문준용 씨 채용 의혹’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민경욱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황 대표 아들의 채용 의혹을 동시 특검 하자”며 정치인 아들 채용비리 논란을 확산시켰다.

우리는 식물의 이파리가 노랗게 썩었을 때 가장 먼저 그 뿌리를 파헤쳐 분갈이를 한다. 사회구조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두 아들의 특혜 여부에 집중하는 것은, 누렇게 변질된 이파리 하나만 줄기에서 떼어내는 것과 같다.

이젠 현상의 뿌리를 추적할 때다. 정치인 자녀의 채용 비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언제부터 정치인이 자녀의 취업에 특혜를 줄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 것인지 알아볼 때다. 정치인에게 쥐어준 위계는, 결국 우리 국민 손에서부터 시작된 거니까.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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